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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용장서원 답사기 (2004. 5. 6. 사진-발용(군), 글-윤식(문) 제공)
◈ 일 시 : 2004년 5월 3일(월)~4일(화) ◈ 시제일 : 2004년 5월 4일(음 3월 16일) ◈ 장 소 : 전남 강진군 작천면 토마리 남산 ◈ 참석자(무순, 존칭 생략)
1)문온공파 대표 - 영환(문온공파 총무이사) 2)안사연 - 윤만(會항), 발용(會항), 정중(植항), 윤식
◈ 일정 1)5월 3일 : 서울 → 남원 용장서원 → 군동 내동마을 재실 → 마량포구 2)5월 4일 : 마량포구 → 군동 내동마을 재실 → 부사공(휘 季老) 묘소 → 대호군공(휘 儒) 묘소 → 선운사 → 서울
▣ 5월 3일(월요일) ◈ 07:00 서울 잠실 출발 → 남원 向 월요일 아침이라 그런지 잠실 롯데호텔 앞은 차량들로 가득 찼습니다. 게다가 빗방울이 오락가락 한 탓에 시제 걱정이 앞섭니다. 내일은 맑게 개기를 빌면서 남원으로 향했습니다. 08:10분경 정중 종친께서 약속대로 대구에서 출발, 남원으로 향하고 있다고 연락을 주셨습니다. 윤만 종친께서는 회사일로 오후 2시쯤 출발하여 강진에서 합류하기로 하였습니다. 남원으로 가는 도중 하늘이 벗겨지면서 해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다들 이대로 날이 갰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남원시 경계로 들어서니 다시 빗방울이 떨어집니다. 제법 빗방울이 굵었습니다.
남원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예정보다 30분 가량 늦은 시각이었습니다. 진도까지 긴 여정이라 다소 무리하게 일정을 짰더니 출발부터 시간이 빡빡합니다. 정중 종친께서는 아침 일찍 출발한 우리 일행이 출출할 것을 생각해 바람떡을 잔뜩 사 들고 계셨습니다. 떡 빚은 솜씨도 솜씨려니와 정중 종친의 정성스런 마음에 참 꿀맛이었습니다.
◈ 남원 → 용장서원 이제 용장서원으로 향합니다. 이곳(남원시 주생면 상동리 상동마을)에는 문온공(휘 九容 : 문온공파 파조) 할아버지께서 배향되신 서원입니다. 물계서원이 퇴락하여 아직 복원되지 못한 까닭에 현재로서는 유일하게 문온공을 모시고 있는 곳입니다.
남원 시내에는 용장서원에 대한 이정표나 안내판이 없어 남원시청 문화재 담당 직원과 두어 차례 전화통화를 하고도 서너 번씩 길을 물어서 간신히 찾아들어갔습니다. 그것도 그냥 지나칠 뻔한 것을 영환 종친께서 솟을삼문이 범상치 않다는 말씀에 고생을 한층 덜었습니다.
용장서원으로 들어가니 인기척이 없습니다. 서원 주위를 살펴봐도 사람 그림자도 없습니다. 하는 수 없이 뒤편 숭덕사(崇德祠)로 올라가 향을 사르고 할아버지께 큰절을 올립니다.
숭덕사는 정면 3칸×측면 1칸의 맞배지붕집이며, 현판은 주자(朱子)의 글씨를 집자한 것이라 합니다. 숭덕사에는 서쪽부터 <병부낭중 돈암 양선생(兵部郞中 遯菴 梁先生 : 梁能讓)>, <용성군 삼강 양선생(龍城君 三江 梁先生 : 梁朱雲)>, <문경공 척약재 김선생(文敬公 惕若齋 金先生 : 金九容)>, <문장공 청계 양선생(忠壯公 淸溪 梁先生 : 梁大樸)>께서 모셔져 있습니다.
