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사연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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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02.png 22) 제2회 여름캠프 후기

          (2003. 8. 6. 글-윤식(문). 사진-발용(군) 제공)

 ≪ 답사 일정 ≫  

◆ 8월 3일(일)  

서안동 IC 집결 → 회곡동 → 낙암정 → 상락대 → 음수재  

◆ 8월 4일(월)  

음수재 → 주왕산 → 청송 얼음골 → 영덕 해상공원 → 수안김씨 집성촌 → 보경사 → 영덕 월포해수욕장  

◆ 8월 5일(화)  

월포해수욕장 → 귀가(일부 참가자 개인적 답사)  

 

≪ 참가 가족 ≫  

※무순:괄호 안은 가족  

★총 - 10가족 32명  

☆영환 - 8명(자당 어른, 부인, 2남 3녀)  

☆재원 - 2명(부인)  

☆상석 - 3명(1남 1녀)  

☆윤만 - 2명(1남)  

☆발용 - 5명(부인, 1남, 2조카)  

☆주회 - 4명(부인, 1남 1녀)  

☆태서 - 1명  

☆항용 - 4명(부인, 1남 1녀)  

☆정중 - 2명(1남)  

☆윤식 - 1명  

 

≪ 가족 소개 ≫  

 

☆영환 - 연로하신 자당 어른을 모시고 온 가족 8명이 참석하셨습니다. 답사 후 자녀 5명은 지난 해에 이어 제천에서 영월, 태백 등지를 도보 여행한 뒤 서울로 돌아올 예정이라고 합니다. 무사히 귀가하도록 격려 부탁드립니다.  

 

☆재원 - 지난 해 우환을 극복한 부인께서 여름캠프에 참가하여 모두들 반가운 인사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상석 - 늘 관심을 갖고 있던 상석(在항) 종친께서 바쁜 사업 중에 초등학생 자녀 두 명과 함께 처음 참가하여 새로운 활력소가 되었습니다.  

 

☆발용 - 지난 해에 전 가족이 참가한 발용(會항) 종친께서는 올해 처음으로 조카 2명을 동반하여 참가 가족 수에서 2위를 차지하였습니다.  

 

☆태서 - 제1회 행사에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당시 아버님께서 위중하셔서 올해 처음 참가하였습니다. 얼마 전 아들이 군에 입대하였습니다. 무사히 군복무 마칠 수 있도록 건강과 무운을 빌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건강과 무운을 빌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정중 - 장성한 큰아들이 올해 처음 참가하여 든든하고 보기 좋았습니다. 곧 군에 입대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무사히 군복무 마칠 수 있도록 건강과 무운을 빌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윤만, 주회, 항용, 윤식 - 지난 해와 큰 변화 없습니다.  

 

< 답사 내용>

 

≪ 8월 2일(토) ≫  

 

◆ 포항 재원, 대구 정중 종친 사전 점검 완료  

 

◆ 서울, 경기, 청주 등 참가자들 출발 준비 완료  

 

  충렬공 할아버지께서 안동에 계신 관계로 재원, 정중 종친은 지난 해에 이어 힘든 일을 연거푸 맡으셨습니다. 재원 종친께서는 완벽한 행사 진행을 위해 답사지역을 3회 방문하면서 시간 계획까지 빈틈없이 처리해 주셨습니다. 정중 종친 역시 경주지역 답사지와 숙박시설 등을 미리 총점검하여 참가자들의 후속 답사 요청에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 8월 3일(일) ≫  

 

◆ 07:00~08:00 - 영동고속도로 및 중앙고속도로  

 

  06:00시부터 각각 출발하여 안동으로 집결 중인 참가자들은 고속도로로 진입하기 직전부터 전화통화로 안전운행을 당부하는 한편 위치를 파악하였습니다.  

 

◆ 09:00 - 치악휴게소  

 

  중부고속도로 입구에서 전화통화 후 중앙고속도로 치악휴게소에서 영환 종친 가족 8명과 태서 종친 차에 동승한 윤만, 윤식 종친이 합류하였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영환 종친께서 팔뚝만큼 커다란 옥수수를 건네주십니다. 입이 심심하던 차라 침이 꼴딱 넘어갑니다. 가늘게 내리던 빗발이 치악휴게소에 도착하니 제법 굵어졌습니다. 행사기간 내내 비가 꽤 많이 올 거라는 일기예보 때문에 걱정이 앞섭니다. 하지만 마음 한켠으로는 믿는 구석이 있었습니다. 작년에 묘하게도 일기예보와 달리 행사기간 내내 쾌청이었거든요. 참가자들은 다 같은 마음이었을 겁니다.  

 

◆ 09:35~10:40 - 1차 집결지(서안동 IC)에 10가족 32명 집결  

 

  아니나 다를까 제천쯤 오자 비가 멎고 흐린 하늘입니다. 해가 쨍쨍 내리쬐는 것보다 운전하기 더 좋은 날씨입니다. 안동 인근에 다다르자 이번에는 하늘이 조금 더 벗겨지더니 서안동 IC에 도착할 즈음에는 맑은 하늘이 되었습니다. 1차 집결지에는 항용 종친께서 09:35분에 가장 먼저 도착, 참가자들을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속속 참가자들이 모여들었고, 모두들 10년, 20년 만나 왔던 것처럼 반갑게 손을 맞잡습니다.  

 

◆ 10:40 - 서안동 IC 출발, 회곡 향(向)  

 

  출발하기에 앞서 주회 종친께서 애써 엮은 답사자료(<제2회 안사연 여름캠프 - 안동 상락대, 포항 보경사 원진국사비>)를 나누어 주십니다. 이 책자 한 권만 있으면, 행사 후에도 두고두고 답사 내용을 반추할 수 있습니다. 지난 해에 이어 올해도 애 많이 쓰셨습니다.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항용 종친께서는 문.무관복을 입으신 충렬공 할아버지 영정을 넣은 열쇠고리를 참가자 전원에게 행사 기념품으로 나누어 주십니다. 매일 할아버지를 뵈올 수 있는 열쇠고리라 다들 입이 함박만해집니다.  

 

  차량 8대에 작년처럼 녹색 띠를 매달아 운행 중에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베스트 드라이버 재원?정중 종친께서는 각각 선두와 후미에서 안전운행을 이끕니다. 두 분 덕에 행사기간 내내 작은 사고 하나 없이 무사히 끝날 수 있었습니다.  

 

◆ 10:52 - 회곡동 착(着)  

 

  꼭 1년 만에 우리 문중의 성지 회곡동에 돌아왔습니다. 연어가 바다로 나갔다가 강으로 되돌아올 때 그 물줄기 냄새를 따라 온다지요. 마치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산굽이를 돌 때마다 눈에 익은 풍경이 반갑습니다. 멀리 상락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 이제 작은 고개 하나만 넘으면 할아버지 계신 회곡입니다.  

 

◆ 10:52~11:42 회곡동 할머니 단소 참배 및 유적 답사  

 

①회곡동 할머니 단소 참배  

 

  회곡리에 도착한 답사팀은 미리 연락한 대로 상락재(上洛齋)를 돌보고 계신 봉회 종친을 방문하였습니다. 상락재는 냉평국대부인 죽주박씨(冷平國大夫人 竹州朴氏) 할머니 재실입니다.  

 

  잠시 상락재를 둘러본 답사팀은 곧바로 충렬공 할아버지 유허비각에 올라가 인사를 드리고 회곡동 할머니 단소로 올라갔습니다. 여러 차례 거론된 이야기입니다만, 할머니 단소는 전면과 좌우측은 반듯한 일직선이고, 뒤쪽은 곡선을 이루는 전방후원형입니다. 충렬공 할아버지 묘소도 같은 형태입니다. 이와 관련된 내용은 여러 차례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으므로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②충렬공 유허비각 뒤에 벽화가 있었다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내려오는데 발용 종친께서 '휴허비각 뒤에 벽화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십니다. 작년 여름캠프 행사 때 들은 이야기라고 합니다. 다들 눈이 커집니다. 놀라운 이야깁니다.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재실 쪽으로 내려오는데 안동시에 사시는 종친 4분[성식(成植), 봉수(鳳洙), 광득(光得), 동수(東洙)]께서 급히 유허비각 쪽으로 올라오십니다. 연세 지긋하신 종친들께서 시원한 베적삼을 입으셨습니다. 의성 사촌마을이 고향인 정중 종친께서 '여름철에 최대로 멋을 낸 차림'이라고 설명해 주십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 뒤 얼른 유허비각 뒤쪽에 있던 벽화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러자 기다리기라도 하신 듯 쫘~악 이야기보따리가 풀립니다. 봉수 종친께서 학교 다닐 무렵 유허비각을 새로 세웠는데, 그때 비각을 넓히느라 그 뒤에 있던 벽화를 깼다는 것입니다. 사진기가 귀하던 때라 사진도 찍지 않았답니다. 그 벽화는 '1965년 이전까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하였습니다. 연도를 재확인하기 위해 연도를 재차 여쭈어 보자 '1965년까지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고 재확인해 주셨습니다. 봉수 종친의 기억에 의하면, 벽화 내용은 '호랑이, 용, 거북 비슷한 그림과 무기를 든 무사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고 합니다. '닭 비슷한 그림(주작도)은 없었느냐는 물음에 그건 기억이 잘 안 난다.'고 하십니다. 그림이 한 장이었느냐고 다시 여쭙자 '비각 뒤쪽에 있는 바위벽을 따라 길게 그려져 있었다.'고 답하시며 '아직도 눈에 생생하다.'고 하십니다. 적어도 여러 폭이었거나, 두루마리처럼 길게 옆으로 그려졌던 모양입니다. 깨진 벽화 조각은 그 자리에 그냥 두었다고 합니다. 향후 정밀 조사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위의 증언을 종합해 보면 적어도 벽화는 사신도와 호위 무사를 그린 것임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벽화 제작 시기는 현재로서는 단정하기 어려우나 최소한 유허비를 다시 세운 조선 중기까지, 더 멀리는 고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습니다.(게시판에 올라온 '충렬공 유허비각' 관련 글 참조) 아쉬운 마음에 바위벽을 만져보고, 좌우쪽을 살펴보기도 했지만 그 흔적이 남아 있을 리는 없었습니다.  

 

※벽화 문제는 발용 종친께서 이미 제기하신 바 있고, 유허비각에 대해서는 주회 종친께서 자세히 정리해 놓은 자료가 있습니다.  

