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p11.png 김구만(金龜萬)1632년(인조 10)∼1699년(숙종 25)--(제)

(목록 제목을 선택하시면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1. 승지공 및 연보 소개

 2. 묘소 사진 소개

 3. 교지 및 유서 소개

 4. 친필 소개

 5. 시문 소개

 6. 치제문 소개

 7. 만사 소개

 

본문

p11.png 7. 만사 소개

         (2006. 7. 30. 항용(제) 제공)

가. 작자 : 김구만 선조님이 이원록(하담공 선조의 외손자. 호 박곡)에게 보내는 만사

나. 출전 : 박곡선생문집(朴谷先生文集) 곤. [기사명] 又(挽詞). 金龜萬. 78 / 170 페이지

다. 원문

 

▶ Page 079

世之再從親, 孰如我兩人. 各以先君思, 相勖白頭新. 中年或睽離, 京華共風塵. 兇徒忽釀禍, 不忍說庚申. 至痛由內鑠, 寧免損元眞.

久闊湖嶺隔, 空勞夢魂頻. 哀音千里報, 驚悼却喪神. 那知東郭別, 便作永訣辰. 期遠纔二品, 宜壽只六旬. 威餘柏府霜, 惠流北關民. 如何天奪速,

竟使欠大伸. 一家無限痛, 未及覩今春.

 

<박곡문집>

 *출전 : 엠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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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번역문  (2006. 9. 6. 항용(제) 제공)

      * 2006. 8. 30. 항용(제) 1차 번역     2006. 9. 5.  익수(제) 번역 감수

 

만사

又(挽詞). 金龜萬 78 / 170 페이지  

世之再從親-세상의 재종친(주1) 중에

孰如我兩人-누가 우리 두 사람 같은 이 있을까

各以先君思-각자의 선군에 대한 생각으로   

相勖白頭新-서로 권면하느라 머리가 희어지네        勖(힘쓸 욱)

中年或睽離(주2)-중년에 간혹 등지고 헤어져

京華(주3)共風塵-서울에서 함께 풍진을 겪었네

兇徒忽釀禍-흉악한 무리들이 문득 재앙을 일으킨

不忍說庚申(주4)-경신출척(주2)을 차마 말하랴

至痛由內鑠-지극한 아픔이 안으로 스며드니   鑠(쇠녹일 삭)

寧免損元眞-어찌 원래의 진실을 다지지 않을 수 있나   

久闊湖嶺隔-오래도록 전라도와 경상도에서 멀리 소식이 끊겨

空勞夢魂頻-헛된 꿈속에서만 자주 나타날 뿐이었네   

哀音千里報-슬픈 소식이 천리에 알려 오니   

驚悼却喪神-놀라 애도하는 마음에 도리어 정신을 잃었네    

那知東郭別-어찌 동쪽 성에서 헤어지던 것이   

便作永訣辰-곧 영원한 이별이 되었는가  

期遠纔二品-조상님처럼 2품의 벼슬을 기대하며 纔(겨우,잠깐 재)

宜壽只六旬-마땅히 장수하리라 여겼건만 다만 60세이런가

威餘柏府霜-사헌부엔 서리발 같은 위엄이 남아 있고  

惠流北關民-함경도 백성들에겐 은혜를 남겼네

如何天奪速-어찌하여 하늘은 급히 빼앗아 가

竟使欠大伸-마침내 영원히 잠자게(주5) 하시는가

一家無限痛-온 집안이 무한한 애통 속에 있으니  

未及覩今春-이 봄을 보지도 못하는 구려

 

주1) 박곡 :  이원록(李元祿) : 1629(인조7)-1668(숙종14)

