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사공파(칠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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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02.png 2003년도 강진 시제참예기

3) <2003년도 강진 군사공파 시제 참예 행사기>

 

 1. 일시 : 2003. 4. 16-17(1박 2일)

 2. 장소 : 전남북 일대(전북 고산. 전남 옥과, 강진군 작천면 군사공파 묘소,    )

 3. 참석자 : 8명(종회(문온공파 회장), 태연(문온공파 이사) .*안사연:영환(문), 영윤(문), 발용(군), 태영(군), 정중(도), 윤식(문) )

 4. 일정 :

 ◆4월 16일 일정 :◎전북 고산 참의공 묘소 → 옥과미술관 → 소쇄원 → 월남사지 진각국사비 → 강진 청자자료박물관 → 강진 마량포구

 ◆4월 17일 일정 :◎ 시제 참례 → 내소사 → 검모포(구진마을) → 격포 → 서울

 5. 참배기 : 2003. 4. 18--20. 윤식(문) 작성.   사진-발용(군) 촬영 제공.

 

 

▣ 07:00∼07:10 서울 5호선 상일역 집결, 전북 고산면 향

일기예보와 달리 화창한 날 아침입니다. 먼길 떠나는 마음이 가뿐합니다. 약속시간이 되자 문온공파 회장(琮會)을 비롯한 7명이 모였습니다. 같은 시각, 정중 종친은 대구에서 출발 준비를 마쳤습니다. 정중 종친은 전날 약속대로 전남 광주시에서 만나기로 하였습니다.

상일역을 출발하자마자 영환 종친께서는 전날 홈페이지에 올린 답사 자료를 다시 한 번 요약 설명해 주십니다. 또한, 충렬공 할아버지에서부터 판서공(휘 선)의 아드님 네 분과 손자 아홉 분을 다시 상기시켜 주십니다. 이어 강진의 판서공, 대제학공, 평리공, 군사공에 대한 설명이 줄줄 계속됩니다.

발용 종친의 애마에 몸을 맡긴 일행은 중부고속도로로 들어가 08:00시에 음성휴게소에서 따끈한 튀김우동으로 간단히 요기를 했습니다.

 

▣ 08:25분 음성휴게소 출발 → 09:41분 논산IC 통과, 고산 향(向)

참의공 후손이신 태연 이사께서 길안내를 맡으셨습니다. 가는 길이 복잡해 자세한 여정은 별도로 올립니다. 참의공 묘소를 찾아가실 분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논산IC를 통과하자마자 쌍계사 방향으로 우회전해서 얼마 가지 않아 다시 '화산' 방향으로 우회전하니 좁은 2차로입니다. 여기서부터 좁고 긴 골짜기를 따라 자그마한 고개를 넘고 넘어 참의공 할아버지 묘역에 도착했습니다. 햇볕이 따가운데 시각은 이제 10:00시를 갓 넘었습니다. 오는 동안 영환 종친께서 다시 참의공과 한확, 성종, 그리고 소혜왕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주십니다.

한확은 청주한씨로 성종의 어머니이신 소혜왕후의 아버지랍니다. 성종의 아버지인 덕종의 비(妃) 소혜왕후는 한확의 다섯째 따님이시고, 임피현령공의 배위이신 청주한씨 할머니는 한확의 셋째 따님이시랍니다. 그러므로 임피현령공께서는 덕종과 동서지간이시자 성종의 이모부가 되시는 것이랍니다. 동서, 이모부 같은 말로 알기 쉽게 풀어 주시니 귀에 쏙쏙 들어옵니다.

 

▣10:05 참의공 묘역 도착

묘역 입구 소농교회 인근에 들어서자 참의공 할아버지 묘소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길은 어느덧 포장길이 끝나고 차량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비포장길입니다. 농로 옆에 손바닥만한 저수지가 꼭 논에 물을 담아 놓은 듯해서 발등을 겨우 적실 것 같습니다. 촌로 두 사람이 한가로이 낚시를 드리우고 세월을 낚습니다. 묘역까지 차가 들어갈 수 있다는 태연 이사 말씀에 덜컹덜컹 묘역을 향해 올라갑니다.

 

▣참의공 묘소 참배

묘역은 최근에 사초를 하여 새로이 단장하였습니다. 그 때문에 아직 잔디가 예쁘게 솟지 않았지만 시간이 흐르면 다시 예전처럼 포근함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묘역 아래쪽에는 오석에 새긴 <천봉기(遷奉記)> 석표가 서 있습니다. 천봉기 내용은 임피현령공(휘 자완)과 배위 청주한씨 할머니에 대한 것으로 2003년 3월 30일 건립되었습니다. 묘역 아래에서 올려다보니 북쪽을 둘러막은 웅장한 산과 산 정상 부근에 겹겹이 쌓인 바위들이 맥을 이뤄 흐르는 것이 천문지리에 어두운 후손들 눈에도 범상치 않습니다. 묘역에 올라 바라보니 맞은편 산줄기가 중첩되면서 산 아래쪽이 아늑하게 안겨 오는 형국입니다.

 

묘역 맨 위에는 참의공(휘 仲舒) 할아버지와 숙부인(淑婦人) 경주김씨 할머니께서 합장으로 잠들어 계십니다. 그 바로 아래에 아드님이신 임피현령공(휘 自土+完) 할아버지, 그 아래에 배위이신 공인(恭人) 청주한씨 할머니께서 상하 봉분으로 모셔져 있습니다.