 

③충렬공 유허비각 옛 좌대 확인  

 

  현 유허비각에서 정면을 보면 작은 산이 있습니다. 이 산자락에 회곡동으로 들어오는 편도 1차선 도로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길가에 붙은 밭에는 들깨가 무성한데, 그 밭둑에 충렬공 유허비각 옛 좌대가 있습니다.  

 

  크기는 전면 1보, 측면 1.5보이며, 아무런 장식이 없는 직사각형입니다. 한눈에 투박한 형태입니다. 대략 허리 높이이며, 앞부분을 계단처럼 깎아낸 점이 특징입니다.  

 

  언뜻 보면 밭으로 올라가는 계단처럼 보이지만, 계단이라고 하기에는 층계의 단 높이가 아주 낮아 계단으로 쓰기에는 어색합니다. 그리고 맨 위에 직사각형으로 길게 홈이 파여 있습니다.(현 유허비는 가로 65cm, 두께 28cm입니다.) 이 좌대의 제작 시기는 주회 종친께서 우리 족보를 참조하여 올리신 글을 고려할 때, 영조41년(서기 1765년) 3월 또는 그 이전으로 추정됩니다. 현 유허비각의 좌대는 거북 모양인데, 장식미가 거의 없이 투박한 형태입니다. 크기도 그리 크지 않습니다. 흔히 경주 지역이나 유명 사찰 등지에서 보는 좌대는 아주 크고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장식이 화려한데, 그러한 형태와는 정반대입니다. 이런 특징들로 보아 석조물의 장식성이 현저히 줄어든 조선조에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조심스레 생각해 봅니다. 어찌 되었든 옛 유허비 좌대는 보호 방안이 시급하다 하겠습니다.  

 

  이외에 현 유허비와 비각, 회곡동 할머니 단소에 대해서는 게시판에 올라온 상세한 글들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11:42 회곡동 출발, 상락대 향  

 

  회곡동을 나와 상락대가 훤히 건너다보이는 길가에 작년처럼 차를 세우고 잠시 상락대를 바라봅니다. 작년에 사진을 찍었던 곳입니다. 건너편 산줄기와 상락대가 눈앞에 빤히 보입니다. 팔을 쭉 뻗으면 바로 닿을 것 같습니다. 상락대 왼쪽으로는 낙암정 팔작지붕이 환히 보입니다. 빤히 건너다보이면서도 다리가 없어 상락대로 가기 위해 먼 길을 돌아야 했습니다. 우리는 회곡동에서 차를 되돌려 나왔지만, 회곡동에서 길을 따라 오른쪽으로 계속 가다가 좌회전해서 상락대로 들어오는 길도 있습니다. 어느 길로 가든 거리와 소요시간은 그리 큰 차이가 없습니다. 상락대로 가는 도중 특별한 이정표가 될 만한 것이 없어 여러 종류의 지도를 찾아보았으나 설명하기가 어렵고 도움도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와 관련된 자료는 지도에 표시해서 별도로 올리겠습니다.  

 

<상락대 가는 길>

 

11:45 회곡동 입구에서 출발 → 꽤 큰 고개를 넘어서 12:07 검암1리 노인회관(도로 왼쪽), 맞은편(도로 오른쪽) 느티나무 2그루 → ◆수퍼(상호:동네수퍼)에서 우회전 → 시멘트 포장 2차로 → 미천(검암교) → 제방길 → ◆도로 표지판(직진 여담, 우회전 단호)에서 우회전하여 농로를 따라 들어감.(지나치기 쉬우나 반드시 이곳에서 우회전해야 함) → 경사 심해짐(외길, 산길). 이전까지는 회곡동을 등지고 달려서 회곡동 쪽이 보이지 않으나, 이곳에서 우회전하면 거의 정반대 방향으로 돌아서므로 회곡동이 보이게 됨. → 12:15 고개 정상 부근, <낙암정> 표지판 → ◆산 아래로 내려가는 도로에서 움푹 들어가 산허리가 잘록한 지점 → 전봇대가 여럿 있음. 길가에 무덤이 있고, 상석에 <공인 안동김씨>라 새겨져 있음. → 산허리쯤에서 강 쪽으로 내려가는 오솔길을 따라 50m쯤 가다가 오른쪽 밭둑을 따라 솔밭으로 들어감 → 강 절벽으로 거의 다 가서 오석에 <上洛臺碑>라 새겨진 표석 있음. 주위에 소나무가 많으나 유독 나무가 자라지 않는 넓은 공터가 있음. 여기가 '상락대'임. 오른쪽에 주위에서 가장 높은 산봉우리(마암)가 있음.

 

  *마암은 옛날부터 마을산으로 마을제를 지내던 곳이라 함. 상락대비 부근만 우리 일가분이 개인 소유로 갖고 있다고 하며, 그 이외에는 모두 타 성씨 소유라고 함.

 

  상락대 오른쪽에 우뚝 솟은 봉우리는 '마암'입니다. 상락대비를 복원할 당시 이곳을 상락대 위치로 잘못 알았으나, 안동지역 종친회에서 여러 차례 단호리의 노인들을 찾아다니며 자문을 구한 결과 상락대는 마암 옆 봉우리임을 고증받았다고 합니다.

 

  이곳을 상락대로 고증한 사람은 이곳 토박이인 박씨 노인으로 당시 100세가 넘은 분이었다 합니다. 또한, 동수 종친께서 상락대 뒤쪽 밭주인 박응수 씨에게 정확한 위치를 확인해 보니 "절벽 쪽으로 나무가 안 나는 데 가 봐라. 거긴 아무것도 안 난다. 쉽게 찾을 수 있다."고 하였답니다. 그곳에 가 보니 예전에 상락대비를 세웠던 좌대를 찾았다고 합니다. 찾고 보니 바로 상락낭자의 무덤이 있던 곳이랍니다. 동수 종친께서 우리 족보에 실린 사진을 보고 앞쪽 산능선을 비교해 보니 역시 사진에 나타난 능선 그대로였답니다. 답사팀도 앞쪽 나뭇가지를 치우고 옛 상락대비 사진 자료와 비교해 보니 현 복원 위치의 능선 그대로였습니다. 상락대 밑에는 물살이 파고들어 회곡동 쪽에서 보면 마치 이마가 툭 튀어나온 것과 비슷합니다. 수영장 다이빙대처럼 앞으로 쑥 나갔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상락대 아래 절벽 쪽으로 내려가 보니 오금이 저릴 정도로 깎아지른 절벽이었습니다. 그 위에서 돌을 들어 던지니 수직으로 강물 속으로 떨어졌습니다. 이곳은 건너편에서 눈에 빤히 보이는 곳이나 접근하기가 어려워 안동지역에서도 상락대에 올라간 종친은 손에 꼽을 정도라 합니다.

 

<상락대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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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번 지점 - 꽤 큰 고개, 굴곡 심하고 긴 편임.

2번 지점 - 검암리, 검암노인회관 외에 특별한 랜드마크 없음.

3번 지점 - 도로 끝에 <동네수퍼>가 왼쪽에 있음. 반드시 오른쪽으로 우회전.

           얼마 가지 않아서 <미천>를 횡단하는 작은 다리 <검암교> 있음.

           제방길을 따라 직진, 도로 표지판을 보고 <단호>로 들어감(좁은 농로임),  

           농로로 들어가는 곳에 <낙암정> 표석 있음.

4번 지점 - <낙암정>에서 내리막길 시작됨. 내리막길 끝나는 산허리 잘록한 곳에서  

            강 쪽에 서 있는 전봇대를 따라 오솔길로 들어가서 50미터쯤 가서 오른쪽 밭둑으로 들어감.

5번 지점 - <상락대>. 솔밭 헤치고 들어가서 맨 끝 쪽임.   현재 사방 7보 정도의 꽤 넓은 공터에 상락대비 서 있음.

 

◆ 12:22 낙암정 도착, 점심 식사  

 

  회곡동에서 건너다보이는 낙암정(洛岩亭:안동시 남후면 단호리)에 드디어 도착하였습니다. 원래 계획은 상락대 아래에 텐트를 치고 점심을 먹을 생각이었습니다. 식사 후에는 남자들만 상락대에 올라가고, 가족들은 물놀이와 휴식을 취할 예정이었지요. 그런데 막상 물놀이를 즐기기에는 마땅치가 않았습니다. 도로 갓길에 차를 세운 다음 낙암정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습니다. 이 낙암정은 경북 문화재자료 194호로 문종 원년(1451년) 배환이 세운 정자입니다. 정자 안에는 의성김씨 여러 사람의 시가 걸려 있었습니다. 정면 3칸, 측면 2칸 반, 팔작지붕, 두리기둥집입니다. 마루는 우물마루였습니다. 멀리서 보기에는 매우 크고 웅장해 보였는데, 가까이서 보니 누하주(마루 밑에서 땅까지의 기둥)가 누상주(마루에서 지붕으로 이어지는 부분까지의 기둥)보다 짧아 비례가 영 어색합니다. 속된말로 '장거리 미인'이었습니다.  

 

  낙암정에 오른 답사팀은 아까 회곡동에서 뵈온 종친들과 정식으로 인사를 나누고 안동지역에 거주하시는 종친들께서 충렬공 할아버지 묘소를 비롯해 문중 유적, 유물을 수호 보전하면서 느끼는 고충에 대해 격의 없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 중 대부분은 대종회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문제이기에 답사팀이 별다른 도움을 드릴 수 없어 아쉬움이 컸습니다. 다만, 지방에 거주하면서 열악한 조건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종친들이 계시기에 우리 문중의 앞날이 결코 어둡지만은 않다는 것을 재확인하였습니다.  