용장서원에 관한 자료는 영환 종친께서 우리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리신 자료를 참조하시기 바라며, 현지에서 보고 들은 내용을 위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할아버지를 비롯한 네 분께 인사를 올리고 나오니 그제야 인기척이 납니다. 숭덕사 앞의 경의당(敬義堂) 원장실로 들어가 맞절로 양씨 문중 어르신들과 인사를 나누고 안동김가라 말씀드리니 환하게 반색이십니다. 마침 모레(음력 3월 17일)가 시향을 올리는 날이라 제수 준비차 시내에 나가셨다 막 돌아오신 참이시랍니다. 배향되신 네 분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면서 새롭게 배우는 내용이 많습니다.
영환 종친께서 미리 준비한 척약재 할아버지에 대한 책자 <범급(帆急)>과 약소하나마 향촉대를 드리고, 척약재 할아버지 시호가 ‘문경공(文敬公)’이 아니라 ‘문온공(文溫公)’이신 내용을 말씀드립니다. 남원양씨 남원양씨 용만공대종회(龍巒公大宗會) 양타(梁柁) 회장께서는 <무극집(無極集)>과 <양대사마실기(梁大司馬實記)>를 답례로 주십니다. 양 문중 할아버지 문집을 예물로 교환하니 더욱 뜻깊은 날입니다. 양타 회장께서는 문온공의 대표작인 한시 <범급>을 주욱 읽으시고는 이내 우리말로 풀이를 하면서 음미하십니다.(정말 부러웠습니다.)
현재 용장서원 관계 일은 우리 문중에서는 김제에 사시는 두식 종친께서 맡고 계시다고 합니다. 문온공파종회 총무이사를 맡고 계신 영환 종친께서는 정기적으로 참여하는 문제를 생각하시는 듯했습니다.
경의당은 정면 4칸×측면 1.5칸의 팔작지붕집인데 주춧돌을 호박처럼 둥글게 다듬은 것이 특이합니다. 현판은 숭덕사 현판과 마찬가지로 주자의 글씨를 집자한 것입니다. 경의당 좌우에는 동재(東齋)와 서재(西齋)가 있었을 터인데, 현재는 서재만 남아 있습니다. 정면 4칸×측면 1.5칸의 팔작지붕집이나 경의당보다는 규모가 조금 작습니다. 마당에는 <용장서원기적비(龍章書院記蹟碑)>가 서 있는데, 비문에도 ‘문온공’이 아니라 ‘문경공’이라 적혀 있습니다.
비문을 대한 채 다시 긴 정담이 이어집니다. 영환 종친께서 비문을 죽죽 읽어 나가며 관계되는 일들을 말씀드리자 양타 회장께서도 감탄하신 모양입니다. “오랜만에 한문을 잘 아는 분들이 오셔서 반갑소.” 하시며 얼굴이 더욱 밝아지십니다. 아쉽게도 이제 길을 재촉해야 할 시간입니다. 어느덧 12:20분이 되었습니다. 솟을삼문 앞에서 양타 회장을 비롯해 충장공파 종손 양진환 선생 등 남원양씨 어르신 네 분과 우리 일행이 기념사진을 찍고 아쉬운 이별을 나눕니다. 마당 앞까지 배웅을 나오신 남원양씨 어르신들께서는 “안동김문의 귀한 손님이 오셨으니 점심이라도 들고 가시오.” 하며 발걸음을 쉬이 놓아주지 않으십니다.
양타 회장께서 말씀 끝에 “서원 운영에 보태라고 안동김문에서는 밭 서마지기를 들여놓았네.” 하시던 음성이 아직도 귀에 쟁쟁합니다.
★ 용장서원 가는 길 남원 시외버스터미널(10:30분) → 첫 번째 사거리에서 좌회전 → 도로 표지판을 따라 주생면 방향으로 계속 직진 → 약 20분간 주행 후 오른쪽 길가에 자그마한 ‘상동마을’ 표석을 보고 우회전 → 마을길을 따라 직진(상동교회가 비교적 눈에 띄는 건물임.) → 방음벽을 세운 육교 형태의 전라선 철로를 지나자마자 오른쪽에 상동수퍼, 왼쪽에 상동마을회관(왼쪽에 한 길 정도의 돌표석이 있으나 눈에 잘 띄지 않음) → 10여M 왼쪽 골목길 → 차량 서너 대 주차할 수 있는 마당 → 용장서원 (초행길이라 자세히 설명드리지 못해 송구합니다. 혜량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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