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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시 : 2005. 11. 20. 2. 장소 : 1)경기도 김포읍 대포리 양성지 묘소 2)강화도 마리산 참성단 3. 참여자 : 영윤, 재구, 상석, 발용, 태우, 태영, 항용, 윤식
차가운 아침 공기를 가르며 민족의 성지를 찾아 모여든 대원들이 집결지 고촌의 신곡리에 합류하여 커피 한 잔을 나누고 나니 09:40이 되었다.
*참석자:영윤,재구,상석,발용,태우,태영,항용,윤식
차량 두 대에 나누어 타고 물어물어 대포리로 방향을 잡는다.찾아간 곳에는 사원과 함께 잘 가꾸어져 있는 묘소와 그 아래에 위치한 선초의 대학자 양성지(梁誠之)의 신도비가 있다.신도비의 서자(書者 )는 유연재공(휘 希壽)이시고 양성지는 공의 처증조부이시다.새로이 조성한 듯 깨끗하게 단청된 신도비각 안에 마모가 심하였지만 부분적으로 판독이 가능한 신도비,그 왼편에 구대와 이수를 갖춘 여덟자(尺) 오석에 그대로 옮겨 기록한 새로운 신도비가 있었다.
<양성지 신 신도비>
<신도비 내의 유연재공 기록 내용>
일행은 사원앞에서 선초의 혼맥 등을 이야기하며 산행을 위해 서둘러 강화방면으로 차를 몰아간다.최근에 건설한 강화의 동남쪽 초지대교를 이용하여 입도하며 원의 침략에 따른 여말 조정의 상황,충렬공의 수리사업,해랑당,온수리(원수리의 와전)라는 지명에 대한 상기,개화기의 신미양요,병인양요를 거치는 동안 고스란히 받아 들여야했던 강화인들의 고초를 생각 해 본다.
안타까움과 질곡의 삶을 살다가 스러져 간 선인들을 뒤로하고 저멀리 교동,석모도,유무인의 작은섬이 둥둥 떠 있는 서해(西海)가 한눈에 바라다 보이는 성지 참성단에 닿았다.철망이 휘감고 있기에 출입은 불가능하였으나 바깥에서 잠시 들여다 보며 반만년 전 단군왕검께서 제사를 지냈다는 그 곳은 신령스럽고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을 간직한 채 각종 체전과 제천행사에만 모습을 드러낸다.
제단을 깔고 단군왕검께 민족,안김의 영원을 위해 기원하는 제를 올린다.
*초헌관:영윤.아헌관:상석.종헌관:태우.집례:항용.좌집사:태영.우집사:윤식.사준:재구
분축을 한 후 늦은 점심을 하며 송년회와 12월 산행을 마무리 짓고 하산을 시작하려니 바닷바람이 한줄기 몰려 와 일행을 뒤흔든다.서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섬을 빠져 나오는데 귀가길이 복잡하여 머뭇거리는 중에 우리역사를 뒤돌아 보니 실로 오늘을 사는 우리들이야말로 아직 가시지 않은 전쟁의 상흔을 안고 살지만 그래도 가장 평화로운 시대를 살다 갈 배달의 자손들이 아니겠는가 하며 앞으로도 변함없이 겨레와 후손들을 위해 뭐?,이바지할게 없는가!,고심하면서 흩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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