 

◆ 13:38 상락대  

 

  점심 식사 후 좁고 길다란 도로를 내려와 보니 도포 포장공사가 한창입니다. 길도 조금 넓어진 것 같습니다. 상락대는 회곡동에서 바라볼 때 연이어 있는 봉우리 중 가장 높은 부분이 아니었습니다. 작년만 하더라도 그곳에 상락대가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현지에 사시는 종친들의 안내와 설명을 들어보니 우리가 잘못 알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상락대는 낙암정에서 내리막길을 따라 내려오면 다시 길이 올라가는 지점이 있습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도로가 오목하게 들어간 지점입니다. 이곳은 표지가 될 만한 것이 전혀 없습니다. 전봇대가 산 아래쪽(오른쪽)으로 전봇대가 여러 개 있으므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시멘트 포장길이 아래로 쭉 뻗어 있는데 계속 따라가면 강물로 내려가게 됩니다. 전봇대에서 50미터쯤 되는 곳에서 오른쪽 밭으로 난 농로를 따라 들어가면 솔밭이 우거져 있습니다. 솔밭을 헤치고 2분 정도 들어가면 풀이 하나도 없는데 ����상락대비(上洛臺碑)����라 새긴 검은 표석이 있습니다. 이곳이 바로 상락대입니다. 상락대에는 충렬공 할아버지를 연모한 상락낭자의 전설이 어린 곳입니다. 이곳에는 전설로 전해 오듯 풀이 자라지 않는 평평한 곳입니다. 동수 종친은 예전에는 지금보다 훨씬 넓었다 합니다. 현재 풀이 나지 않는 지점의 넓이는 사방 7보 정도입니다. 상락낭자에 관한 전설은 게시판에 올라온 글들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답사팀은 상락대에 도착하자마자 간소하나마 제물을 진설하고 상락낭자 진혼제를 시작하였습니다. 제문은 항용 종친이 짓고, 헌작은 봉수 종친께서 맡으셨습니다. 상락낭자 진혼제문은 별도로 항용 종친께서 올리실 예정입니다.  

 

◆ 15:00~17:15 무릉리 다리 밑 개울  

 

  날이 무더워 땀도 식힐 겸 답사팀은 봉수 종친 등의 안내로 14:44분에 무릉리 다리 밑 개울로 향했습니다. 한여름 더위를 잠시나마 식힐 수 있었습니다.  

 

◆ 17:15~19:20  

 

  17:15분 무릉리 개울을 출발해 안동 시내로 들어와 삼원각에서 맛난 저녁을 해결하였습니다. 음식이 상당히 정갈한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지역 유림에서 즐겨 찾는 곳이라고 정중 종친께서 뀌띔하십니다. 식사 후에 작년에 맛본 안동 식혜가 나왔습니다. 맛은 비슷한데 같은 안동식혜이면서도 작년에 맛본 것과 조금 달랐습니다. 작년에 맛본 것은 좀더 날것에 가까웠는데, 오늘 먹은 식혜는 그보다 약간 더 숙성된 느낌이었습니다. 밥풀도 작년은 밥알 형태가 생생하게 남아 있었는데, 오늘은 훨씬 풀어진 형태입니다. 안동식혜도 집집마다 조금씩 다른 모양입니다. 귀한 식혜가 어느새 또 그리워집니다.  

 

◆ 19:20~20:15 삼원각 출발, 음수재 향  

 

  저녁 식사 후 휘발유와 가스를 넣은 뒤 답사팀은 음식점을 출발, 능동 음수재로 향했습니다. 음수재로 향하다 보니 작년과 마찬가지로 어느새 해가 져서 이정표를 기록하기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대신 이튿날 아침 되짚어 나오면서 도로 이정표를 기록한 것을 올릴 예정이므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음수재로 들어가자 재실을 관리하는 봉회 종친께서 반갑게 맞이해 주십니다. 두 번째 행사라 그런지 더욱 반갑게 맞이해 주십니다.  

 

* <음수재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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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제1회 여름캠프 때에도 밤늦게 음수재에 들어가서 길 안내를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이번에는 꼭 기록하려고 하였으나, 행사 관계상 해가 저물어서야 음수재에 들어가느라 기록할 수 없었습니다. 이해해 주시기 부탁드리며 대신 음수재에서 안동역까지 나오는 길을 안내합니다. 음수재 찾아가실 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다음에 안동 시내에서 음수재 들어가는 길을 꼭 확인하겠습니다.

 

08:38 음수재 → 비포장 길을 따라 큰길로 나감 → 08:50 자시람(옆에 커다란 돌표석에 <知禮>라 새겨져 있음.) → 08:30 말바위 → 08:58 덕왕사(감애1리) → 표지판 <좌회전 녹전>

 

※똑같은 표지판 2개가 있습니다. 도로를 고치느라 옛 다리와 새로 지은 다리 두 개가 있는 형태가 되었습니다. 두 다리 모두 사용합니다. 길 오른쪽에 큰 느티나무 있습니다. 음수재로 들어오실 때 2번째 표지판에 도착하시면 <녹전> 방향으로 좌회전해서 들어오시면 됩니다. 얼마간 가다 보면 비포장도로입니다. 현재 음수재 앞에 포장공사 중인데, 공사가 끝나면 전체가 포장될 것으로 보입니다. 세 갈래 길이 나오면 가운데 길로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입구에서 보면 이 길은 마치 농가로 들어가는 길 같은데 음수재로 들어가는 길입니다. 길을 잃게 되면 마을 주민에게 <능골> 또는 <죽송>을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 09:00 지내 1리 → 09:01 안동소주휴게소 → 09:03 태2리(인근 LG주유소) → 09:04 와룡. 표지판 <직진 길안, 안동(35번 도로), 좌회전 예안(933번 도로)>

 

※와룡은 조금 큰 동네입니다. 와룡농협 등 시가지입니다. 인근에 SK와룡주유소가 있습니다.

 

→ 09:05 퇴1리 & 가구1리 → 09:08서지(인근 SK주유소 & 철길 굴다리) → 09:11 명륜동사무소(안동 시내 시작) → 09:14 삼거리 표지판(왼쪽 <안동역, 검찰청>, 오른쪽 <대구, 영천> → 로터리

 

※길이 묘하게 생겼습니다. 도로가 오른쪽으로 돌게 돼 있는데, 길을 따라 오른쪽으로 돌다가 좌회전해야 합니다.

 

→ 조금 더 가서 또 좌회전 → 09:15 안동역

 

※위에 소개한 길은 안동 시내로 나오는 길입니다.

 

중앙고속도로를 이용할 때에는 서안동IC에서 권태사묘 쪽 도로를 이용해 6번 지점으로 들어가는 길이 더 편하다고 합니다. 저는 여름캠프 때 외에는 혼자서 음수재에 가 보지 않아서 이쪽 길에 대해서는 정확한 정보를 드릴 수 없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닿는 대로 안내도를 다시 작성토록 하겠습니다.

 

◆ 20:15 영정각 참배  

 

  음수재에 도착한 답사팀은 봉회 종친의 안내를 받아 영정각으로 향했습니다. 1년 만에 할아버지를 다시 뵈오며 답사팀은 이번 행사도 무사히 끝나기를 빌었습니다. 참배를 마치고 영정각을 나오는데 시멘트 계단에 커다란 짐승 발자국이 찍혀 있습니다. 작년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 못 보았는데, ����산신 발자국����이라는 봉회 종친의 설명을 듣고 보니 그럴 듯도 합니다. 얼마 전 동물학을 전공한 종친(교수로 재직)께서도 음수재를 다녀가셨는데, 이 발자국을 보고 예사 발자국이 아니라고 한 바 있답니다. 그분 얘기로는 ����산신(호랑이) 새끼���� 발자국이라 했다는데, 발자국 끝에 날카로운 발톱 모양이 찍혀 있습니다. 적어도 ����산신 새끼����가 아니더라도 꽤 사나운 맹수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모두들 어둠 속에서 손전등을 비춰 가며 유심히 들여다봅니다. 참 신기한 일입니다. 한참 동안 발자국 주위를 둘러보다가 시원한 음수재 마루 위로 올라갔습니다. 바로 그때였습니다. 지금 안동 시내에서는 집중호우가 쏟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니, 여기는 빗방울 하나 떨어지지 않는데……참~~! 순간 번쩍 하고 산 너머 저곳에서 섬광 하나가 밤하늘 어둠을 긋고 사라집니다.  

 

≪ 8월 3일(일) 밤 ≫

 

◆ 20:50~21:30 친교의 시간

 

  영정각에서 충렬공 할아버지께 큰절을 올린 뒤 답사팀은 20:50분 음수재 대청에 모여 친교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 자리에서 항용 종친은 행사 1개월 전부터 계획을 수립, 예비 모임을 비롯해 홈페이지, 전화 통화 등으로 수차례에 걸친 협의를 통해 답사계획을 수정․보강한 과정을 설명하였습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30여 명의 대가족이 원활히 움직일 수 있도록 빈틈없는 계획을 수립한 항용 종친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뒤이어 참가자들은 가족 소개 및 근황을 각각 설명하였습니다. 조상님 음덕으로 다들 큰 변화 없이 무난히 지난 한 해를 보내고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 21:30~21:50 안사연 학술행사

 

◇ 주제:선조님들의 치수사업 / 장소:음수재 / 발표:윤만 종친

 

◇ 주요 내용

 

①농지 조성을 목적으로 간척사업 중 문헌에 나타난 최초의 기록은 고려 고종 35년(1248년) 몽고 병란시 식량조달을 위해 병마판관 충렬공(휘 방경)께서 평안 북부(안주, 청천강 하구)의 갈대섬(위도)에 제방을 축조하여 농지를 조성한 후 백성들에게 경작케 한 것이다.

 

②위도 간척 사업에 대한 <신증동국여지승람>, <고려사>, <남사록> 등 문헌 기록

 

③강화도 제방에 대한 강화문화원 평가 - "강화도 최초의 둑과 제방(좌․우둔전)을 축조한 병마판관 김방경에 대하여 연구를 하여야 한다. 오늘날 강화도가 이처럼 광범위하게 바다가 옥토로 변하게 된 것도 고려시대의 둑과 제방의 축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강화문화원 <강화사>, <강도의 맥>)

 

④충렬공 할아버지께서 의림지를 보수하였으며, 수산제 둑을 쌓아 일본 정벌을 위한 군량을 확보하였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신증동국여지승람>

 

⑤반계 유형원의 기록(<동국여지지>) - "전북 고부의 눌제(訥堤)는 고려시대에 김방경이 개축하였다.(世傳高麗時金方慶因舊修築)"

 

⑥경기도 장호원, 황해도 재령평야, 호남, 서울 새내(잠실) 등 전국 각지에 산재한 '자점의 보'를 통해 살펴본 낙서공(휘 자점) 할아버지의 치수사업 및 원통이고개 전설

 

⑦쌍계재(휘 뉴) 할아버지의 치수사업

 

◆ 3행시 짓기

 

  지난 해와 마찬가지로 선조님을 되돌아보는 의미에서 "상락대음수재"를 운자로 하는 3행시 짓기(실제로는 6행시 짓기)는 유인물로 대체해 행사 마지막날 심사․발표하였습니다. 이 내용은 내일 보고드리겠습니다.

