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 제학공파 비안공 문중회장 金泰燮. <世德祠 創建辭>
우리 배달민족은 오랜 옛날부터 각종의 祭禮儀式을 통하여 조상님을 崇拜하고 부모님께 효도하며, 한 가정과 門中의 단결을 도모하고 民族意識을 고취하는 고유하고도 아름다운 美風良俗을 발전시켜온 文化民族입니다. 이는 세계의 그 어느 타민족과도 비교할 수 없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고유 전통 문화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安東金의 祖上님들은 멀리 신라 때의 대보공 휘 알지(大輔公, 諱 閼智) 誕降 이후, 신라·고려·조선조를 거쳐 근·현대로 이어 오면서 우리 배달민족을 우수한 문화민족으로 발전시키는데 앞장 서 왔으며, 민족이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殺身成仁의 정신으로 이 땅을 지켜와 오늘의 우리에게 傳授되게 하는데 중심적 역할을 담당해 왔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처럼 자랑스럽고 영광스러운 조상님의 後孫으로 태어나 커다란 自矜心을 갖게 된 것에 그저 감사하기만 할 따름입니다.
우리 安東金의 後孫들은 그토록 훌륭하신 조상님들을 기리는 祭禮儀式을 각 시대마다 그 당시의 정치·사회·문화적 상황에 맞추어 알맞게 변화·발전시켜 왔습니다. 특히 조선조 儒敎 文化圈下에서의 이것은 일상생활 속에 慣習化 된 것으로서 한 가정, 한 門中, 나아가 온 민족을 하나로 統一시키게 하는 民族意識의 源泉이요, 民族發展의 原動力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근·현대로의 이행과정에서 나타난 여러 가지 급속한 사회·문화적 변화에 의해 이 제례의식은 오늘날 많은 부분이 변형되거나 약화되었습니다. 더욱이 최근에 이르러서는 그런 의식에 참여하는 것은 지극히 봉건적이고 구태의연한 것이며 고령자들만이 행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사람이 있기도 하고, 급기야는 그 儀式 자체를 '버려야 할 前近代的인 산물, 愚昧한 迷信的 행위'라고 까지 주장하는 사람들 마저 생기는 참으로 안타까운 지경에 이르고 만 것이 오늘날의 현실입니다.
본 門中도 위와 같은 현 시대의 여러 가지 변화 양상과 일요일이 아니면 祭禮에 참배하기 어려운 현대 도시 산업사회의 생활양식으로 인해 최근 墓祭時엔 불과 4-5인 정도만이 참배하는 사태에 이른 것이 숨길 수 없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리고 位土를 현지인들에게 경작토록하고 묘소를 관리하거나 享祀에 필요한 祭需를 장만케 하던 종래의 방법은 현재의 변화된 농촌 사정으로 인해 더 이상 지속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만일 현재의 이런 위험 상태를 그대로 방관한다면 宗親間의 親睦關係는 더욱 멀어지게 될 것이며, 조상님에 대한 祭禮는 고사하고 묘소조차 잃어버리게 되는 끔찍한 사태가 곧 닥쳐오리라 충분히 豫見되었습니다. 또한 이런 상황에서 과거의 전통적·관습적 형식과 절차만을 강조하거나 墨守하려는 것은 현실적으로 대단히 어렵다고 보았으며, 전통 문화란 것도 새로운 개념과 기준으로 수정·보완 돼야만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傳統이란 과거의 것에 대한 무조건적 답습이 아니라, '過去로부터 이어 온 것을 바탕으로 創造的 노력을 기울여 현재의 문화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한 민족과 국가의 보편 타당한 固有 文化遺産'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즉 문화적 전통 확립은 適合性, 正體性, 統合性을 지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傳統 양식의 하나인 이 祭禮儀式 또한 현대적 생활 양식과 잘 조화되고 위의 조건에 부합하는 새로운 형태로 변화돼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오랜 熟考 끝에 祠堂과 齋室을 건립하고 조상님들의 위패를 모신 다음, 일요일을 택해 合祭를 올리고 省墓를 다녀오는 방법을 착안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의 실현은 건축비 마련에 많은 어려움이 있어 상당 기간 지연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苦心 끝에 본 종가(陽德公 諱 時說 宗孫家) 단독으로 이를 건립하기로 최종 결심하고 현 터전(약 750여 평)에 1989년 3월, 齋室(건평 30여 평)과 祠堂(건평 15평)을 짓는 공사에 着工하였습니다.
豊足하지 못한 재정형편이다 보니 공사는 자꾸만 늦어져 齋室은 3년만인 1991년 11월에 공사비 약 4천만원을 들여 完工했고, 뒤이어 祠堂은 4년만인 1992년 10월에 약 2천만원을 들여 竣工했으며, 기타 비용을 포함하여 약 7천5백 여 만원의 공사비를 들여 이제야 완공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오늘 이제 그 모든 공사를 마치고 落成式을 갖게 되니 실로 4년여의 刻苦 끝에 얻은 감격의 날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 그 동안 소홀하여 조상님에 대한 禮를 다하지 못했던 不孝의 痛恨을 씻게 됐으며, 모든 후손들이 盛大한 祭禮를 올리기 위해 한 자리에 한 마음으로 모이게 됐음에 天地神明과 조상님들께 감사의 拜禮를 올리는 오늘입니다. 이로써 우리 宗親間 親睦은 더욱 敦篤해지게 되고, 많은 緩急의 門中事가 원활하게 진행되리라 믿습니다. 또한 우리 후손들은 조상님들의 훌륭하신 정신과 업적을 이어받아 國土를 守護하고 부모님께 孝道하는 정신을 다지게 되며, 歷史意識이 정립되어 '나'를 바로 알고, 민족의 무궁한 발전에 앞장서는 棟梁들로 성장하리라 굳게 믿습니다.
그동안 오늘이 있기까지 物心 兩面으로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던 여러 宗親들과 諸賢 여러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檀紀 4325(1992)년 11월 15일.
忠烈公 26世孫. 提學公派 比安公門中會. 陽德公(諱 時說) 14世 宗孫 靑潭 金泰燮 拜上.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