 

▣참의공 묘소

참의공 할아버지 묘소에는 규모가 상당히 큰 비석을 최근에 새로 건립하였으며, 그 옆에 예전 비석이 2기 서 있습니다. 오석으로 된 새 비석에는 '朝鮮國 通政大夫 戶曹參議 安東金公仲舒之墓 配 淑夫人 慶州金氏 부左(조선국 통정대부 호조참의 안동김공중서지묘 배 숙부인 경주김씨 부좌)'라 병서되어 있습니다.

옆에 옮겨 모신 옛 비와 갈은 규모는 작으나 한 기는 당시로서는 매우 귀한 대리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비와 갈에 가득 앉은 이끼가 오랜 세월을 말해 줍니다. 옛 비석 앞에는 좌우에 문인석 1쌍이, 서쪽에는 예전 상석이 있습니다.

 

참의공 할아버지는 부사공(휘 명리)의 둘째 아드님이십니다. 충렬공부터 참의공까지는 다음과 같이 이어졌습니다.

 

◎ 충렬공 → 판서공(휘 선) → 양간공(휘 승택) → 평장사공(휘 묘) → 문온공(휘 구용) → 2子 부사공(휘 명리) → 1子 직제학공(휘 맹헌), 2子 참의공(휘 중서), 3子 사인공(휘 계우)

 

문온공파는 크게 3개 소파(직제학공계, 참의공계, 사인공계)를 이루고 있는데, 휘 중서 할아버지의 후손이 참의공계입니다. 참의공 할아버지 묘소 사초 당시 작은 항아리 2점이 나왔는데, 문구는 별로 적혀 있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작은 항아리가 바로 부사공 할아버지 묘소에서 출토된 항아리 모양으로 생긴 지석과 마찬가지로 지석의 일종이라고 합니다.

이외에 할머니께서 사용하신 듯한 가위 1점과 향로 또는 종지 모양의 도기(陶器) 1점을 수습했다고 합니다.

 

▣임피현령공 묘소

참의공 묘소 바로 아래에는 임피현령공(휘 自土+完) 묘소, 그 아래에 배위 청주한씨 할머니 묘소가 있습니다. 새로 세운 비석에는 '司憲府 監察 臨陂縣令 安東金公自土+完 配 恭人 淸州韓氏(사헌부 감찰 임피현령 안동김공자완 배 공인 청주한씨)'를 병서한 다음 그 아래에 '土墓(토묘)'라 적혀 있습니다.

임피현령공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는 좌우 쌍분이 아니라 상하로 쌍분을 이룬 점이 특징인데, 조선조 묘제에는 이런 예가 많은 편이라고 합니다. 참의공 할아버지 묘소와 마찬가지로 좌우 문인석 1쌍과 예전 상석 2기가 옮겨져 있습니다. 그런데 봉분은 상하로 모셔져 있는데, 상석은 할머니 묘 앞에 2기가 좌우로 배치돼 있었답니다. 참, 특이한 일입니다. 그래서 새로 마련한 상석도 예전처럼 2기를 장만해 좌우로 나란히 놓아 드렸답니다.

임피현령공과 청주한씨 할머니의 신분 때문에 묘소를 잡을 때 성종께서 친히 지관을 보내 명당을 찾았다 합니다. 또,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 경향 각지에서 수많은 관리들이 말을 타고 와서 그 말들을 매어 놓을 나무가 모자랄 정도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답니다.

 

▣10:33 참의공 묘역 출발, 삼례 향

소농교회에서 좁은 길을 되짚어 큰길(2차선)로 나와서 우회전, 삼례IC로 향했습니다. 묘역 앞에는 4차선 도로공사가 한창입니다. 언제 공사가 끝나는지는 몰라도 아마 다음에 찾아오시는 분은 이 도로를 랜드마크로 삼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11:01분 삼례IC를 통과한 다음 11:54분에 광주IC를 지났습니다. 마침 도로 위에서 공사중이라 차가 꽤 막혔습니다. 근 5시간 가까이 앉아 있다 보니 지루하던 참인데 따가운 햇볕 아래 길이 막히니 은근히 짜증이 납니다.

간신히 병목 지점을 지나 12:05분에 인근의 민속박물관 입구에서 정중 종친과 합류하였습니다. 지난 3월 22일 '02편람집 헌정식' 때 만나고 근 한 달 만에 만나니 더욱 반갑습니다. 이제 다음 목적지 옥과미술관을 향해 차를 광주 쪽으로 돌렸습니다. 12:25분 옥과JC를 통과해 도로 표지판을 따라가니 비교적 쉽게 옥과미술관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12:30∼13:35 옥과 시가지 도착, 중식 및 차량 에어컨 점검

옥과IC를 빠져나와 전남과학대를 지나자마자 옥과 시가지입니다. 시가지가 꽤 크고, 시가지 중심에 버스터미널, 그 맞은편에 옥과파출소가 있습니다. 옥과파출소에서 약 50m 앞에 '좌회전 옥과미술관, 직진 순창·곡성' 도로 표지판이 있습니다. 표지판을 지나 정비소에 에어컨 점검을 부탁하고 식당으로 들어가 점심을 먹었습니다.