 

◆ 21:50~22:10 우리 소리를 찾아서

 

◇ 진행:김현(영환 종친 큰따님)

 

  지난 해 장기자랑에서 선보인 국악 솜씨를 눈여겨봐 두었던 항용 종친의 요청으로 행사 하루 전에 급히 진행을 맡았습니다. 시간이 촉박했지만 평소 솜씨를 발휘해 즐거운 한때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김현 종친의 지도로 참가자들은 모두 <사랑가>를 멋들어지게 부를 수 있는 실력을 갖추었답니다.

 

  어깨를 들썩이며 신명나게 <사랑가>를 부른 다음 재원 종친께서 행사 2일째인 8월 3일 답사 일정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 22:10 이후 - 폭죽놀이 및 뒤풀이

 

  방금 배운 <사랑가>를 흥얼거리며 음수재 앞마당으로 나갑니다. 날이 아주 맑지는 않아 별이 드문드문합니다. 어린 종친들이 손에 손에 폭죽을 들고 마당 가장자리에 서서 밤하늘로 폭죽을 쏘아 올립니다.

 

"피--웅", "피~이~ᄋ", "쓔-웅"

 

"펑"  

 

"퍼~ᄋ"  

 

"펑"  

 

  밤하늘에 화려한 꽃불이 피어납니다. 그 꽃불 속에서 선조님들을 떠올리며 모두들 소원 하나씩을 빕니다.

 

  지금 이 시각 안동 시내에는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데, 이곳은 비 한 방울 떨어지지 않아 폭죽놀이를 신나게 즐길 수 있었습니다. 폭죽놀이가 거의 끝나갈 무렵 빗방울이 하나둘 콧등에 떨어집니다. 산 너머에서는 여전히 "번쩍" "번쩍" 번개가 칩니다.

 

  어깨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피해 서둘러 음수재 마루 위로 올라가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그 사이 가족들은 시원하게 씻고 꿈나라로 가고, 어린 종친들 몇 명은 3행시 짓느라 졸린 눈을 비벼 가며 엄마 아빠를 조르기도 합니다.

 

≪ 8월 4일(월) ≫

 

◆ 답사 코스:음수재 → 주왕산 → 청송 얼음골 → 영덕 해상공원 → 수안김씨 종택 → 보경사 → 영덕 월포해수욕장

 

◆ 음수재 마당가의 회화나무

 

  이른 아침 단잠을 자고 난 참가자들은 음수재 주위를 산책하는가 하면, 마당에 나가 가벼운 체조를 하기도 하면서 상쾌한 아침 공기를 즐깁니다. 마침 음수재 마당에 대구종친회에서 음수재 방문기념으로 심은 회화나무가 몇 그루 있었습니다. 지난 번 회화나무가 어떤 나무인지 홈페이지에 실리기도 했지만, 눈으로 보니 더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어린 회화나무를 보니 아름드리 고목 회화나무가 얼른 연결되지 않았습니다. 알고 보니 회화나무는 우리 주위에서 늘 보는 나무이기도 했습니다.

 

중부지방에서는 쉽게 보지 못하는 나무였는데, 최근에 가로수로 큰 도로 옆에 많이 심고 있습니다. 나뭇잎이 우리가 쉽게 보던 아카시아나무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꽃도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얼른 보면, 전체적으로 아카시아나무로 혼동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다르게도 보입니다. 아카시아나무는 봄에 흰 꽃이 피지만, 회화나무는 그보다 훨씬 늦게 꽃이 피어서 요즘도 볼 수 있습니다.

 

◆ 08:00~08:30 충렬공 묘소 참배

 

  07:30분경 아침 식사를 하고 적어도 08:00분경 다음 일정을 시작할 계획이었는데 예약한 식당에서 아직 음식이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슬슬 배가 출출해집니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참가자들은 충렬공 할아버지 묘소에 참배를 한 다음 식사를 하기로 변경하였습니다. 준비한 제수와 제주를 들고 서둘러 충렬공 할아버지 묘역으로 올라갔습니다. 잘 알고 계시는 것처럼 음수재 주위는 우리 안동김씨와 광산김씨 예안파가 오랫동안 동산수호를 해 온 곳입니다. 광산김씨 예안파는 안동김씨의 외손이기에 광산김씨 선조 묘소에 제를 올리기 전에 반드시 충렬공 할아버지께 먼저 제수를 올려 예를 다해 왔습니다. 이런 양 문중의 돈독한 관계로 우리 대종회에서는 1990년에 충렬공 묘역을 확보하였으며, 이후 묘역 확장 등 꾸준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영환 종친께서는 충렬공 할아버지 묘역을 대종회 명의로 확보해 온 과정을 들려주시며 이러한 노력이 계속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하십니다. 현재 음수재 주변의 위토는 모두 4,000평 정도라고 합니다. 음수재 마당 앞논도 광산김씨 소유라 음수재 마당을 넓히는 문제도 쉽지 않습니다. 충렬공 할아버지 묘소는 깨끗하게 단장돼 있었습니다. 잡풀도 거의 없어 더욱 기분이 좋았습니다.  

 

  준비해 간 제주와 제수를 올리고 영환 종친께서 제문을 읽습니다. 정성들여 한글로 찬한 제문은 별도로 영환 종친께서 올리신 글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참배 후에 충렬공 할아버지께 올린 제주를 음복한 다음 비문을 살펴봅니다. 충렬공 할아버지 묘소를 바라볼 때, 오른쪽에 있는 옛 비갈은 만력 30년 임인년 2월에 세운 것으로 비문이 마멸돼 거의 판독할 수 없습니다. 왼쪽의 비갈은 1966년에 새로 세운 것입니다. 글씨는 안렴사공파 사옥(思玉) 종친께서 서(書)하신 것입니다.  

 

  충렬공 할아버지 묘소는 회곡동의 죽주박씨 할머니 단소와 마찬가지로 전면과 좌․우측은 반듯하고 뒷면이 둥근 전방후원형으로 일찍부터 묘소 형태에 관심을 기울여온 윤만 종친이 세심히 살펴보고 있습니다. 답사팀이 막 참배 기념사진을 찍는 순간 비가 오기 시작하더니 음수재로 내려올 때는 굵은 빗방울로 변해 있었습니다. 음수재 처마 밑에 앉아 시원한 빗줄기 떨어지는 소리를 듣습니다.

 

◆ 08:38~10:30 음수재 출발, 주왕산 국립공원 착

 

  뒤늦게 도착한 아침을 먹고 08:38분 음수재를 출발한 답사팀이 주왕산에 도착하니 벌써 10:30분입니다. 주왕산 입구의 기암(旗岩)이 위엄 있는 산세를 한눈에 보여 줍니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주왕산에 올라 경북의 금강산이라는 천하절경을 감상합니다. 기암괴석 사이에 움푹 파인 주왕굴에 올라가니 바로 위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신기합니다. 주왕굴을 내려와 산 중턱에 마련된 전망대에 올라 기암을 비롯한 웅장한 바위들을 바라보며 넋을 잃습니다. 다음 일정이 촉박한 까닭에 답사팀은 잠시 머물다 제1폭포로 내려와 아쉬운 기분을 달랩니다.

 

◆ 14:00~14:31 주왕산 출발, 청송 얼음골 착

 

  13:00분 예약한 음식점에서 산채 비빔밥을 들고 14:00분 청송 얼음골로 향합니다. 입구 절벽에 인공으로 만든 폭포가 웅장합니다. 시원하게 쏟아지는 물줄기가 볼 만합니다. 인공으로 만든 폭포라는 설명을 재원 종친께서 해 주셨기에 인공폭포인 줄 알았지, 마치 자연 그대로의 폭포와 같습니다. 청송 얼음골은 섭씨 35도가 되면 살얼음이 얼기 시작해 기온이 그 이상 올라가면 얼음 덩어리가 생기기 시작하는 불가사의한 곳이라고 합니다. 라디오 일기예보로 날씨는 어느새 30도를 넘어섰다는 것을 알고 기대했지만 얼음이 얼기에는 조금 모자랐나 봅니다. 아쉽기는 했지만 석빙고처럼 단장해 놓은 얼음골 약수터에서 약수 한 모금 마시는 것으로 대신하고, 옥계계곡을 거쳐 영덕 해상공원으로 향합니다.

 

◆ 14:50~15:35 얼음골 출발, 영덕 삼사해상공원 착

 

  구절양장 계곡을 따라 옥계계곡을 스쳐갑니다. 도로 오른쪽으로 절경이 끝없이 이어집니다. 시간만 허락한다면 계곡으로 내려가 쉬었다 가고픈 마음 간절합니다. 언젠가 한번 꼭 와야겠다는 마음이 절로입니다. 계곡 사이 사이에 붉은색 패랭이꽃과 노란 원추리꽃이 지천입니다.

 

◆ 15:35~15:45 영덕 삼사해상공원

 

  영덕 시가지로 들어와 삼사해상공원에 올라와 널찍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바다를 바라봅니다. 날씨가 약간 흐려 멀리까지는 보이지 않았지만 거침없이 펼쳐진 바다가 시원합니다. 인근 주유소에서 연료를 채우고 잠시 휴식을 취한 다음 강구 원직리의 수안김씨 집성촌으로 향합니다.

