역사적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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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1.png 김응하(金應河)

p05.png 13. 각종 문헌 내의 기록 내용 종합

8)<디지털한국학>의 자료

(2002. 10. 1. 주회(안) 제공)

김응하(金應河)

1580(선조 13)∼1619(광해군 11).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안동. 자는 경희(景羲). 철원출신. 고려의 명장 ★방경(方慶)의 후손이다.

1604년(선조 37) 무과에 발탁되었으나 처음에는 별로 인정을 받지 못하다가, 평소부터 그의 장재(將才)를 아끼던 ★박승종(朴承宗)이 병조판서가 되자 비로소 선전관에 제수되었으나, 이듬해 여러 사람의 질시를 받아 파직당했고, 1608년(광해군 즉위년) 박승종이 전라관찰사로 나가자 다시 기용되어 비장이 되었다.

1610년에 재차 선전관에 임명되었으며, 영의정 ★이항복에 의해 경원판관으로 발탁된 뒤 삼수군수(三守郡守)·북우후(北虞侯)를 역임하였다.

1618년(광해군 10) 명나라가 후금을 칠 때 조선에 원병을 청해오자, 부원수 ★김경서(金景瑞)의 휘하에 좌영장(左營將)으로 있다가 이듬해 2월 도원수 ★강홍립(姜弘立)을 따라 압록강을 건너 후금정벌에 나섰다.

그러나 명나라 군사가 대패하자, 3천명의 휘하군사로 수만명의 후금군을 맞아 고군분투하다가 중과부적으로 패배하고 그도 전사하였다.

이듬해 명나라 ★신종(神宗)은 그가 용전분투하다가 장렬한 죽음을 당한 데 대한 보답으로 특별히 조서를 내려 요동백(遼東伯)에 봉하였으며, 처자에게는 백금을 하사하였다. 조정에서도 그의 전사를 가상히 여겨 영의정을 추증하였다. 시호는 충무(忠武)이다.

참고문헌 宣祖實錄, 光海君日記, 海東名臣傳, 密庵集. 〈李貞一〉

 

*김응하 영정 <조중구 소장> *김응하 조정비   *김응하 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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