 

▣12:45 식당 출발, 옥과미술관 향

옥과파출소에서 앞의 표지판대로 좌회전 옥과미술관으로 향했습니다. 옥과미술관 못미처 우측에 아산미술문화재단이라는 작은 간판이 있습니다. 도로를 따라 달리다 보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간판입니다. 하지만 옥과 시가지에서 미술관 쪽으로 난 길을 조금 달리다 보면 멀리 산 중턱에 그럴듯한 커다란 기와집(2층)이 있는 것이 보이는데, 바로 이 기와집이 옥과미술관이니 길을 잃을 염려는 안 하셔도 됩니다.

 

▣13:52∼14:43 옥과미술관 도착, 관람

13:55분, 옥과미술관 직원의 안내로 최준호 관장님을 예방하였습니다. 젊고 사려 깊은 인상이셨습니다. 인사를 나눈 다음 정중 종친께서 '자은유고'를 전달하고, 찾아온 용건을 말씀드렸습니다. 이미 항용 종친께서 며칠 전부터 전화와 팩스로 부탁 드렸기에 쉽게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옥과미술관에서는 3∼4년 전부터 소장하고 있는 간찰을 정리해 책으로 엮는 작업을 추진 중이라 합니다. 이곳에서 소장하고 있는 간찰 중 분류작업이 끝난 것이 바로 발용 종친께서 우리 홈에 처음 소개하신 바와 같이 5,700여 점이고, 아직 분류작업조차 끝나지 않은 간찰이 5,000점 이상으로 국내 최다라고 합니다. 도합 1만 점이 넘는 엄청난 수량입니다.

게다가 일반인들이 쓴 평범한 간찰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 학자, 예술인 등의 간찰이라 하니 놀란 입이 다물어지지 않습니다. 현재 가편집 중인 간찰집은 3책으로 펴낼 예정인데 총 6,000쪽에 달할 것 같다고 합니다.

 

이곳에 소장된 간찰은 아산 조방원 선생이 40여 년 전부터 수집한 것을 전남도에 기증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 간찰과 아산 선생이 평소 수집한 각종 예술품을 중심으로 도립 옥과미술관으로 거듭 나게 되었답니다.

분류작업이 끝난 간찰들은 책으로 정성껏 엮어 체계적으로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도처에 흩어져 있는 선조님 간찰 등 주요 유물을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일행이 찾아간 때는 '우리나라 간찰 기획전'이라는 주제 아래 성씨별 간찰 기획전을 열고 있었는데, 마침 김씨 성씨를 가진 분들의 간찰이 전시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친견하기를 청했던 간찰 8점(휘 종덕 할아버지 2점, 휘 상윤, 휘 회빈, 휘 희수, 휘 흠, 휘 복원, 휘 사형 할아버지 각 1점) 가운데 천사(휘 종덕) 할아버지 간찰 2점만 볼 수 있었습니다. 다른 선조님들의 간찰이 수록된 간찰집은 유리관 안에 전시 중이라 꺼내 올 수가 없었습니다. 요행히 선조님 간찰이 펼쳐져 있다면 몇 작품은 더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관장님 말씀에 기대를 걸고 전시실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할아버지 간찰은 펼쳐진 것이 없어 무척 아쉬웠습니다.

 

그런 가운데 일행 중 누군가 "백범 선생님 휘호다" 하는 작지만 감탄 어린 소리가 들렸습니다. 전시실 중앙 쪽에 이른바 '총알체'로 불리는 백범 선생님 특유의 '向來開處當嚴冬(향래개처당엄동)'이란 휘호가 빛나고 있었습니다. 크기는 가로 180.5cm, 세로 36.5cm로 1949년에 김정로(金正魯)라는 분에게 써 주신 글씨입니다. 아쉬운 마음이 한순간에 절반쯤 눈녹듯 사라졌습니다.

 

옥과미술관에서는 간찰집을 펴낼 예정이라 개인적으로 부탁해 오는 간찰 공개는 좀체 응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곧 책이 나올 예정이니 조금만 기다리라는 말로 대신하곤 했답니다. 그 어려운 유물 뵙기가 선선히 이루어졌으니 우리 일행으로서는 대단한 영광입니다.

 

▣14:43 옥과박물관 출발, 소쇄원 향

관장님을 청해 기념사진을 찍고 다음 목적지인 소쇄원으로 향했습니다. 옥과미술관 관장님은 우리 차를 향해 목례를 나누신 다음 차가 떠날 때까지 배웅을 하기 위해 그 자리에 서 계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관장님의 후의와 따뜻한 배려에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올라올 때는 몰랐는데 내려오는 길은 구불구불 십여 리라 주위 경치가 볼 만했습니다. 30분쯤 달려 소쇄원에 도착했습니다. 듣던 대로 한국 정원의 대표작이었습니다. 이곳 소쇄원부터 4월 17일 시제에 관한 내용은 내일 계속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5:13∼15:35 소쇄원 관람

옥과 시가지를 벗어나 표지판을 보고 화순으로 향해 다시 옥과IC를 지났습니다. 이곳에서 다시 표지판을 따라 광주 방향으로 접어들어 창평IC를 통과하자마자 '광주·소쇄원' 표지판이 나타납니다. 이후에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가사문학관 뒤쪽의 소쇄원을 찾아갈 수 있었습니다. 널찍한 소쇄원 주차장에 도착하니 15:13분입니다. 입구에 '濟州梁氏之瀟灑園(제주양씨지소쇄원)'이라는 표석과 '瀟灑梁先生遺蹟碑(소쇄양 생유적비)'가 서 있습니다.