 

◆ 16:00 수안김씨 울산공파 종택 방문

 

  15:45분 해상공원을 출발한 답사팀이 길을 되돌려 강구 원직리로 향합니다. 해상공원을 나와 우회전하면 얼마 가지 않아 도로 오른쪽에 강구파출소가 있습니다. 파출소 왼쪽이 강구항입니다. 강구항으로 들어가지 않고 <울진, 영덕> 방향으로 계속 직진하면 도로 오른쪽으로 <원직리, 상직리>로 빠지는 이정표가 있습니다. 도로를 따라 밑으로 내려가면 좌회전하자마자 도로 밑으로 지나는 굴다리가 나옵니다. 굴다리를 빠져나오자마자 도로가 4개로 갈라집니다. 그 중 왼쪽에서 2번째 도로로 들어갑니다.(왼쪽 첫 번째 도로는 큰 도로에서 이곳으로 들어오는 길이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수안김씨 종택으로 가는 길은 양 옆으로 제법 넓은 벌판 사이에 시멘트로 포장한 길입니다. 길을 따라 가다가 (주)고려키토산 공장 건물을 보면서 좌회전하면 쭉 뻗은 시멘트 포장도로가 계속됩니다. 계속 길을 따라가면서 <원직1교>를 건너면 아스팔트 길입니다. 시간을 보니 15:54분입니다. 해상공원에서 여기까지 10분 정도 걸렸습니다. 그리 멀지 않은 길입니다. 곧 이어 <원직2리>임을 알리는 도로 표지판이 있고,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는 길에 <원직보건진료소> 표지판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 표지판 못미처 <수안김씨 세거지>라고 쓴 오석 표석이 있습니다. 그 뒤에 밭이 있고, 밭 끝에 제법 큰 기와집이 있습니다. 이 집이 바로 수안김씨 울산공파 종택입니다.

 

◆ 16:00~16:46 수안김씨와의 만남

 

  종택에는 차일이 3개나 처져 있었고, 마을 어른들 여러분께서 종택 대문 앞에 나와 계셨습니다. 정중 종친은 "안동지역에서는 큰 잔치를 벌이거나 경사스런 날이 있을 때에만 마당에 차일을 칩니다. 우리 사촌에서도 여간해서는 만취당 마당 앞에 차일 치는 게 아주 드뭅니다." 하고 차일을 친 의미를 일러주십니다. 수안김씨와의 만남을 주선한 재원 종친께서는 오는 도중 주왕산에서 예정보다 시간이 지체돼 오후 4시 약속시간에 도착하지 못할까 애를 태웠는데 다행히도 약속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우리 일행이 마당으로 들어서자 수안김씨 어른들께서는 종택 뒤에 있는 <장춘당(長春堂)>과 사당으로 안내하십니다. 이것저것 들려주실 말씀이 많으신 듯합니다.

 

"안동김씨 젊은이들이 선조님들 유적지를 답사하며 연구를 많이 해서 선조님들에 대해 우리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 그런 정신을 우리도 배워야 한다."며 칭찬이 대단하십니다. 과찬에 몸둘 바를 모를 정도입니다.

 

  <장춘당> 옆의 사당에는 4대조 까지 4분의 신위가 모셔져 있습니다. 애석하게도 사당은 6․25 당시 폭격으로 무너져 1951~1952년경 새로 지었다고 합니다. 준비해 간 제주를 올리고 장춘당과 사당을 둘러봅니다. 사당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이며, 두리기둥을 썼으며, 기둥은 소의 혀처럼 기다랗게 생긴 익공으로 처리했습니다. <장춘당>은 이곳의 입향조이신 전라좌수사 <김난서(金鸞瑞) 공>의 아버지이신 <추암(秋岩) 김하구(金夏九) 공>의 당호입니다. 장춘당은 250년 전에 추암공께서 직접 지은 집으로 6․25 당시 폭격에서도 무사했답니다. 장춘당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과 협칸입니다. 지붕은 팔작지붕이며, 기둥은 쇠서 하나짜리 익공집입니다. 내주는 모기둥이나 외주는 굵은 두리기둥으로 오래 된 싸리나무로 만들었다고 들려주십니다.

 

작은 마루를 중심으로 양 옆에 한 칸씩 방을 들였습니다. 장춘당 앞에는 고목이 되다시피 한 목련이 있습니다. 추암공께서 장춘당을 지을실 때 심은 나무라 합니다. 종택은 정면 4칸, 측면 2칸과 협칸 및 툇마루로 지어진 집입니다. 지붕은 팔작지붕이며, 기둥은 민기둥입니다.

 

  수안김씨 어른의 안내로 마당에 친 차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답사팀과 종택에 모이신 수안김씨 어른들과 맞절로 예를 올린 다음 답사팀 대표로 영환 종친께서 안사연의 여름캠프 의의와 일정을 말씀드리고, 판서공(휘 선) 할아버지를 중심으로 안동김씨와 수안김씨 양 문중의 관계를 설명드렸습니다. 이어 항용 종친의 소개로 판서공의 후손인 영환, 재원, 윤만, 발용, 정중, 윤식 종친이 간략히 자기소개와 인사를 드렸습니다.

 

수안김씨는 잘 아시는 바와 같이 판서공(휘 선) 할아버지의 후손이십니다. 영환 종친의 말씀을 들으시는 수안김씨 어른들은 연신 고개를 끄덕끄덕 하십니다. 판서공 후손이 자리를 함께 했다고 하니 더욱 반가우신가 봅니다.

 

  이어 수안김씨 어른께서는 종손 내외분을 답사팀에 소개해 주셨습니다. 공직에 근무하느라 타지에 살고 계시는 종손(김지목)께서는 우리 일행이 방문한다는 소식에 휴가를 내어 어머니께서 살고 계신 종택에 내려왔다고 하십니다. "안동김씨 여러분을 맞이하려니 우리 열 사람 얼굴보다 이 사람(종손) 한 사람 얼굴이 더 중하기에 꼭 참석하라 하였소." 하시는 그 말씀에 한 핏줄의 정과 예를 다하시는 극진한 마음을 또 한 번 느낍니다. 상 위에는 떡과 전, 귀한 손님에게 내놓는 문어, 수박 등 정성이 담뿍 담긴 음식이 가득했습니다. 별다른 선물을 준비하지 못한 터라 답사팀은 충렬공 할아버지 영정을 담은 열쇠고리와 음료수를 답례로 전달하였습니다. 이어 음식을 들며 재원 종친께서 3차례나 영덕 인근의 수안김씨 집성촌 방문을 계기로 수안김씨와의 만남이 이루어진 과정을 비롯해 양 문중과의 관계 등 끝없이 환담이 이어집니다. 수안김씨 어른께서는 "남북으로 갈려 못 만나는 것도 아닌데, 우리는 같은 땅에 살면서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다. 안동김씨와 수안김씨가 만난 2003년 8월 4일은 우리로서는 역사적으로 기념해야 할 날이다."며 감격해 하십니다.(이 말씀을 듣고 정중 종친은 왠지 눈시울이 붉어지더랍니다. 왜 안 그러겠습니까? 저도 그랬고요. 아마 참석한 양쪽 문중 모든 분들이 그러했을 겁니다.)  

 

  그 사이 발용 종친은 종택 안팎을 돌며 부지런히 사진을 찍습니다. 쉽게 방문하기 어려운 곳이라 한 장이라도 더 많은 사진을 찍으려는 마음이었습니다. 아울러 종손의 안내로 종택에 보관 중인 추암공 문집과 거문고 밑판 등 귀한 유물을 감상하고 조심스레 사진에 담습니다. 또한 안사연의 연구활동을 위해 종택에서 보관 중인 최근 수안김씨 대동보 1질과 종보, 관련 자료 등을 기꺼이 내주셨으며, 언제라도 관련 자료가 필요하면 연락을 주면 최대한 협조하시겠다는 말씀까지 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6시 이전에 멀리 떨어진 보경사를 방문해야 하기에 수안김씨 어른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재촉해야 했습니다. 우리 일정을 아시기에 수안김씨 어른들은 차마 손을 놓지 못하시면서도 이해하시는 듯했습니다. 우리 일행이 멀리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수안김씨 어른들은 동구 밖에 나와 손을 흔드십니다. 오늘을 시작으로 양 문중의 관계가 더욱 돈독해져 충렬공 할아버지 향사에 수안김씨에서도 참례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수안김씨와의 소중한 만남이 있기까지 여러 차례 수고를 아끼지 않으신 재원 종친께 거듭 감사드립니다.  

 

  수안김씨 집성촌이 시야에서 사라질 즈음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답사팀이 보경사로 향하자 빗방울이 굵어졌습니다. 그 바람에 선두와 후미에서 답사 차량의 안전운행을 위해 애쓰시는 재원 종친과 정중 종친의 노고가 커집니다.

 

보경사에 거의 다다르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 비가 멎었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보경사로 들어서자 더욱 감격스러운 일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내일 계속하고, 특별한 일이 없으면 내일 답사 보고를 마칠 예정입니다.

 

  제가 잘못 기록하거나 미처 기록하지 못한 것이 많습니다. 바로잡아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8월 4일(월) 늦은 오후 ≫

 

◆ 답사 코스:보경사 → 영덕 월포해수욕장

◆ 17:38~18:42 유일하게 남은 상서공 할아버지 필적 친견

 

  보경사 입장 시간이 오후 6시로 제한돼 있어서 선도 차량에 타고 있던 재원 종친께서는 마음이 급하신 모양입니다. 다들 선도 차량에 바짝 붙어 달린 덕에 시간을 맞출 수 있었습니다. 일정을 변경할 수도 있었지만 할아버지 필적을 보고 싶은 생각이 내일로 미뤄질 수 있나요?

 

  보경사로 들어가는 길은 아름드리 노송들이 군데군데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보경사 매표소 입구 쪽 주차장에 차량을 주차하고 보니 비가 오락가락합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매표소 바로 옆에 차를 세울 수 있었던 것도 재원 종친 덕이었습니다. 선도 차량의 재원 종친께서 주차관리원에게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아래쪽 주차장이 아니라 예까지 올라올 수 있었답니다. 덕분에 관람시간이 훨씬 여유가 생겼습니다.

 

  내연산(內延山) 보경사(寶鏡寺)는 신라 성덕왕 22년인 서기 722년에 세운 절인데 고려 고종 때 원진국사(圓眞國師)가 중창하였다고 합니다. 보경사에는 보물 2점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상서공(휘 효인) 할아버지께서 서(書)하신 원진국사비(보물 252호)입니다. 바로 이 보물, 할아버지의 체취가 남아 있는 문중 최고 보물을 친견할 수 있기에 가슴 두근거리며 먼 길을 서둘러 달려왔습니다.

 

  대웅전 바로 뒤쪽, 원진국사비각에 도착하자 답사자료를 준비하신 주회 종친께서 상서공 할아버지와 원진국사 등을 상세히 설명해 주십니다. 이외에도 원진국사비 자체에 대한 설명에서부터 할아버지의 서체와 필법, 1992년에 우리 문중의 용진 종친께서 원진국사비를 탁본한 내용 등을 상세히 설명해 나갑니다. 해박한 지식에 그저 놀랄 뿐입니다.

