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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탐구-판결사공(김효건)-5-- 김반(金槃)=사계김장생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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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작성일13-03-28 11:31 조회2,861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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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반(金槃)
1580(선조 13)∼1640(인조 18).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광산. 자는 사일(士逸), 호는 허주(虛州).
아버지는 문원공(文元公) 장생(長生)이고, 어머니는 창녕조씨로 부사 대건(大乾)의 딸이며, 집(集)의 아우이다. 송익필(宋翼弼)의 문인으로, 세거지는 충청남도 연산(連山)이다.
1605년(선조 38)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의 거재유생(居齋儒生)이 되었다.
1613년(광해군 5)에 계축옥사가 일어나자 낙향하여 10여년 동안 초야에 은거하며 학문을 탐구하였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 후 빙고별제(氷庫別提)에 임명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이듬해 이괄(李适)의 난 때 인조를 공주로 호종(扈從)하였다가 공주행재(公主行在)에서 실시한 정시문과에 급제, 호종의 공으로 성균관전적이 되었다.
그뒤 형조좌랑·예조좌랑·사간원정언·홍문관수찬·부교리를 거쳐, 1625년 시강원문학(侍講院文學)·사간원헌납·홍문관교리 등을 역임하였다.
1626년 인헌왕후가 죽자 이귀(李貴)의 편견을 배척하였다. 곧 이조좌랑에 임명되고, 이어 정랑에 올랐다. 정묘호란 때 인조를 강화로 호종하고 돌아와 사인(舍人)·겸보덕(兼輔德)·응교(應敎)·전한(典翰)을 역임하였다.
1635년 병조참지(兵曹參知)·대사간·우부승지·형조참의·대사성·부제학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이듬해 병자호란으로 남한산성에 호종하여 왕에게 장병을 독려하도록 건의하였다. 화의가 이루어지자 호종한 공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다.
그뒤 대사성·예조참판·병조참판·대사헌·한성부우윤·대사간·이조참판 등 요직을 역임하였으며, 죽은 뒤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시험관련 사항]
왕/년도 : 인조(仁祖) 2년
과거시험연도 : 1624 갑자
시험명 : 정시(庭試)
등위 : 병과1(丙科1)
 
[인적 사항]
성명(姓名) : 김반(金槃)
자 : 사일(士逸)
호 : 허주(虛舟)
본관(本貫) : 광주(光州)
거주지(居住地) : 미상(未詳)
 
[이력 및 기타 사항]
소과 : 1605(을사) 진사시
전력(前歷) : 별좌(別坐)
관직(官職) : 이조/참판(吏曹/參判)
 
[가족사항]
자(子) : 김익희(金益熙)
자(子) : 김익조(金益照)
자(子) : 김익경(金益炅)
부(父) : 김장생(金長生)
조부(祖父) : 김계휘(金繼輝)
증조부(曾祖父) : 김호(金鎬)
외조부(外祖父) : 조대건(曹大乾)
처부(妻父) : 서주(徐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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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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家系      김철산(+문온공 김구용의 손녀=성천부사 김명리의 딸)-김국광(金國光, 1415∼1480)-김극뉴(金克忸, 1436∼1496)-김종윤(金宗胤)-김호(金鎬)-김계휘(金繼輝, 1526∼1582, 선조 때 공조ㆍ형조ㆍ예조참판ㆍ대사간,부인은 평산(平山) 신씨(申氏)인데, 호조판서를 지낸 신영(申瑛)의 딸이었다. 이 신영의 손자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 문장가로 평가되는 상촌(象村)신흠(申欽,1566~1628))-김장생(金長生,1548∼1631)-1.김은(檃)2.김집(集)3.김반(槃)-
김반(槃)1.김익렬(金益烈)2.김익희(金益熙)3.김익겸(金益兼)4.김익훈(金益勳)5.김익후(金益煦)6.김익경(金益炅)/
1.김익렬-무후, 2김익희-김만균(金萬均)ㆍ김만증(金萬增)ㆍ김만준(金萬埈)
3김익겸-김만기(金萬基)ㆍ김만중(金萬重),

김영환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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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김반은 인조2년갑자년2/15일 공주정시에서 급제하였다. 판견사공과는 같은해에 4/28일 한양정시에서급제하였으므로 동방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