 

'소쇄(瀟灑)'는 "몸과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씻음"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소쇄원 설명은 영환 종친께서 답사자료로 게시판에 올리신 글이 자주 자세해 찾아가시는 분들께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짧지만 정겨운 고샅길로 들어서니 울울창창한 맹종죽이 반깁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대밭 끝에 이르니 눈앞에 별천지가 펼쳐집니다. 전에 사진을 본 까닭인지 마치 전에 와 본 것 같은 느낌입니다. 문온공파 회장께서는 생각해 보니 관광차 다녀가신 적이 있으시답니다.

 

아직 철이 일러 계곡물이 많지는 않았지만 뒷산의 규모에 비하면 수량이 넉넉한 편입니다. 한여름 장마철이면 장관일 것 같습니다. 담장 밑으로 계곡물이 빠지도록 만든 오곡담에 취해 있는 사이에 일행은 벌써 제월당에 가 계십니다. 얼른 뒤쫓아가 제월당 뒤켠 굴뚝을 본 다음 광풍각 마루에 걸터앉았습니다. 밑에는 계곡에서 흐르는 물이 폭포를 이루고, 광풍각 전면에 인공적으로 만든 작은 못에 수로를 따라 떨어지는 물을 감상합니다. 소쇄원은 며칠씩 묵으면서 감상해야 그윽한 맛을 제대로 느낄 장소 같습니다. 바쁜 일정을 핑계로 아쉬운 발길을 돌려 월남사지로 향합니다.

 

▣15:35 소쇄원 출발, 월남사지 향

 

여기저기 보고 들을 것이 널린 고장이지만, 짧은 해를 탓하며 상서공(휘 효인) 할아버지 유적지인 월남사지로 향했습니다. 가사문학관 바로 앞 식영정을 스쳐 지나가며 그곳에서 광주댐을 바라보는 풍광을 떠올려 봅니다. 15:44분 창평IC, 15:48분 동광주IC를 통과하자 얼마 안 가 월출산이 웅장하게 길을 막습니다. 새로 난 길이 널찍하고 차량은 적어 상쾌합니다. 서울에서는 맛볼 수 없는 기분입니다.

 

17:06분 '월남마을'이라고 한글로 적은 커다란 표석이 나타났습니다. 영환 종친께서 전에 이곳을 다녀가셨다고 하는데도 입구에 아무런 표지판도 없어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영암IC에서 길을 달리다 월출산이 보이면 거기서 대략 5분∼7분 정도만 더 가시면 육교가 나타납니다. 그냥 지나치기 쉽습니다만, 바로 오른쪽에 '월남마을'이라는 표석이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만일 지나치면 '범바우마을' 표지판 인근이나, 조금 더 가서 제8539부대 또는 대월마을 표지판을 보고 차를 되돌리시면 됩니다. 통행차량은 적어도 속도를 내서 달리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월남사지 표석에서 10여m 떨어진 곳에 아무 이름도 없는 작은 구멍가게가 있습니다. 그 집 옆에 좁은 길로 우회전해서 3분 정도 따라가면 월남사 옛 터가 나타납니다. 외길이므로 길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월남사지 진각국사비는 비각을 세워 보호하고 있는데, 인근에 차량 여러 대를 주차할 공간이 있습니다. 입구에서 길을 찾느라 허비한 탓에 17:19분에야 진각국사비를 볼 수 있었습니다. 상서공 할아버지께서 쓰신 앞면은 애석하게도 떨어져 나가고, 뒷면만 남았습니다. 상서공 할아버지께서 쓰신 비석 전면의 탁본과 관련된 내용은 영환 종친께서 올리신 답사자료를 비롯해 게시판에 올라온 글들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진각국사비 거북 좌대는 높이가 제 키만하고, 전면 3보, 측면 3보 크기입니다. 뒷면에 상서공 할아버지 휘자가 기록되어 있다는 영환 종친 말씀에 일행은 한참 동안 뒷면을 샅샅이 뒤졌습니다. 마멸되고 희미한 글자를 짚어가며 모두들 할아버지 휘자를 찾습니다. 진각국사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월남사지 3층석탑이 있습니다. 전형적인 백제계 석탑입니다. 부여 정림사지 5층석탑 보신 분들 많으시지요. 그 탑하고 똑같이 닮았습니다. 크기를 3∼4배 키우고 3층이라고 생각하시면 어떤 모양인지 눈앞에 그려지실 겁니다.

 

설명문을 읽어 보니 최근에 석탑 서쪽 민가에서 또 하나의 옥개석(탑 상층부를 덮는 돌)이 발견돼 동·서편에 각각 석탑 1기씩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답니다.

