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평의공파(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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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02.png 13. <沙村입향후 대소등과 및 문학저세자 약록 (59명)>

 

1. 金方慶- 2.渲(심방변)- 3.承澤- 4.冕- 5.九鼎-

1) 김자첨(金自瞻) (1369~1454)

충렬공 김방경의 6세손(5대손)으로 사촌 안동김씨의 입향조 이시다. 조정에서는 전조명신 후손의 예우로 감목관 벼슬을 내렸으나 사양하고 후손의 세거 기업을 정리하고 86세의 향수를 누렸다

2) 김효온(金孝溫) (1412~ ? )

자첨의 아들이며 1434년 세종 갑인에 생원을 거쳐 문과에 급제하여 사직의 벼슬을 하고 향리에 은거 했다. 문과 동방인 박팽년, 최항과 친교가 있었다.

3) 김극해(金克諧) (1440~ ? )

효온의 아들이며 1495년 세조 기묘에 생원이 되고 문과에 올라 북평사와 지례현감을 역임했다. 청백리로서 세상에 알려 졌다

4) 김광수(金光粹) (1468~1563)

극해의 아들이며 호가 송은(松隱) 이다. 1501년 연산 신유에 진사가 되고 태학에서 연수중 연산정란을 예견하고 벼슬에 뜻을 버리고 향리에 내려와 남산록 소담上에 영귀정을 짓고 시가를 읊으며 청빈하게 생애를 보냈다

사후에 장대서원에 제향 되었으며 송은집 과 경심잠이 세상에 전한다. 한편 임란에 춪장입상으로 산하 재조의 위업을 남긴 류성룡은 외손이며 증손인 사원 사형, 사정도각각 창의 하여 국란에 유공하고 외증손 김치중은 의병장으로 순절 했다.

영귀정은 문화재 234호로 지정 되었다.

5) 김사원(金士元) (1539~1601)

광수의 증손으로 호가 만취당 이다. 퇴계의 문인으로 월란정사에서 수업 하였으며 덕량이 심후 했다

임란에 창의 하여 정재장이 되었으며 난후에는 휼민을 구휼하여 김씨의창(金氏義倉)으로 알려졌다. 사후에 후산정사에 제향하였으며 실기가 전한다. 당시 지은 만취당이 현존한다

6) 김사형(金士亨) (1541~? )

호는 독수헌이며 사원의 동생이다. 유일제,김언기의 문인이며 문과에 급제하여 직장을 역임 하였다. 임란에는 동생 사정과 더불어 창의하여 곽재우의 휘하에서 군무에 협찬 하고 유공하였다. 창의록에 실려있다

7) 김사정(金士貞) (1552~1620)

호가 후송재로 사원의 동생이다. 어려서 재예와 총명이 있었으나 년미급(年未及)으로 계문(溪門=이퇴계 문하)에 나아가지 못하고 사숙하였다. 중형인 사형과 함께 곽재우 의진에서 공을 세웠다. 사후에 사헌부지평에 추증되고 도담사에 제향되었으며 문집이 있다.

8) 김 회(金淮) (1578~1641)

사정의 아들이며 호는 경암이다. 26세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1612년 광해 임자에 문과에 급제 했다. 서장관으로 연경에 다녀 왔으며 형조정랑을 역임하였다. 만년에는 향리에서 수덕하고 문집이 있다

9) 김상원(金尙瑗) (1598~1687)

사원의 손자이고 호는 남애 이다. 한강(寒岡)과 여헌(旅軒)의 문인으로 스승의 가르침이 독실이 받아 들였다. 병자호란 굴욕을 한스러워 하며 대명통기(大明統紀)를 숭상하니 세인들이 숭정처사(崇楨處士)라 일컬었다.

10) 김상기(金尙琦) (1602~1670)

 상원의 동생이고 호는 사오 이다 장사랑을 역임하였으며 문학행의(誼)와 시문에 능하여 영하(嶺下) 士友와 교류하며 유집이 있다.

