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스크랩/김준묵(56·미래M&B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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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회 작성일14-01-06 14:12 조회3,996회 댓글0건본문
입력 : 2014.01.05 23:58
- ▲ 김준묵씨는“앞으로는 세상 어디서든 창창한 젊은 친구들이 부당한 공권력에 탄압받는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고 힘줘 말했다. /주완중 기자
긴급조치 9호 피해 보상금으로 아시아 인권기금 만든 김준묵씨
"정초부터 사람 모으랴 돈 모으랴 정신없게 생겼습니다(웃음). 그래도 정말 중요하고 필요한 일 하는 거니까, 젊었을 적 품었던 포부를 되새기며 다시 한번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애써 보겠습니다."김준묵(56·미래M&B 출판사 대표)씨의 얼굴은 발갛게 상기돼 있었다. 지난 12월 23일, 자신을 비롯한 긴급조치 9호 피해자 6명이 모여 '아시아 민주주의와 인권 기금' 협약식을 개최했던 기쁨이 아직 가시지 않은 듯했다. 이들은 국가로부터 받을 각자의 배상금을 모아 5억5000만원의 기금을 조성했다. '아시아 민주주의와 인권 기금'의 종잣돈이 될 이 돈은 민주주의가 낙후된 아시아 국가들의 인권 운동을 위해 쓰일 예정이다.
김씨는 이번 기금 탄생의 주역이다. 긴급조치에 대해 위헌 결정이 내려진 작년 3월, 친구인 조희연(57) 성공회대 교수와 함께 "우리가 배상금을 받는다면, 의미와 상징성이 있는 돈인 만큼 더 뜻깊은 일에 기부하는 게 낫겠다"며 뜻을 모았다. 다른 피해자들에게도 동참을 권했다. 흔쾌히 허락한 이들도 있지만, "이제는 조용히 살고 싶다"며 손을 내젓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김씨는 직접 발로 뛰었다. "한국의 민주화 정신이 우리 땅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며 설득했다.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김씨는 1978년 겨울 서울고등법원에서 '긴급조치 9호 위반죄'로 자격정지 3년,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가 10개월 만에 '광복절 특사'로 가석방됐다. 당시 학생들은 표현의 자유와 신체의 자유를 억압하고 헌법에 보장된 청원권을 제한한 긴급조치 9호의 위헌성에 반발해 시위를 조직했다. 김씨는 시위에 필요한 인쇄물을 만들어 뿌렸고, 도피 중이던 서울대 학생들을 숨겨줬다. 10월에는 유신 선포 6주년에 맞춰 계획된 전국 대학생 연합 시위를 준비하며 학생들의 참여를 독려했다. "제 목에 1계급 특진과 현상금 100만원이 걸렸어요. 순경 월급이 13만원이고, 서울 정동의 단독주택이 200만원 하던 시절이니 엄청난 거죠." 결국 '시위 주동자 일제 검거' 작전 때 경찰에게 붙잡혔다.
명지대 경영학과에 다니던 김씨가 민주화 운동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서울 양천구 신정동의 한 야학(夜學)에 참여하면서다. "리영희 교수가 쓴 '전환시대의 논리'를 읽고 세상을 달리 보게 됐지요. '핵심 운동권'이었던 조희연과 의기투합하게 되면서 긴급조치 반대 운동에 투신하게 됐지요."
2013년 3월, 긴급조치 9호에 대해 위헌 결정이 내려지면서 김씨를 비롯한 피해자들은 수감 기간 하루당 19만8000원을 형사 배상금으로 받았다. 민사 배상금이 더해지면서 김씨가 받은 총배상금은 1억원을 넘어섰다. 김씨는 배상금을 '아름다운 재단'에 쾌척했다. '아시아 민주주의와 인권 기금'을 만들어 달라는 조건부였다. "세상 어느 곳에건 독재의 씨앗은 독버섯처럼 퍼져 나가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협합니다. 아시아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되찾는 첫걸음이 되었으면 합니다." 기금이 출범하자 이필렬(55) 방송통신대 교수 등 14명이 곧바로 후원 의사를 밝혔다.
김씨의 올해 목표는 긴급조치 9호 피해자 100명을 모으는 것이다. 피해자뿐 아니라 일반인들의 기금 참여도 장려할 예정이다. "1910년 우리는 일제에 나라를 뺏겼습니다. 35년 뒤인 1945년 해방으로 우리는 드디어 좋은 세상이 왔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35년이 지난 1980년, 우리는 폭발적인 경제성장의 혜택을 누렸으나 동시에 군사독재의 고통을 받았습니다. 다음 35년 주기가 되기까지 딱 1년 남았습니다. 이번 갑오년 새해는 그래서 매우 귀중한 시간이 될 겁니다."

김준묵 (金俊墨)
소속 : (현)스포츠서울 회장 ,
(전)한국문화진흥 대표이사 사장
직업 : 언론인(신문인) , 기업인(사기업인)
출생 : 1957년 (음력), 양띠, 남
安東金氏 郡事公派 [忠烈公 23世孫]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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