 

▣17:41 월남사지 출발, 강진 향

서울에서 출발할 때에는 영랑생가를 방문할 예정이었지만, 갈 길이 멀어 곧바로 강진 청자자료박물관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한적한 새 도로를 따라 시원스럽게 강진 마량리로 달립니다. 이 도로는 우회도로인데 중간 중간 '마량'으로 빠지는 표지판이 많아 초행길에 혼란스럽습니다. 무조건 18번 도로를 타고 가다가 도로가 크게 왼쪽으로 휘어지는 지점을 조금 지나면 23번 도로로 접속되는 표지판이 나타납니다. 이 표지판에 표시된 '대덕·마량' 방향으로 나가 기존 도로로 들어서서 우회전하면 바로 삼신교라는 작은 다리가 있고, 전방 왼쪽에 남강LG주유소가 있습니다.

 

이제부터 강진 대구면까지 외길입니다. 마음놓고 직진하시면 한참 가다가 '마량 10km' 표지판 다음에 '전망 좋은 곳'이란 표지판이 나오고 바다가 활짝 열립니다. 2번째 '전망 좋은 곳'(고바우공원) 표지판과 누각이 나오면 잠시 쉬었다 가셔도 됩니다. 우리 일행은 계속 직진, 작은 고개를 넘어 미산 삼거리에서 왼쪽 미산마을(청자도요지)에 도착했습니다. 여기서 좌회전해야 하는데 길을 놓쳐 조금 더 가서 정수사 표지판이 있는 작은 다리 근처에서 U턴하였습니다.

 

▣18:18 강진 청자자료박물관 도착, 재이 종친 만남

오는 도중 영랑생가 방문을 취소하고, 재이 종친과 연락을 취해 강진 청자자료박물관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변경하였습니다. 우리 홈을 통해 소식을 접하던 재이 종친을 만나 뵈오니 마치 늘 곁에서 뵈었던 것 같습니다. 재이 종친은 키가 크고 장대한 풍모의 호남형이십니다.(유부남입니다.) 서로서로 반갑게 손을 잡으며 인사를 나눕니다.

 

▣18:18∼18:55 강진청자자료박물관 관람

박물관은 이미 관람시간이 지났지만, 재이 종친의 주선으로 특별관람이 가능했습니다. 박물관의 다른 직원들도 반갑게 맞이해 주십니다. 이곳에서 청자에 관한 많은 전시품과 원형 그대로인 청자 가마터 등을 많이 보았으나 생략합니다.

 

▣18:55 박물관 출발, 마량포구 향

박물관을 나와 '좌회전 장흥·대덕, 우회전 마량' 표지판을 보고, 마량 방향으로 향했습니다. 작은 고개를 여러 개 넘어 '마량 원마마을'이라고 적힌 표석에 다다르니 이곳이 마량포구입니다. 시간은 어느새 19:07분입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보름입니다. 산모롱이를 돌 때마다 휘영청 밝은 보름달이 산그림자 뒤로 숨습니다.

 

▣19:09∼21:30 저녁식사

참숭어 맛이 일품이라는 재이 종친의 소개로 이곳 토박이 음식점에 저녁을 부탁한 다음 마량포구 구경에 나섰습니다. 앞에 보이는 고금도가 마량을 둘러싸 폭풍이 불 때는 선박이 대피하는 피항지로 최적일 것 같습니다.

 

음식점에 둘러앉은 일행은 붉은빛이 도는 토속주(이름을 그만 잊었습니다.)와 잎새주로 회포를 풀고, 참숭어회를 즐겼습니다. 맛도 싱싱하거니와 주인장 회 뜨는 솜씨가 일품이라 쫄깃하면서도 부드럽습니다. 주인장이 참숭어 서덜로 끓여 내오는 매운탕 또한 얼큰한 게 별미입니다. 다들 허기를 느끼던 터라 침을 꼴깍 삼키며 기다렸습니다.

 

임시 총무를 맡으신 영윤 종친께서 음식값을 지불하려고 하자 재이 종친께서 그럴 수 없다며 가로막고 나섭니다. 폐가 되는 것 같아 여간 조심한 게 아닌데 재이 종친께서는 한사코 가로막습니다.할 수 없이 다음에 서울 오시면 대신하기로 하고 우리 일행이 지고 말았습니다. 다시 한 번 재이 종친께 감사 말씀 드립니다.

 

21:35분 재이 종친께서는 발용 종친께서 준비해 오신 02편람집 CD와 정중 종친께서 준비하신 선조님 문집을 소중히 들고 귀가하셨습니다.  우리 일행은 21:40분에 포구 뒤쪽에 숙소를 정했습니다. 전에 없던 숙소로 아주 깨끗해 하룻밤 묵어가기에 불편이 없었습니다.

 

▣21:30∼새벽. 뒤풀이

여장을 풀고 간단히 손발을 닦은 다음 다시 포구로 나갔습니다. 포구로 나가는 길에 마침 PC방이 눈에 띄었습니다. 사진을 올리려고 들어서니 작업에 필요한 주변기기가 없어 난감했습니다. 간략한 중간보고로 대신하려니 여간 섭섭한 게 아니었습니다. 찬바람을 쐬며 간이 돗자리에 앉아 근처 수퍼에서 사 온 맥주로 입가심을 합니다. 밀물 때라 발치까치 들어온 바닷물이 철썩거리는 소리가 크게 들립니다. 그때마다 시원한 물방울이 뺨에 날아옵니다.