11) 김상유(尙瑜) (1605~1678)

 호는 옥계이고 淮의 아들이다. 문행이 있었으나 과장에는 나가지 않았으며 후학을 계도 하였고 장사랑을 역임 하였다

12) 김상린(尙璘) (1616~1675)

사원의 손자이고 호는 양진당 이다. 숭선효우로 이름이 높았다. 만년에는 양진당을 세우고 학문을 연수했다. 경술 신해의 팔도기근시에는 영남유수로 추천 되었 으며 사복시정의 증직이 내려졌다

13) 김양좌(良佐) (1636~1708)

상린의 아들이고 호는 사주(沙洲)이다. 1681년 肅宗 신유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권두경 권두인 등과 교류가 깊었으며 문집 4권이 있다

14) 김성좌(聖佐) (1639~1708)

양좌의 동생이고 호는 송리(松里)이다. 1663년현종 계유(25歲)에 문과 급제하여 여러 고을을 역임하고 영해부사로 재임중 청백리로 이름이 있었으며 갈암 이현일의 문인이 되었다. 만년에는 빙계계곡에 세심정을 짓고 여생을 보냈다

<<김성좌(金聖佐) 임경(任卿) 현종4(계묘, 1663) 식년시(式年試) 丙科23>>

15) 김이달(履達) (1656~1736)

상기의 손자이며 호는 덕은이다. 1696년 숙종 병자에 생원이 되었으며 문장에 능하고 유집이 있다

16) 김이중(履中) (1657~1731)

상유의 손자이고 호는 북오이다. 1693년 숙종 계유에 무과에 올라 선전관을 거쳐 오위장이 되었다. 무신에 의병장으로 활동 하였다.

17) 김이규(履規) (1658~1732)

자는 자범이며 양좌의 아들이다. 1689년 숙종 을사에 진사가 되고 文詞가 뛰어 났다.

18) 김이구(履矩) (1662~1722)

양좌의 아들이며 호는 정락재(靜樂齋)이다. 일찍이 학문과 시례에 밝아  향당에 알려 졌다

유집이 있으며 대산 이상정은 빙청옥결(氷淸玉潔)이라고 칭찬하였으며 호조참판의 증직이 내려졌다

19) 김도응(道應) (1685~ ? )

사원의 6세손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회인현감을 역임하였다. <김도응(金道應) 행언(行彦) 숙종37(신묘, 1711) 식년시(式年試) 丙科23 >

20) 김성(聲) (1686~1760)

상유의 증손이고 호는 성고(省皐)이다. 문과에 등과하여 좌통례를 역임하였다. 초휘는 성응(聲應) 이였으며 강경시(講經時) 어명(御命)으로 개명하여 성(聲)이 되었다

21) 김오응(五應) (1699~1749)

회(淮)의 현손이며 호는 구은(龜隱)이다. 경사에 정통하고 문사와 필법이 뛰어났다. 문과에 급제하여 병조정랑을 역임하고 함평현감으로 치적을 남겼다. 무신란으로 영남 피무(被誣) 당시 재위 유수로서 전 영남이 신원(伸寃)하였다

22) 김추응(秋應) (1700~1788)

상원의 증손이다. 1717년 숙종 정유에 생원이 되었다.

23) 김재응(載應) (1704~ 1797)

상린의 증손이고 호는 소암(素巖)이다. 눌은(訥隱) 이광정에게 배우고 경사에 밝으며 문장이 온아(溫雅)하였다. 유집과 사례집사(四禮集辭)가 있다.

24) 김종덕(宗德) (1724~1797)

상린의 현손이며 호는 천사(川沙)이다. 일찍이 가학을 익히고 대산 이상정에게 배웠다. 1753년 영조 계유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1779년에는 학행으로 천거되어 의금부도사가 되었다. 경사와 리학을 궁구(窮究)하여 문하에 많은 제자를 배출 하였으며 퇴계학통의 맥을 이었다. 저서로는 문집10책과 성학정로 성학입문 공문일통 석학정장 정본 고증 초려문답 부록 등을 남겼으며 동몽교재인 입본도 있다.

1992년에는 계명한문학연구회에서 연구자료총서 3집으로 전집이 행간 되었다

25) 김성응(誠應) (생몰미상)

사원의 6세손(5대손) 이고 호는 서파(西坡)이다. 족종(族從) 종덕에게 배우고 생원시에 입방(入榜)하였다

26) 김종필(宗泌) (1730~1789)

오응의 아들이고 호는 반농(半聾)이다. 성도(性度)가 청아하고 문장이 뛰어 났으며 문집이있다.

