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평의공파(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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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02.png 24. <영남선유 묵적(嶺南先儒墨蹟)내 선조님 친필 자료 소개>

           

 *자료 입수일시 : 1차 자료 발견  2002. 11. 13. 태영(군) 제공

                          2차 자료 발견 2003. 6. 27. 은회(익)-사진자료 복사 제공

                          자료 스캔 인터넷 공개 : 2003. 10. 15. 항용(제)

 

 *출전 자료명 : <嶺南先儒墨蹟> (1996. 李佑成 저)-영남선유묵적 (1996, 김항회, 대구화랑) 제공. 13분의 의성 사촌의 도평의공파 선조님들의 필적과 그림이 실려 있음.

 

1) 金士元   (7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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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士元 (1539∼1602, 중종34∼선조35)

 

 안동인, 字 景仁(경인), 號 晩翠堂(만취당), 居 의성 사촌

 

松隱 光粹(송은 ★광수)의 증손으로 尊姑從叔(존고종숙)인 謙菴(겸암) 柳雲龍(★류운용)과 함께 李滉(★이황) 문인이 되어 觀善詩를 手書로 받았다. 과거에 진출하지 않고 학문에 진력하였고 月瀾精舍(월란정사), 蓮臺寺(연대사), 滿月庵(만월암)을 왕래하면서 문답한 15회의 글을 도산전서에 남겼다.

임진란에 사림의 추대로 義成整齊長(의성정제장)이 되어 두 동생 金士亨(★김사형), 金士貞(★김사정)을 火旺山城(화왕산성)에 보내 倡義(창의)토록 하였고 飢民救恤(기민구휼)에도 전력하여 金氏義倉(김씨의창)이라 하였다.

道義相交(도의상교)는 李德弘(★이덕홍), 琴蘭秀(★금난수) 등이며 [愼言行, 勤讀書, 務農桑}(신언행, 근독서, 무농상)을 좌우명으로 하였다.

 

后山精舍(후산정사)에 奉享되고 문집 2권1책이 전한다.

 

●필적 1점 :

 

2) 金宗德 (35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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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金宗德 (1724∼1797, 경종4∼정조21)

 

안동인, 字 道彦(도언), 號 川沙(천사), 居 의성 사촌, 松隱 光粹(송은 ★광수)의 10세손, 南應(★남응)의 자로

 

李象靖(★이상정)의 문인이다. 1753년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나 出仕(출사)에 뜻이 없어 오직 인격수양을 바탕으로 선현들의 학설을 이해하고 실천하였다. 李大山(★이상정)의 유언에 [학문을 더욱 열심히 하여 학문을 보후하고 밝혀 달라]는 부탁과 함께 손자인 李秉運(★이병운), 李秉遠(★이병원)을 師事(사사)토록 하였다.

스승이 졸한 후에 강학소인 孺子亭(유자정)을 지으니 영남 동북쪽 선비들이 운집하여 당시 퇴계학파의 구심점이 되었으며 만년에 의금부도사에 제수되었으나 취임치 않았다.

저서 聖學正路(성학정로), 聖學入門(성학입문), 草廬問答(초려문답), 孔門一統(공문일통), 政本(정본), 考證(고증) 등과 문집 19권10책이 전한다.

 

●이 글은 스승 李象靖(★이상정)에게 보낸 편지이다.

 

3) 金宗敬 (36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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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金宗敬 (1732∼1785, 영조8∼정조9)

 

안동인, 字 直甫(직보), 號 苟齋(구재), 居 의성 사촌, 천사 ★종덕의 동생으로 李象靖(★이상정)의 문인이며 일찍이 經史子集(경사자집)에 정통하였다. 1774년 문과에 급제, 성현도찰방과 사헌부지평에 제수되었으며 곧 관직에서 물러나 학문에 열중하면서 스승의 명에 따라 心經講錄刊補(심경강록간보)를 편찬중 졸했다.

세인들이 四 (사체 =종덕, 종경, 종발, 종섭)先生이라 호칭하였으며 4형제 모두 생원 문과에 급제하니 金昆玉弟(김곤옥제)라 하였다.

 

見聞錄과 遺稿 5책이 전한다.

 

●필적 1점 :

 

4) 金宗燮 (38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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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金宗燮 (1743∼1791, 영조19∼정조15)

 

안동인, 字 弘輔(홍보), 號 濟庵(제암), 居 의성 사촌, 천사 ★김종덕의 동생으로

 

★이상정의 문인. 천성이 沈靜(침정)하고 才智(재지)가 출중하여 스승의 촉망을 받았다. 1768년에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나 出仕(출사)의 뜻을 끊고 居敬窮理(거경궁리)로 爲己之學(위기지학)에 전심하였으며 先師의 遺業인 心經講錄刊輔(심경강록간보) 편찬중 졸하였다. 申體仁(★신체인), 趙述道(★조술도), 鄭(王+業)(★정?), 李(土+禹)(★이?) 등과 道義로 相交하였고 저서 大山書節要 5권과 문집 8권4책이 전한다.