 

다음은 주회 종친께서 준비한 답사자료의 서두 부분입니다.

 

  고려 고종시대에는 고려 문화의 황금기를 이루었다. 따라서 서예도 중기 말의 침체 상태에서 재흥의 활기를 회복하기 시작하였다. 즉 고종대 반세기 간에 서예 부흥의 3대 기수가 나타났다. 우선 문호 이규보를 비롯하여 집권자 최이, 한림학사 병부상서 김효인 등 3거두가 모두 당대의 명필이었다.

 

  이 3대가 중에서도 김효인의 글씨가 가장 뛰어났으며 그의 서적(書跡)도 두 개의 명비(名碑)에 남아 있다. 김효인은 일세의 문장가이기도 했었는데 문재(文才), 서재(書才)를 겸전(兼全)한 것이 이규보와 쌍벽을 이룬 존재였다. 그러나 글은 역시 문호 이규보의 존재가 더 컸고, 글씨는 김효인이 더욱 빛나는 존재였다.(<한국서예사>)

 

  필적이 청하(淸河)의 내연사, 영암의 도갑사(道岬寺), 강진의 월남사(月南寺) 등지에 있는데, 모두 임금의 명으로 비명(碑銘)을 쓴 것이다.(<안동김씨 족보>) ---  

 

  원진국사비는 오래 전에 받침돌인 거북 좌대와 연결된 비신 하단부가 훼손된 상태입니다. 이 때문에 용진 종친께서 어렵게 어렵게 기회를 얻어 할아버지 필적을 탁본할 당시에도 비가 뒤로 넘어갈까 봐 전체를 탁본하지 못하고 반 정도만 탁본한 상태에서 그치고 만 적이 있습니다. 시멘트로 약간 보수해 놓기는 했으나 근본적인 대책이 아닌 듯싶습니다.

 

  거북 좌대는 비신에 비해 약간 작은 편이나 입에 여의주를 물고, 거북 등에 연꽃을 새겨 매우 화려해 보입니다. 비 머리 부분에 이수가 없고, 윗부분 양쪽 가장자리가 칼로 벤 듯한 귀접이 형태입니다.

 

  비를 보호하기 위한 비각은 사방 7보 크기이며, 좌대 크기는 전면 4보, 측면 5보입니다. 비각 현판은 서예가로 유명한 일중 김충현 씨가 한글로 썼습니다.

 

비신은 강진의 월남사지에 있는 진각국사비와 같은 종류의 돌인지 오랜 세월 풍화에 의해 사선으로 갈라지는 것이 서로 같습니다. 진각국사비도 풍화작용으로 아쉽게도 할아버지 필적이 있던 전면이 떨어져 나갔는데, 원진국사비도 같은 종류의 돌이라 걱정스럽습니다.

 

  주회 종친께서는 이 비석 글씨야말로 상서공 할아버지 필적으로 알려진 유물 중 단 하나 남은 온전한 형태라 우리 문중의 보물 1~2호가 아닐 수 없다고 강조하십니다.(원진국사비 탁본은 행사 전에 항용 종친께서 자료를 구해 고급 한지에 160매를 재인쇄하여 행사 마지막날 참가 가족별로 1매씩 배부하였습니다.)

 

  주회 종친의 설명에 이어 영환 종친께서 보충 설명을 하십니다. 영환 종친께서는 아까부터 비문을 손으로 자꾸 만져 보면서 750년 전 할아버님의 숨결과 묵향을 느끼는 듯했습니다.

 

  비문을 자세히 보면 중간쯤에 넉 자씩 운율을 맞춘 부분이 있답니다. 그 말씀에 다들 눈을 크게 뜨고 비문을 다시 봅니다. 비문이 흐려 어디부터인지 정확히 알 수 있지만, 그러고 보니 시작 부분과 다릅니다. 이렇게 넉 자씩 운율을 맞춘 곳이 바로 본문에 해당하며, 그 앞의 글은 본문을 쓰기 위한 서문에 해당한다고 설명해 주십니다.

 

  그 사이에 빗방울이 굵어져 있습니다. 한여름 집중호우인 듯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쏟아집니다. 꼼짝없이 갇힌 몸이 되었습니다. 우산도 넉넉히 준비하지 못해 비가 멎기만 기다려야 했습니다. 어쩌면 좀더 머물다 가라는 할아버지 뜻 같기도 합니다.

 

  이어 영환 종친께서는 비 끝부분을 짚어주며 할아버지 휘자가 새겨져 있는 곳이라 일러주시며, 빗물에 적신 손수건으로 그 부분을 살짝 닦아냅니다. 그러자 할아버지 휘자가 비신에 묻힌 물 때문에 옅고 흐린 농담으로 확연히 드러납니다. 감격스러운 장면이었습니다. 이 부분은 부족한 제 능력으로는 도저히 옮기지 못하오니 발용 종친을 비롯한 여러분께서 찍으신 사진으로 대신합니다.

 

  원진국사비 뒤로는 여러 채의 건물이 서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원진각입니다. 원진각에는 고승 16분의 영정이 모셔져 있습니다. 내부는 모두 3부분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중앙에 모셔진 5분의 고승 중 오른쪽에서 2번째 영정이 원진국사의 영정입니다.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할아버지 필적을 살펴보고 있노라니 어느덧 빗줄기가 가늘어집니다. 발용 종친과 정중 종친의 아드님(용경)이 비를 맞아가며 기념사진을 찍습니다. 기념사진 촬영 후 잠시 비각 추녀 밑에 앉아 빗소리를 듣다가 비가 잠시 그친 틈을 타 주차장으로 되짚어 나옵니다. 사천왕문 앞에 이르자 800년 된 회화나무가 있습니다. 어쩌면 상서공 할아버지께서 이곳에 오셨다면 아마도 이 나무는 70살쯤 되었을 테니 할아버지께서는 건강한 회화나무를 보셨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이야기를 나누며 정겹게 산문을 나옵니다.

 

◆ 18:42~19:02 보경사 출발, 월포해수욕장 향

 

  보경사 원진국사비까지 답사를 마치니 일정이 가뿐해졌습니다. 재원 종친께서 한 달 전부터 3번씩이나 답사코스를 왕복하면서 샅샅히 조사한 다음 시간계획까지 마친 덕에 한여름 성수기에도 마음 편히 민박집으로 향할 수 있었습니다. 하늘의 별따기라는 민박집(해돋이식당)으로 들어가 씻으니 몸이 날아갈 듯합니다. 서둘러 저녁을 먹고 어린 종친과 안동김문 며느님들이 이층 방으로 올라갑니다. 이층 방은 커다란 유리창이 바다로 나 있어 드넓은 바다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눈이 시원하지요. 일정상으로는 식사 후에 바닷가 모래밭에서 해변가요제를 할 예정이었으나, 땅이 젖어 있어 방에서 대신하기로 했습니다.

 

◆ 20:40~새벽 - 가족 장기자랑과 뒤풀이

 

  작년 여름캠프는 의욕이 넘쳐 일정이 빡빡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우리야 좋지만 여성분들과 어린 참가자들은 다소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번 여름캠프를 앞두고 다들 댁에서 은근히 압력을 받고 있었나 봅니다. 작년에 비해 일정도 조금 여유가 생겼고, 안동김문 며느님들과 어린 참가자들을 배려한 흔적이 조금은 드러나 있습니다. 방 배정 권한을 획득한 안동김문 며느님들께서 올라오라는 연락을 주셨습니다. 이왕이면 코믹한 입장식으로 추억거리를 남기자는 말에 즉석에서 약간 푼수(?) 같은 입장식을 했습니다. 윗도리를 돌려입고, 두어 사람은 원숭이 걸음으로 팔짝팔짝 뛰어서 입장해서 웃음바다를 이루었습니다. 그뿐입니까? 후환을 완전히 뿌리뽑기 위해 큰절까지 올리니 안동김문 며느님들이 어쩔 줄을 몰라 하십니다. 그래도 얼굴이 환해지시는 걸 보니 좋으신가 봅니다. 이때 사진을 찍지 못한 것 같은데 혹시 사진이 있으면 그것으로 대신합니다. 가족 장기자랑 시간에는 정중 종친께서 아드님 용경 군과 함께 늘 댁에서 즐겨 부르는 애창곡으로 서두를 열어 주셨습니다. 이어서 재원 종친의 부인께서 잔잔한 가곡을, 항용 종친 가족이 피리와 하모니카로 멋진 화음을 맞추어 주셨습니다. 노래 못하면서 가사도 제대로 외우지 못하는 태서 종친과 윤식은 듀엣으로 노래를 하긴 했는데……쩝~~(두 사람은 서울로 돌아오면서 각자 마음 속으로 노래 가사 외워야지 하고 독하게 마음먹었답니다.) 그러나, 영환 종친 가족이 도레미송으로 분위기를 일신하면서 영환 종친의 어머니께서 애창곡 <앵두나무 우물가에~~>와 어깨춤을 선사해 주셨습니다. 그 뒤를 이어 윤만 종친 가족, 발용 종친 가족, 주회 종친 가족이 분위기를 살려 나갔습니다. 처음에는 좀 빼다가 다른 가족의 맹활약에 자극을 받았는지 상석 종친 가족이 등장, 의젓한 개구쟁이 선응 군이 개그 콘테스트에 나오는 '쭉쭉춤'으로 대미를 장식했습니다.

 

  장기자랑 이후에 시원하게 몸을 씻고 자유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참가 가족들은 바닷가로 나가 어제 사용하고 남은 폭죽을 밤하늘로 쏘아 올렸습니다. 폭죽놀이가 또 즐겁게 이어집니다.