숙소에 돌아온 일행은 시원하게 씻고 둘러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또 나눕니다. 끝이 없이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말씀들 나누시는데……그만 까빡 졸았습니다. 눈꺼풀 이길 장사 없다더니…….

 

그만 자리에 누우라는 어느 분 말씀에 곧장 꿈나라로 갔습니다. 아침에 깨어 보니, 아 글쎄……새벽 3시 반까지 말씀을 나누셨답니다. 지루하실 것 같아 4월 17일 일정은 조금 쉬었다 마저 적겠습니다.

 

◆4월 17일 일정

◎ 시제 참례 → 내소사 → 검모포(구진마을) → 격포 → 서울

 

▣07:00 기상, 군동 향

전날 새벽, 중국 대리 답사 등 이야기꽃을 피우다 단잠을 자고 일어났습니다. 다시 포구로 나가 아침을 들고 나니 어느새 08:30분입니다. 서둘러 마량포구를 출발, 군동으로 향합니다. 이곳에서 강진 군동의 군사공파 집성촌 가는 길과 판서공(휘 선) 할아버지부터 군사공(휘 칠양) 할아버지까지 네 분 할아버지 묘역으로 가는 길은 별도로 올립니다. 찾아가시는 분은 참고 바랍니다.

 

▣09:15∼12:05 영모재 도착, 시제 참례

강진 군동의 군사공파 집성촌에서 산을 넘어 09:15분 영모재(永慕齋)에 도착하니 시제 준비가 한창입니다. 영모재는 농촌 가옥치고는 규모가 큰 집입니다. 하지만, 요즘 농촌 현실이 그러하듯 살림 사는 사람은 없는데 '永慕齋' 현판만 걸려 있어 쓸쓸합니다. 영모재 뒤쪽은 밑둥이 굵은 동백나무가, 좌우에는 대숲이 둘러싸고 있습니다. 영모재를 바라보고 울안 왼쪽에 제법 큰 샘에 물이 그득해 우물이 필요없을 정도입니다.

 

먼저 도착한 일가분 중 어느 분이 나뭇잎을 걷어내 옛 모습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가랑잎 걷어내신 그분 가슴에도 소슬바람이 불었는가 봅니다. 이 날 시제에는 근·원동의 군사공파 일가분들을 비롯해 밀직사사공파, 개성윤공파, 부사공파, 문온공파, 도평의공파 종친 및 대종회 사무국장(명회), 안사연 회원 등 50여 명이 참례하였습니다. 종친 어르신들은 09:45분경 기념촬영을 청하셨으며, 10:30분 시제를 모시기 시작하였습니다. 판서공 이하 네 분 할아버지 묘역은 <전남 강진군 작천면 토마리 남산>입니다. 낯선 곳이라 정확한 방위는 모르나, 야트막한 구릉에 볕이 바르고 안온한 기분이 드는 곳입니다. 위압적이지 않고 다정다감한 느낌이 강합니다. 그러면서도 전체적인 인상은 결코 유약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반듯하고 단정하여 위엄이 서려 있습니다.

 

맨 위에 판서공(휘 심방변+宣), 그 밑으로 차례로 대제학공(휘 承用), 평리공(휘 厚), 군사공(휘 七陽) 할아버지 묘소가 자리하고 있습니다.발용 종친께서 올려주신 사진 속에서 그려만 보다가 이제야 할아버지를 뵈옵니다. 충렬공부터 군사공까지는 다음과 같이 이어졌습니다.

 

◎충렬공 → 판서공(휘 선) → 대제학공(휘 승용) → 평리공(휘 후) → 1子 판밀직사사공(휘 七祐), 2子 개성윤공(휘 七霖), 3子 군사공(휘 七陽)

 

(1) 판서공 설단

판서공 묘소는 이북 개성에 계실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와 관련된 자료는 발용 종친께서 우리 홈에 올리신 내용이 상세하므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외에도 태영 종친을 비롯한 여러분께서 올리신 자료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곳 판서공 단소는 1967년에 모신 것이라 합니다. 근세에 건립한 비석과 상석 외에 문인석이나 망주석 등 다른 석물이 없습니다. 비석에는 '典法判書 金公祭壇碑 郡夫人 淳昌薛氏 合享 (전법판서 김공제단비 군부인 순창설씨 합향)'이라 병서되어 있습니다.

-----초헌관 景默(군사공파), 아헌관 在哲(군사공파), 종헌관 琮會(문온공파 회장),

 

(2) 대제학공 묘소

판서공 바로 밑에 모셔진 대제학공 묘소 역시 판서공 설단처럼 별다른 장식이 없이 상석과 비석 1기가 서 있습니다. 비석에는 '奉翊大夫 密直司事 寶文閣大提學 安東金公承用之墓 原州郡夫人 原州原氏 부左(봉익대부 밀직사사 보문각대제학 안동김공승용지묘 원주군부인 원주원씨 부좌)'라 병서되어 있습니다.

-----초헌관 榮應(군사공파), 아헌관 命會(익원공파:대종회 사무국장),  종헌관 在殷(부사공파)

 

(3) 평리공 묘소

대제학공 묘소와 마찬가지로 상석과 비석 1기가 서 있습니다. 비석에는 '上洛君 安東金公厚墓 郡夫人 驪興閔氏 合부(상락군 안동김공후묘 군부인 여흥민씨 합부)'라 병서되어 있습니다. 다른 할아버지 묘소에 비해 묘전이 넉넉지 않아 아쉬운 마음입니다.