 

●필적 1점 :

 

5)  金慶進 (40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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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400

 

金慶進 (1752∼1794, 영조28∼정조18)

안동인, 字 日章(일장), 號 聲灘(성탄), 居 의성 사촌, 천사 ★종덕의 子로

대산 ★이상정을 사사하여 학문이 성취되었으며 庭訓(정훈)으로 과업에 뜻을 두지 않고 위기지학에 몰두하여 궁행실천에 전심하였다. ★이매순, ★최화진, ★조우?, ★이주정, ★이우강, ★이종주 등과 友誼(우의)가 敦篤(돈독)하였으며, 특히 大學, 中庸, 心經, 近思錄 등을 깊이 탐독하여 도학의 심원을 얻었다. 44세 졸하니 遺稿가 전한다.

 

●이 글은 소호리 한산이씨문에 보낸 편지이다.

 

6) 金川進 (41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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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金川進 (1759∼1841, 영조35∼헌종7)

 

안동인, 字 順光(순광), 居 의성 사촌, 容淵 ★종발의 子로,

경주 香壇(향단)의 外舅(외구)인 ★이헌주에게 道行立志를 배웠고 장조부인 백불암 ★최흥원에게 학문의 요체를 얻었다. 과장에는 뜻이 없어 오직 위기지학에 몰두하였으며 先考(선고) 4형제분의 遺稿를 巾箱(건상)에 성심 보관하여 편집간행토록 하였으며 만년에 西林下에 草屋(초옥)을 지어 詩書自娛(시서자오)하였다. ?錄과 詩集이 잔한다.

 

●이 글은 香壇 외가에 보낸 편지이다.

 

7) 金養休 (44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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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金養休 (1777∼1854, 정조1∼철종5)

 

안동인, 字 ?弘, 號 栗園(율원), 居 의성 사촌, 송은 ★광수의 후손으로 천사 ★김종덕 형제에게 德行立志의 정로를 얻었고 외조부인 ★李宗洙에게 경전을 배웠으며 만년에 ★南漢朝에게 心經 近思錄 등 성리학을 배웠다. 일찍이 과거에 뜻을 끊고 궁행실천의 학문에 진력하여 후진교육에 성심하였다. 문집 10권5책이 전한다.

 

●필적 1점 :

 

8) 金養禎 (45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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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金養禎 (1785∼1847, 정조9∼헌종13)

 

안동인, 字 濟彦(제언), 號 定菴(정암), 居 의성 사촌, 송은 ★광수의 후손으로, ★海進의 子로

★鄭宗魯의 문인이다. 1834년 사마시에 합격하고 1841년 용궁현감이 되었으나 정란이 심함으로 사직하고 고향에서 학문연구와 후진교육에 전념하였다. 영남유생을 대표하여 ★鄭立齋 贈諡疏를 올렸으며 ★정상진, ★이원조, ★이휘녕, ★금시술, ★황반노 등과 道義交分하였다. 저서 論士錄과 문집 9권5책이 전한다.

 

●필적 1점 :

 

9) 金養範 (47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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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金養範 (1802∼1879, 순조2∼고종16)

 

안동인, 字 士鍊(사련), 號 晩同(만동), 居 의성 사촌, 송은 ★광수의 후손, ★종발의 子로

王考(왕고)의 旨訣(지결)을 받아 학문에 전심하였으며 경전과 선현의 문집을 탐독하여 일상생활의 체험을 통하여 함양된 양식으로 법도에 따라 선행하니 향리에서 厚德君子라 하였다. 1844년 생원 진사 양시에 합격하였으나 出仕의 뜻을 버리고 晩同書塾(만동서숙)을 지어 학문에 전념하고 후진을 지도하였다. 유고가 전한다.

 

●필적 1점 :

 

10) 金魯善 (48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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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金魯善 (1811∼1886, 순조11∼고종23)

 

안동인, 字 子?, 號 奇溪(기계), 居 의성 사촌, 송은 ★광수의 후손, ★양정의 子로

 

★백형과 함께 종조부 ★芝山公에게 수학하였고 성장하여 ★류치명의 문하에서 학문의 심오함을 깨우쳤다. 1864년 생원시에 합격 교궁훈장에 추대되어 퇴폐된 문교와 분란한 기강을 바로잡아 儒風을 크게 향상시켰으며 흉년기한에는 窮族貧友(궁족빈우)에게 救恤(구휼)의 정을 아끼지 않았다. ★류후조, ★대원군, ★이원조, ★정유선, ★신석우 등 서신왕래를 문집 8권4책에 전한다.

 

11) 金浩直 (62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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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金浩直 (1874∼1953, 고종11∼)

 

안동인, 字 孟集(맹집), 浩 雨岡(우강), 居 의성 사촌, 송은 ★광수의 후손으로 丙申 의병장 ★象鍾의 동생인 ★會鍾의 子로 향산 ★이만도의 문인이다. 10세에 少微史 전질을 口誦(구송)하는 才敏(재민)으로 經史百書(경사백서)에 정통하였다. 1894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이듬해 을미사변에 의병을 일으킨 선친을 따라 구봉산, 감은, 산운의 천변, 황산, 금성에서 왜군과 크게 접전하여 공을 세웠다. 그후 급변하는 정세를 성찰하기 위해 평양, 원산, 청진, 개성 등을 관람하고 기행문을 남겼으며 경숙국치후 두문불출하고 근검절약을 몸소 실천하여 길흉대소사의 간소화에 노력하였다.

 

문집 9권5책이 전한다.

 

●이 글은 천사 ★김종덕의 속집 후기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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