27) 김종경(宗敬) (1732~1785)

종덕의 동생이고 호는 구재(苟齋)이다. 재예와 총명이 뛰어 났으며 일찌기 이상정의 제자가 되었다. 1774년 영조 갑오에 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지평이 되었고 스승의 지시로 심경강록간보의 찬술에 힘썼으며 문집5권이 있다.

28) 김종구(宗九) (1732~1778)

상기의 현손이고 호는 운암(云菴)이다. 이상정의 문인으로 간담청아하였으며 정조조에 문과에 급제하여 전적이 되었고 유집이 있다.

29) 김종헌(宗憲) (1735~1805)

淮(회)의 6세손이고 호는 낙포(나무목변+樂圃)이다. 1795년 정조 을묘에 진사가 되었다. 경학이 높고 유집이 있다

30) 김종신(宗臣) (1735~1813)

종덕의 종제이고 호는 경재(絅齋)이다 이상정의 문인으로 정조조에 진사가 되었고 유고가 있다.

 

 

 

31) 김종국(宗國) (1739~1801)

회(淮)의 6세손이고 자는 경보(景輔)이다. 1768년 영조 무자에 생원이 되었다

32) 김종발(宗發) (1739~1801)

종덕의 동생이고 호는 용연(容淵)이다. 1777년 정조 정유에 문과에 급제하고 사헌부장령을 역임했다. 이상정의 문인으로 도학이 고명 했다. 문집4권과 유가요람,예서 등이 세상에 전한다

33) 김종섭(宗燮) (1743~1791)

종덕의 동생이고 호는 제암(濟菴)이다. 어릴적 부터 총명이 뛰어났으며 이상정의 문인이다. 1768년 영조무자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학행이 높았으며 문집 4권이 있다

34) 김종식(宗軾) (1745~1816)

회(淮)의 6세손이며 호는 가은(稼隱)이다. 1777년 정조 정유에 생원이 되었다. 학문이 깊고 사우간에 중망이 있었다

35) 김종준(宗駿) (1747~1821)

종덕의 종제이고 호는 芹谷(근곡)이며 이상정의 문인이다. 1789년 정조 을유에 생원이 되고 필법이 능했으며 유고 2권이 있다.

36) 김성진(聲進) (1741~1807)

사정의 8세손이고 호는 괴음당(槐陰堂)이다. 족대부(族大父) 재응(載應)에게 배우고 경학이 깊었다. 中庸圖(중용도)와 강목감작편이 있으며 문집 3권이 있다

37) 김양직(養直) (1742~1774)

사원(士元)의 9세손이고 자는 덕여(德汝)이다. 1771년 영조 신묘에 생원이 되었다

38) 김청진(淸進) (1757~1837)

사원의 8세손이고 호는 칠송(七松)이다. 족숙 종덕에게 배우고 경학이 높았다. 1801년 순조 신유에 생원이 되고 유집이 있다

39) 김경진(景進) (1767~ ? )

회(淮)의 7세손이고 자는 절계(折桂)이다. 1809년 순조 기사에 생원이 되었다

40) 김성진(誠進) (1768~1837)

상기의 6세손이고 호는 서오(西塢)이다

1814년 순조 갑술에 생원이 되었다 족부 종덕을 사사 하였으며 천학역행으로 사우간 중망이 있었다

41) 김양휴(養休) (1777~1854)

良佐의 6세손이고 호는 율원(栗園)이다. 일찍이 족대부 종덕과 외왕고(外王考) 이종수(李宗洙)를 사사하고

만년에는 남한조(南漢朝)에게 배워 학문이 높았다. 문집 5권이 있다

42) 김양경(養絅) (1784~1854)

양좌의 6세손이고 자는 미언(美彦)이다. 1831년 순조 신묘에 진사가 되었다

43) 김양정(養楨) (1785~1847)

회(淮)의 8세손이며 호는 정암(定菴)이다. 1834년 순조 갑오에 생원이 되었다. 일찍이 정종노(鄭종魯)를 사사하여 학문이 고명하고 후진을 지도 했다. 문집 8권이 있다

44) 김양식(養植) (1791~1862)

양정의 동생이고 호는 지암(止菴)이다. 1831년 순조 신묘에 진사가 되었다. 형 양정과 더불어 독지호학(篤志好學)하고 문집 3권이 있다

45) 김양징(養徵-삼수변) (1794~1856)