-----초헌관 相國(개성윤공파:洙 항렬), 아헌관 在鴻(군사공파), 종헌관 在模(군사공파),

 

(4) 군사공 묘소

다른 할아버지와 달리 오래 된 문인석 1쌍과 근래에 세운 망주석 1쌍이 좌우에 배치돼 있습니다. 또한, 묘소를 바라보고 오른쪽에 당간지주처럼 U자형으로 생긴 석물이 이채롭습니다. 이 석물은 발용 종친께서 이미 사진을 올려주신 바 있는데, 그 용도를 짐작할 수 없어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이 날도 이 석물을 놓고 설왕설래했으나 연세 높으신 분들도 잘 모르시는 듯했습니다. 현장에서도 시원스레 확인되지 않으니 두고 두고 연구 대상으로 삼아야 할 듯합니다. 군사공 할아버지 비석에는 '贈吏曹參判 行遂安郡事 安東金公七陽之墓 贈貞夫人 金氏合부(증이조참판 행수안군사 안동김공칠양지묘 증정부인 김씨합부)'라 병서되어 있습니다.

-----초헌관 鴻洙(군사공파),  아헌관 在鴻(군사공파),  종헌관 在永(군사공파)

 

<추가 기록>(발용(군) 제공)

 

군사공 할아버님의 시향제가 마친뒤 바로이어 군사공파 묘역 좌측 산자락에 영면해계신 휘 흥업(諱 興業)선조님의 시향제가 봉행되었습니다.

휘 흥업 선조님은 군사공파 5세손으로 강진군 군동면 내동의 입향조이신 휘 질(諱 질石+質) 선조님의 아드님이시며 매년 음 3월 16일 군사공선조님 시향제에 이어 봉행됩니다.

두분에 대한 기록은 우리 홈의 게시판 자료를 인용합니다.(시군지순례 강진편 내용. 작성자 :김윤만 작성일 : 2002/06/25 )

 

시군지순례 16-2.(강진군마을사-군동면편). 강진군마을사(군동면)/강진군청

 

▣ 마을인물. pp236~237

★ 김질(金, 1519~ ? ) : 안동김씨 본 마을 입향조로 충렬공 방경(方慶)의 장남 판서공(判書公) 선(愃). 손자 대제학공(大提學公) 승용(承用). 증손 평리공(評理公) 후(厚). 현손 군사공(郡事公) 칠양(七陽) 등 4대의 묘가 작천면 토마리 남산동에 있는 김질이 그 선산에 성묘차 내려오다가 날이 저물어 안풍마을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안풍마을에는 해주오씨 오팽수(吳彭壽)가 살고 있었는데 그는 이조 중종(1519) 때 일어난 기묘사화(己卯士禍)를 피하여 은거했던 성균관(成均館) 진사(進士)다. 오팽수는 김질의 풍채가 빼어날 뿐만 아니라 머리가 총명함을 감탄하고 곧 사위로 맞아들이고 전답(田畓)을 주어 내동에 정착하도록 했다.  

 김질은 군사공 칠양의 5대손으로 그의 후손은 군사공파로서 내동에 세거(世居)하며 현재까지 작천면 토마리에 있는 남산동 선영(先塋)을 세전수호(世傳守護)하고 있다.

 

★ 김흥업( ? ) : 김질의 아들로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군기시직장(軍器寺直長)으로 군사 100명을 이끌고 남당포(현 강진읍 남포)에서 왜적의 공격을 맞서 싸우다가 전사함. 그의 아들 김서봉 역시 아버지의 비보에 격분하여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이 자리를 빌어 강진에서 선영을 관리하시고 지켜오신 강진의 종친 어른들께 머리숙여 감사 드립니다.

 

▣12:05 토마리 출발, 서울 향

시제 후 음복과 점심을 마친 우리 일행은 종친 어르신들, 재이 종친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차에 올라 서울로 향했습니다. 귀로는 되짚어가는 길이고, 표지판을 따라가면 손쉽게 광주로 나갈 수 있으므로 생략합니다.

 

01:35분 서광주에 도착해 정중 종친께서 대구로 돌아가기 위해 일행과 작별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일행은 서로 먼길 편안히 가시기를 빌면서 손을 맞잡았습니다. 귀로에 우리 일행은 시간을 내서 내소사와 충렬공 할아버지께서 삼별초를 평정하시기 위해 병선을 건조하셨던 검모포를 찾아보기로 하였습니다.

 

▣15:00∼15:30 내소사 관람

15:00시에 변산반도 내소사에 도착, 전나무숲으로 유명한 내소사를 관람하였습니다. 내소사에 관한 내용은 생략합니다.