본관 광주(廣州), 이도장의 차자, 판서 원정의 제, 하담 김시양의 외손자. 미수 허목의 문인, 1651년(효종2) 생원시에 장원하고 세마, 시직을 거쳐 1663년(현종4)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이천, 장연부사를 지내고 1675년(숙종1)에 의주부윤으로 나아갔다. 그후 예조와  병조참의, 좌승지를 거쳐 경상도관찰사로 임명되었으나 부임도중 환진으로 개차되고 이어 함경도관찰사, 호조참판대사간과 대사헌을 지냈다. 청렴결백하여 대사헌을 다섯차례나 연임하고 모상에 3년동안 시묘하였다. 이천에 재임시는 세도가 영상이 고을 옥토를 사유화하려는 것을 엄정히 바로 잡고 이로 인해 사직하게 되자 백성들이 유애비를 세웠다. 묵헌 이만운이 지은 묘비문과 문집 `박곡집'이 있다.

 

주2) 睽離(어그러질 규)-서로 등지고 헤어짐  

주3) 京華(경화 ) : 서울

주4) 庚申黜陟(경신출척) : 조선 숙종 6년(1680), 서인(西人) 일파가 반대파인 남인(南人)을 몰아내고 권력을 잡았던 사건. 서인의 김석주(金錫胄) 등이 주동이 되어 남인인 영의정 허적(許積)의 서자 허견(許堅)이 복창군(福昌君), 복선군(福善君), 복평군(福平君) 3형제와 함께 역모(逆謀)를 꾀한다고 고발하여 남인을 권력에서 대거 몰아내고 정권을 잡았다. ≒경신대출척·경신사화·경신정변·경신환국.  

주5) 欠伸(흠신) : 하품과 기지개, 잠.

 

*<박곡문집>에 대하여

朴谷先生文集(奎15622), 李元祿(朝鮮)著.

4卷 2冊 筆寫本(後寫) 29.8×20.7cm.

李元祿(1629∼1688)의 詩文集으로 刊年은 未詳이나 8대손 李相孫의 跋이 실려  있다. 「李王職藏」의 原本에서 1928년에 등사했다고 附記되어 있다. 朴谷 李元祿의 字는  士 興, 본관은 廣州. 1651년(孝宗 2) 司馬試에 장원, 禮曹參判, 大司憲,  大司諫,  戶曹參判, 漢城府右尹 등을 지냈다. 安分, 知命, 守正, 不二를  생활신조로  삼았다고  한다.

 {卷1}:詩 4首, 書 15首, 疏 5首(寫進箚錄疏, 擬上辭兵曹參議疏, 辭左議政疏, 再疏,  辭左尹疏), 箚 1首(雷變箚 原本逸), 啓辭 1首(大司憲避嫌啓辭), 箋 8首,  序  1首(光山李氏族契序), 跋 1首(書詩傳節要續後), 箴 1首(進夙興夜寐續箴). {卷2}:祭文 13首,  丘墓文 2首, 雜著 4首(問剛柔, 氣數策, 性策, 范滂願埋首陽山論).  {卷3}:敎書  2首(敎慶尙道觀察使書, 敎咸鏡道觀察使書), 賜祭文, 祭文(李元錄에 관한 것) 16首,  挽詞  113首, 行狀, 墓碣銘 등이 각각 수록되어 있다.  書는 上伯父, 上季父 등  친척간의  안부편지가 대부분이나 領議政 許積에게 보내는 글에는 旱害 등으로 인한 농사의 실패,  非理의 정치 현실 등을 우려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寫進箚錄疏」는 儒臣  鄭經世가  仁祖에게 올린 箚疏의 내용이 修己治人之術에 도움이 된다고 지적, 이를  베껴서  다시  올린 것으로 정치를 하는 데 적용하면 반드시 이로울 것이라는 주장이다. 辭左議政疏,  再疏, 辭左尹疏는 代作이다. 丘墓文에 나오는 承議郞安公墓表는  安景淹(1595∼1674)에  관한 것이다. 行狀을 보면 李元祿은 北邊에서 근무할 때 작성해  놓은 「邊事豫備策」이 있고 그 내용은 倉穀, 器械, 移軍 및 城民의 문제들에 관한 의견이 진술되었다고  하나 이 文集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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