종섭의 손자이고 호는 백암(栢菴)이다. 1849년 헌종 기유에 생원이 되고 자성이 명민하고 시집이 있다

46) 김양린(養麟) (1796~1870)

종경의 손자이고 호는 竹下이다. 1835년 헌종 을미에 생원이 되고 經史에 박습하고 시집이 있다

47) 김의유(義裕) (1800~1854)

士元의 10세손이며 호는 思村이다. 1836년 순조 병 신에 문과에 급제하고 正言이 되었다. 문장과 덕망이 있었다

48) 김양범(養範) (1802~1879)

종발의 손자이고 호는 晩同(만동)이다. 1844년 헌종 갑진에 생원 진사 양시에 합격했다. 王考의 심법을 전수받아 독행호학 하였다. 만동서숙을 지어 문생을 기르고 유고가 있다.

49) 김석유(奭裕) (1805~1868)

의유의 동생이고 호는 奇山이다. 정제 柳致明을 사사하여 경학이 높고 사우의 推重(추중)이 있었다. 문집 5권이 있다

50) 김기선(驥善) (1806~1883)

양식의 아들이고 호는 기서(沂墅)이다. 1835년 헌종 기미에 생원이 되었다. 학문과 덕망이 높았으며 유집 2권이 있다

51) 김노선(魯善) (1815~1872)

양정의 아들이고 호는 기계(奇溪)이다. 1865년 철종 을유에 생원이 되었다. 정제 柳致明을 사사하여 학행이 높았고 도천(道薦)의 물망이 있었다. 유집 10권이 있다.

52) 김수익(壽翼) (1815~1872)

사원의 11세손이고 호는 운고(雲皐)이다. 1852년 철종 임자에 생원이 되었다. 탁락대절(卓落大節)의 높은 기개가 있었다

53) 김상종(象鍾) (1848~1908)

수익의 아들이고 호는 운산(云山)이다. 가학을 익히다가 서산 김흥락에게 배웠다. 문장이 웅휘(雄輝)하고 행금이 독실했다. 1896년 고종 병 신에는 의성의 의병대장에 추대(推戴)되어 구성산(九成山) 전투에서 많은 전과를 올렸으나 황산(凰山)전투에서 참패하고 파병(破兵)조칙(詔勅)에 의해 전진(戰陣)을 해산 했다. 연방집(聯芳集)이 있으며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 받았다.

54) 김수욱(壽旭) (1852~1902)

종덕의 현손이고 호는 좌산(左山)이다. 서산 김흥락 문하에서 배우고 문학과 시례에 밝아 몸소 실천 했다. 병 신에는 운산공 상종과 더불어 창의 하여 소모장(召募將)이 되고 전쟁에 참여 했다. 건국포장(建國褒狀)을 추서 받았다.

55) 김수담(壽聃)

양징(養徵-삼수변)의 손자이고 자는 근수(謹搜-재방변 없음)이다. 강인한 성품에 가학을 익히다가 운산공 상종과 더불어 창의하여 선봉장이 되고 전공을 세웠으나 1896년 3월29일 황산전투에서 순국 했다.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 받았다

56) 김수협(壽莢) (1853~1896)

상원의 9세손이고 자는 영수(英搜-재방변 없음)이다. 가학을 익히다가 운산공 상종과 더불어 창의하여 관향장(管餉將)이 되어 전공을 세웠으나 1896년 3월 29일 황산전투에서 김수담과 함께 순국했다.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 받았다

57) 김상호(相鎬)(1865~ ? )

양좌(良佐)의 9세손이고 자는 우창(遇昌)이다. 1894년 고종 갑오에 진사가 되었다

58) 김시호(時鎬) (1876~ 1916)

종발의 6세손이고 호는 죽헌(竹軒)이다. 한말에 주사(主事)를 역임 하였다

59) 김호직(浩直) (1874~ 1953)

세종(世鍾)의 아들이고 호는 우강(雨岡)이다. 1894년 고종 갑오에 진사가 되었다. 향산(響山) 이만도(李晩燾)에게 배우고 경사에 독실했다. 외화(外華)가 준수하고 사림의 추앙을 받았다. 문집 4권과 독집,동천자 한양가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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