 

▣16:02∼16:02 구진마을(검모포) 답사

내소사 관람 직전 우리 일행은 태서(익) 종친께서 변산네트에 실린 내용을 소개하신 것을 떠올리며 부안군에 전화로 검모포 위치를 긴급 문의하였습니다. 검모포는 현재의 곰소읍 인근의 구진마을이라는 군청 공무원의 말대로 길을 물어가며 구진마을로 들어갔습니다. 곰소에서 구진마을로 가실 경우에는 곰소 끝부분쯤에 해당하며, 격포 쪽에서 가실 경우에는 '곰소모텔식 한증막' 간판을 지나 차로 3분 정도 가시면 오른쪽에 <구진마을>이라고 적힌 작은 이정표를 보실 수 있습니다. 표석이 작아 지나치기 쉬운데 마을 앞으로 도로공사 중이며, 시멘트로 지은 정자가 있습니다. 마을 안쪽에는 바닷가를 따라 민가가 늘어서 있는데 주민들이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바다를 메워 넓은 벌판이 생겼습니다. 바닷바람이 몹시 세차게 불었습니다. 아무래도 날씨가 나빠지려나 봅니다. 귀가하기까지 비가 내리시지 않기를 빌어 봅니다.

 

우리 일행은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은 다음 검모포 단서도 찾을 겸 충렬공 할아버지 체취를 느낄 겸 이곳 노인들을 찾아나섰습니다.그러나 대부분 인기척이 없고, 빈집도 꽤 많은 듯했습니다. 여러 집을 살펴보다가 어린아이가 있는 집으로 들어서니 할머니들이 모여 심심풀이 화투를 치고 계셨습니다. 칠순이 넘은 듯한 할머니께서는 검모포는 생전 처음 듣는다는 말씀과 함께 옛날에 큰 배를 지었다는 말도 들어보지 못했다고 답합니다. 다시 다른 집으로 들어가니 노부부가 집안일을 돌보고 있었습니다. 얼른 할아버지께 여쭈어 보았으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내 여서 태어나 일흔일곱 먹었소만 검모포도, 큰 배를 지었다는 말도 처음 듣소." 하십니다.

그런데 그 집 뒤로 커다란 고목 한 그루가 묵묵히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내소사에서 천년을 묵었다는 나무를 방금 보고 나왔는데, 이 나무도 그 정도는 돼 보였습니다. 고목을 올려다보며 그 옛날 충렬공 할아버지를 떠올려 봅니다.

 

▣16:35∼17:05 격포 도착, 인근 관광

15:30분 구진마을을 출발, 16:35분 격포에 도착하였습니다. 이곳에서 잠시 쉬어갈 겸 방파제로 나가 바닷바람을 쐬고 딱딱하게 굳은 다리를 풀었습니다.

 

▣16:40∼17:00 변산해수욕장, 석식 및 노을 감상

변산해수욕장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허기를 달랠 겸 인근 식당으로 들어가 해물탕과 반주로 복분자술(산딸기술)을 한 잔씩 곁들였습니다. 어제 오늘 내내 운전을 맡으신 영윤 종친과 발용 종친께서는 좋아하는 반주도 거의 들지 못해 죄송하기만 합니다. 저녁을 마치고 바닷가로 나가니 어느덧 해가 지고 있었습니다. 지는 해가 물 속으로 떨어지면서 그 붉은 기운을 풀어놓는지 바다도 검붉게 물들어 갑니다. 썰물을 따라 멀리 뻘밭으로 나간 연인들 등 뒤를 바라보며 잠시 감상에 젖습니다.

 

▣19:15 변산해수욕장 출발, 귀가

성냥불 사그라지듯 검은 심지 한 가닥을 그으며 해가 졌습니다. 주위가 어둠 속으로 묻혀 들어갑니다. 21:10분 서해안고속도로 행담도휴게소에 도착, 잠시 쉰 다음 21:36분 서서울TG를 통과하였습니다. 외곽순환도로를 지나며 발용 종친께서 서운관정공파 선조님 묘역을 설명해 주십니다. 일전에 발용 종친께서 올리신 서운관정공파 휘 장 할아버지 묘소 사진 위쪽의 도로를 지나는 중입니다.

 

운전을 맡으신 영윤 종친께서 계기판을 들여다보며 서울-강진 왕복거리가 1,100km를 넘었다고 합니다. 지금 시각은 21:55분 태영 종친을 선두로 22:05분 영환 종친, 22:20분 종회 회장, 태연 이사 및 저(윤식)가 귀가길에 올랐습니다. 이제 차를 돌려 영윤 종친과 발용 종친께서 하남시로 향하십니다. 먼길 마지막까지 무사히 귀가하시기를 빕니다. 맞잡은 손에 따뜻한 기운이 흐릅니다.

 

  <행사 사진 소개> (발용(군) 촬영 제공)

 

1. 참의공 묘소(전북 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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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봉기>(2003. 3. 30. 건립. 임피현령공(휘 자완) 관련 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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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의공(휘 仲舒) 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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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의공 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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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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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피현령공(휘 자완) 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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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피현령공 묘비.     좌-신 비석.   우-옛 비석)>

 

2.옥과미술관(전남 곡성군 옥과면)

3. 소쇄원

4. 월남사지 진각국사비(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 813)

5. <강진 청자 자료 박물관 견학>

 6. 토마리 군사공파 4위 묘제 봉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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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서공 휘 선 단묘 및 단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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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제학공 휘 승용 묘소 및 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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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락군 공 휘 후 묘소 및 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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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공 휘 칠양 묘소 및 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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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위 묘소 전경>

 

7. 내소사 관람

8. 충렬공 일본 원정 전선 축조지 검모포 탐방(전남 부안군 곰소읍 구진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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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격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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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산반도의 낙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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