 

  그 후에 남자들은 모두 바닷가에서 뒤풀이를 이어갔습니다. 바닷가에는 짠 바람 때문에 모기가 없다고 하더니, 물것이 덤벼들지도 않고 시원해서 한도 끝도 없이 술이 '술술' 넘어갑니다. 노랫소리와 정담이 멀리서 흰머리 곧게 세우고 달리는 파도에 묻혀 들어가는 소리를 들으며 언젠가 모르게 잠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 8월 5일(화) ≫

 

◆ 행사:백일장, 퀴즈대회, 바닷가 축구시합

◆ 영덕 월포해수욕장 → 귀가(일부 참가자 개인적 답사)

◆ 백일장 발표 및 퀴즈대회

 

  아침 식사를 마치고 이층 방으로 올라와 백일장 심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퀴즈대회를 가졌습니다. 백일장(6행시 짓기) 심사 결과 장원은 발용 종친의 조카 근영 양이, 차상은 항용 종친의 따님 예진 양이 각각 차지하였습니다. 특히, 장원 작품은 운율과 가락을 정확히 맞추어 나 어린 학생의 작품을 뛰어넘는 솜씨입니다. 박수 부탁드립니다. 이외에 작품은 별도로 올리겠습니다. 시상은 참가 가족 중 가장 어른이신 영환 종친 자당 어른께서 대종회장님을 대신해 수여하셨습니다.

 

장원과 차상 두 작품을 소개합니다.

 

<장원 - 김근영>

 

--- 상:상락대 무술 연마 소리 울릴 때

--- 락:낙동강 뱃사공 귀기울일 때

--- 대:대장의 거친 숨소리 허공을 가른다

--- 음:음수재 충렬공의 혼이 부를 때

--- 수:수정같이 맑은 눈 우리를 지켜볼 때

--- 재:재주 키워 충렬공 이름 빛낸다

 

<차상 - 김예진>

 

--- 상:상락대에서

--- 락:낙조를 바라보니

--- 대:대업의 꿈을 이루신 충렬공 할아버지 생각이 납니다. 지금은

--- 음:음수재에서 영면하시며 저희들을 바라만 볼 뿐, 그

--- 수:수(壽)-목숨이 이미 운명을 달리하셨지만, 저희들은 할아버지의 영광을  

--- 재:재 이어받아 뜨겁게 타오르는 또 하나의 태양이 되겠습니다.

 

  퀴즈대회는 행사 이전에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내용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평소 댁에서 틈틈이 우리 문중 내력을 들려 주고, 어린 종친들 또한 홈페이지 등을 통해 관련 내용을 잘 알고 있는 듯했습니다. 참가한 청소년 모두 문제를 한 문제도 틀리지 않고 정확히 답변하였습니다. 이 중에서도 제일 나이 어린 6살배기 우정 양(주회 종친 따님)도 손을 번쩍 들고 답을 해서 좌중의 박수를 받기도 하였답니다.

 

◆ 바닷가 축구시합

 

  원래 상락대 밑 모래밭에서 <판서공파:문영공파> 축구시합을 할 예정이었으나, 집중호우로 모래밭이 물에 잠겨 오늘 하게 되었습니다. 선수 구성도 바꿔 <아버지:자녀>로 하고, 재미있는 경기를 위해 "나이 파괴, 항렬 파괴"로 진행했습니다. 영환 종친께서는 지난 밤 폭죽놀이 때부터 쓰레기를 수거하시더니 축구시합을 하는 틈틈이 혹여 어린 종친들이 다치기라도 할까 염려스러워 쇳조각 등을 줍느라 정신이 없으십니다. 덕분에 우리가 놀던 자리는 아주 깨끗해졌습니다.

 

  물에 빠져 가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리 뛰고 저리 뛰다가 보니 양쪽이 한 골씩 주고받으며 엎치락뒤치락합니다. 한 골 먹을 때마다 선응 군은 씩씩거리며 심판을 보고 있는 아빠 성식 종친에게 달려가 "아빠, 지금 몇 대 몇이야?" 하고 묻습니다. 그렇게 한참 뛰다 보니 앞서 가던 아버지 편이 어느새 7 대 6으로 지고 말았습니다. 어린 종친들은 두 손을 치켜들고 만세를 부르며 기뻐서 팔짝팔짝 뜁니다. 축구시합 뒤에 여성 참가자들은 대충 돌아갈 준비를 하시고, 남자들과 어린 종친들은 바닷물에 잠시 몸을 담급니다.

 

◆ 14:10 아쉬운 귀가

 

  한참을 모래밭에서 뛰고 나니 어느새 헤어질 시간이 되었습니다. 서로 서로 손을 잡으며 놓을 줄 모릅니다. 잠시 다녀올 데가 있다며 슬그머니 나갔다 오신 재원 종친께서 오징어를 선물로 내놓으십니다. 행사 준비하시고, 3일 동안 생업을 포기한 채 답사 차량 이끄신 것만 해도 얼마나 큰 일을 담당하셨는데, 또 큰 선물까지 안겨 주시니 몸둘 바를 모를 지경입니다. 다음에 서울이나 중부지역에서 행사를 할 때 만반의 준비로 보답하겠습니다.

 

  행사 후 경주지역 답사는 참가 가족들의 형편상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하였습니다. 영환 종친의 다섯 자녀는 강원도 제천에서부터 도보로 영월, 태백 등지를 여행하기로 했다며 길을 떠났습니다. 항용 종친께서는 하담공(휘 시양) 할아버지와 관련된 관동지방을 탐방하기 위해, 발용 종친께서는 형님들이 처가인 강릉 인근으로 휴가를 온 까닭에 조카들을 데려다 주기 위해 두 가족이 동해안을 타고 동행하기로 하였습니다. 그 외 가족들은 귀가 코스가 달라 각각 헤어져 귀가길을 재촉했습니다. 행사 기간 내내 큰 관심과 격려를 보내 주신 대종회장님, 문중 어르신들, 전국의 종친 여러분께 다시 한 번 감사 말씀 올리며, 제2회 여름캠프 보고를 마칩니다.

 

  한편, 이번 행사 보조로 대종회장님을 비롯한 다음 분들이 찬조금을 희사하셨습니다.

 

- 대종회장님   50만원

- 김재원 종친    5만원

- 김완식 종친    5만원

 

  재원 종친께서는 행사 준비를 위해 민박집 계약금 3만원에 2만원을 추가로 희사하셨으며, 완식 종친께서는 이번 행사에 참가할 예정이었으나 부득이한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해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자 5만원을 보내 오셨습니다.

 

  지루하고 미진한 데에다 미처 기록하지 못하거나 잘못 기록한 부분이 많습니다. 바로 잡아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백일장 출품작>

 

   이번 행사부터는 대종회로부터 정식 허가를 받아 백일장과 퀴즈대회 입상자에게 상장을 수여하고 있습니다. 상장도 별도로 특별 인쇄를 하여 보존에 용이하게 하였습니다.

 

◈청소년부

 

<장원 - 김근영>

--- 상:상락대 무술 연마 소리 울릴 때

--- 락:낙동강 뱃사공 귀기울일 때

--- 대:대장의 거친 숨소리 허공을 가른다

--- 음:음수재 충렬공의 혼이 부를 때

--- 수:수정같이 맑은 눈 우리를 지켜볼 때

--- 재:재주 키워 충렬공 이름 빛낸다

 

<차상 - 김예진>

--- 상:상락대에서

--- 락:낙조를 바라보니

--- 대:대업의 꿈을 이루신 충렬공 할아버지 생각이 납니다. 지금은

--- 음:음수재에서 영면하시며 저희들을 바라만 볼 뿐, 그

--- 수:수(壽)-목숨이 이미 운명을 달리하셨지만, 저희들은 할아버지의 영광을  

--- 재:재 이어받아 뜨겁게 타오르는 또 하나의 태양이 되겠습니다.

 

<우수상>

김남영

--- 상:상락대에서

--- 락:낙동강을 바라보니

--- 대:대단히 넓다.

--- 음:음수재에 가려고 물가에서

--- 수:수영을 하며

--- 재:재미있게 논다.

 

김장묵

--- 상:상락대에 앉아 삶의

--- 락:낙인 무술을 연마하여

--- 대:대의를 꿈구시던

--- 음:음…우리의 중시조 김방경 할아버지!

--- 수:수행하시던 그분을 위하여

--- 재:재차 절을 올리옵나이다.

 

<김홍묵>

--- 상:상락대에 올라

--- 락:낙동강을 바라보며

--- 대:대장군이신 충렬공 '김방경' 할아버지를 떠올린다

--- 음:음…오랫동안 병치레 없어 건강하여

--- 수:수명이 긴 충렬공 할아버지

--- 재:재상의 자질을 고루고루 갖추셨다

 

<김슬빈>

--- 상:상을 받기 위하여 상

--- 락:락대 주변에 있는 큰

--- 대:대나무 밑에서 쉬어 보는데

--- 음:음악이 흘러나오면서

--- 수:수도 없는 사람들이 덩실♪ 덩실♬ 춤을 춘다. 나도

--- 재:재미있게 흥겨우면서 수도 없는 사람들과 같이 덩달아 덩실♪ 덩실♬ 춤을 춘다

 

<김선응>

--- 상:상장을 받아서

--- 락:낚시를 해서 안 잡았는데

--- 대:대가도 없이

--- 음:음악이 들린다. 상에 노래가

--- 수:수도 없이 들린다

--- 재:재미있게 끝났다

 

<김형주>

--- 상:상락대에서

--- 락:낙동강을 바라보면

--- 대:대대로 내려온 유물들이 생각난다

--- 음:음수재의 분위기가

--- 수:수수처럼 잘 익어갈 때

--- 재:재미있는 노래 한 곡 불러보나

 

<김용경>

--- 상:상당히 고달프긴 했다

--- 락:낙찰 가격 시급 1,500원

--- 대:대신 그래도

--- 음:음식 숙박 제공

--- 수:수영도 할 수 있었고 나름대로

--- 재:재미있었다

 

<김용진>

--- 상:상세하게 설명 해주신 해설 덕분에  

--- 락:낙동강 상류의 상락대 전설 알게 됐고  

--- 대:대종회에 대해서도 관심 갖게 됐습니다.  

--- 음:음수재 영정각에서 할아버지께 인사하고  

--- 수:수박을 먹으면서 여러 친구들과 함께  

--- 재:재미있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성인부

<김정중>

--- 상:상석 대부니임--

--- 락:낙동강 건너편 낙암정 오를 때부터

--- 대:대물인 줄 알아봤습니다

            월포 밤바다 떠나가게 한 그~

            구전민요 잊을 수 없을 겁니다

--- 음:음식상 차리고 차일 펴서 기다리신

--- 수:수안김씨 만나게 해 주신

--- 재:재원 대부님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김주회>

--- 상:상락의 너른 물결, 까마득한 천길절벽, 태고의 기경이로다

--- 락:낙락장송 우뚝하고, 충렬공께서 유상하신 곳

--- 대:대대로 이어온, 대대로 이어갈, 상락대로다.

--- 음:음수재의 솟을 대문 웅장하니 고개를 들게 한다

--- 수:수탉의 울음소리 새벽을 깨우고 새벽 안개에 쌓여 있는 음수재

--- 재:재실 처마의 갑자기 쏟아지는 낙숫물은 나의 발길을 잡는다

 

<김주회>

--- 상:上洛의 너른 물결, 까마득한 천길 절벽 위, 이곳이 바로 上洛臺로구나

--- 락:낙락장송 우뚝하고, 충렬공께서 무예를 연마하시고 비채도 심고 첫사랑도 나눈 곳

--- 대:대대로 이어온, 대대로 이어갈 우리 가문의 발상지로다 !

--- 음:음수재와 충렬공 묘역을 올려다 보니 700년을 거슬러 옛날로 돌아간 듯하고

--- 수:수려한 산골 풍광이 새벽 능골에 가득하여 태고적 신비를 더한다.  

--- 재:재실 처마에 갑자기 쏟아지는 낙수물은 후손의 발길을 잠시 붙드시는가?

 

<김항용>

--- 상:상락대(上洛臺) 상봉(上峰)올라 충렬공 혼(魂) 되새기고  

--- 락:낙락장송(落落長松) 그늘아래 손잡고 수련(修鍊)하니  

--- 대:대대로 이어온 마음 혈족친목(血族親睦) 아름답네  

--- 음:음수재(飮水齋) 영정각(影幀閣) 충렬공께 참배하니  

--- 수:수려(秀麗)한 조상님의 정신업적 새빛나고  

--- 재:재상가(宰相家) 민족동량(民族棟樑)이 여기서 번창(繁昌)하네  

 

◈상장 내역(청소년부에 한함.)

<백일장>

상장

상명       수상자

상기 종친은 제2회 안.사.연 여름캠프 백일장에서 두서와 같은 성적을 거두었으므로 이 상장을 줌.

                                                 2003년 8월 5일

                                            안동김씨대종회장 김태인

 

<퀴즈대회>

 

상장

상명      수상자

상기 종친은 제2회 안.사.연 여름캠프 퀴즈대회에서 두서와 같은 성적을 거두었으므로 이 상장을 줌.

                                                 2003년 8월 5일

                                            안동김씨대종회장 김태인

 

수상자  상명    백일장  퀴즈대회

김형주  우수상  203호   209호

김근영  장   원  201호   210호

김남영  우수상  204호   211호

김예진  차   상  202호   212호

김용진     -                  213호

김태경     -                  214호

김장묵  우수상  205호   215호

김홍묵  우수상  206호   216호

김슬빈  우수상  207호   217호

김우식  -                     218호

김우정  -                     219호

김용경  -                     220호

김선응  우수상  208호   221호

 

※퀴즈대회는 참가자 전체 우수상임.

 

 <제2회 여름캠프 퀴즈> --  경북 안동, 청송, 포항지역 성지순례(姓地巡禮) 퀴즈 -

 

1. 우리 문중의 본관은 '안동'입니다. 그런데 안동을 본관으로 하는 김씨는 우리 문중 외에 또 다른 김씨가 있습니다. 이 두 안동김씨를 구분하기 위해 사람들은 우리 문중을 구안동김씨, 다른 김씨를 신안동김씨로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는 바른 표현이 아닙니다. 두 안동김씨를 구분하여 나타낼 때, 우리 문중의 호칭은 무엇일까요?  

①선안동김씨      ②후안동김씨      ③경주김씨      ④김해김씨  

 

2. 우리 문중을 안동김씨 외에도 지역에 따라서는 화산김씨 등과 같이 달리 부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음 중 우리 문중을 일컫는 또 다른 말은 어느 것일까요?  

①상락김씨        ②경주김씨        ③의성김씨      ④김녕김씨  

 

3. 선조님을 이르는 용어에는 비조(鼻祖), 시조(始祖), 중시조(中始祖) 등이 있습니다. 비조는 시조 이전의 선대 할아버지 중 가장 높은 분, 시조는 제일 처음의 선대 할아버지로서 첫 번째 조상, 중시조는 시조 이후에 가문을 크게 일으켜 세운 선대 할아버지이신데, 문중의 뜻을 모아 받들어 모신다고 합니다. 우리 문중의 비조 할아버지께서는 다음 중 어느 분이신가요?  

①김알지          ②김은열          ③박혁거세      ④석탈해  

 

4. 위의 문제에서, 우리 문중의 시조님은 고려 초에 공부시랑평장사를 지내신 분이십니다. 다음 중 어느 분이신가요?  

①김숙승          ②김일긍          ③김이청        ④김의화         ⑤김민성  

 

5. 위의 문제에서, 우리 문중의 중시조님께서는 고려 중엽 삼별초의 난을 평정하여 나라의 질서를 바로 잡아 평온케 하셨으며, 여몽 연합군을 이끌고 일본을 두 차례 정벌하신 분이십니다. 이분의 시호는 충렬공이신데 다음 중 어느 분이신가요?  

①김방경     ②김효공(김창)     ③김효인     ④김효구     ⑤김효수     ⑥김효조  

 

6. 충렬공 할아버지께서 태어나신 곳은 경북 안동시 풍산읍 회곡리입니다. 이곳은 충렬공 할아버지와 관련된 유적지가 많은 우리 문중의 성지입니다. 다음 중 회곡리의 충렬공 할아버지 유적과 직접 관계가 없는 것은 어느 것일까요?  

①충렬공 옛 집터 ②회곡동 할머니(충렬공 배위) 단소 ③충렬공 유허비각 ④안동시청  

 

7. 회곡동 앞에는 큰 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상락'이라는 말은 이 강의 상류라는 뜻입니다. 이 강은 우리 나라 4대 강 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이 강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①압록강          ②두만강          ③낙동강        ④한강  

 

8. 회곡동 앞에는 충렬공 할아버지께서 젊은 시절 무술을 연마하시고 별장을 지어 거처하시던 곳이 있습니다. 이곳은 행정구역상 안동시 남후면 단호리에 속하는데, 드넓은 강가에 깎아지른 듯한 수직 절벽이 절경을 이루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회곡동 앞에 있는 회곡나루에서 나룻배를 타고 건너다녔다고 합니다. 가파른 절벽 중간에는 수십 명이 앉을 수 있는 넓은 곳이 있어 신기합니다. 이곳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①영호루          ②상락대          ③경포대        ④촉석루  

 

9. 영가지에는 충렬공 할아버지께서 태어나실 때 일화가 다음과 같이 실려 있습니다.

 "처음 충렬공의 어머니는 상서로운 구름을 머금는 태몽을 꾸었다. 남에게 이르기를 '구름의 기운이 항시 내 입과 코에 있으니 이 아이는 반드시 신선의 세계에서 왔을 것이다.' 하였다. 충렬공께서는 자라날 때에 조금이라도 화가 나면 네거리에 드러누워 울어댔다. 소나 말까지도 이를 보고 피해 가니 사람들은 모두 상서롭게 여겼다."  

  충렬공 할아버지께서는 1300년 8월 16일 개성의 백목동 앵계리 본댁에서 89세로 조용히 돌아가셨는데, 유언에 따라 묘소를 안동으로 모셨습니다.  

  이곳은 속칭 능골이라고도 하는데, 오늘날 행정구역 명칭은 다음 중 어디인가요?  

①안동시 녹전면 죽송리                      ②안동시 풍산읍 회곡동  

③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④안동시 정하동  

 

10. 충렬공 할아버지 묘소 앞에는 충렬공 영정각과 재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재실을 일명 능동 재실이라고도 하는데 정식 명칭은 다음 중 어느 것일까요?  

①숭의전(崇義殿)     ②음수재(飮水齋)      ③만취당(晩翠堂)     ④삼소재(三素齋)  

 

11. 충렬공의 아버님 상서공(휘 효인)께서는 고려시대의 명필로 유명하신 분이십니다. 왕명에 의해 여러 고승들의 비석 글씨를 쓰셨는데, 대표적인 것이 강진의 월남사, 도갑사 등지의 비석입니다.  

  이외에도 경북 포항시 송라면 중산리 보경사에도 상서공 할아버지의 필적이 남아 있습니다. 보경사에 있는 이 비석의 이름은 다음 중 어느 것일까요?  

①진각국사비(보물 제313호)                   ②홍진국사비  

③원진국사비(보물 제252호)                   ④선봉사 대각국사비(보물 제251호)  

 

12. 손자의 손자를 현손(玄孫) 또는 고손(高孫)이라 합니다. 우리 문중은 충렬공의 현손, 즉 충렬공 5세에서 21개파로 분파되었는데, 수안김씨 등으로 분적해 나가기도 하여 현재 우리 문중은 15개 파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수안김씨는 충렬공의 아드님 다섯 분 중에서 큰아드님의 후손입니다. 이분의 휘자는 다음 중 어느 자일까요?  

①판서공 선(?)   ②도첨의공 흔(?)   ③문영공 순(恂)   ④사사공 윤(?)   ⑤순(惇)

 

13. 수안김씨가 본관으로 하는 수안은 황해도 수안군을 말합니다. 수안김씨는 판서공 할아버지께서 수안군에 봉해지셨기 때문에 수안을 본관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수안김씨의 남한 지역 주요 집성촌은 경북 영덕군에 분포되어 있습니다. 다음 중 수안김씨 집성촌이 아닌 곳은 어디일까요?  

①강구면 원직리 ②강구면 상직리 ③지품면 송천리 ④영해면 원황동 ⑤포항시 상대동  

 

14. 신라에서는 김씨, 박씨, 석씨가 왕위에 올랐습니다. 김씨 임금은 대보공(휘 알지) 할아버지의 후손으로 우리 안동김씨와 경주김씨 등 알지계 김씨의 선조님이십니다. 대보공 후손 모두를 지칭할 때는 신라김씨라는 명칭을 사용합니다.  

  신라김씨로서 처음 왕위에 오르신 분은 대보공의 7세손이신데, 다음 중 어느 분이신가요?  

①미추왕        ②내물왕        ③실성왕        ④눌지왕        ⑤자비왕  

 

15. 신라김씨 임금으로 마지막 임금(제56대)은 어느 분이신가요?  

①법흥왕        ②태종무열왕    ③문무왕        ④경덕왕        ⑤경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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