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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海州金氏(해주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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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근 작성일14-07-29 01:34 조회3,01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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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안렴사공파 수도권종회 사무국장 진회님게서 제보한 daum Cafe에 올려있는 안렴사 김사렴 선조님의 후손임을 자청하는 해주김씨가 있어 본란에 올려 드립니다.
               우리 안동김씨 족보 어디에서도 찾아볼수가 없어 한 혈족인지는 불 분명하나 그들의 주장이 근거가 있다면 방치하는 것도 도리가 아닌듯하여 발췌 계재합니다.   확실한 고증과 자료를 찾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어 전재하니 고견을 부탁드립니다.  -김상근- 

 
         海州金氏(해주김씨)

 ▣ 由 來

 海州金氏(해주김씨)는 本貫(본관)을 같이 하면서 始祖(시조)를 달리하는 두 系統(계통)이 있다.

 

[金士廉 系(김사렴 계)]

高麗時代(고려시대)에 按廉使(안렴사)를 지내고 朝鮮(조선)이 開國(게국)하자, 不事二君(불사이군)의 忠節(충절0로 開城(개성) 杜門洞(두문동)에 隱居(은거)한 72賢(현) 中(중)의 한 사람인 金士廉(김사염)을 元祖(원조)로 하고, 그의 後孫(후손)으로 全羅都事(전라도사)를 지낸 金文東(김문동)을 中始祖(중시조)로 한다. 

[金孟 系(김맹 계)]

兵曹判書(병조판서)를 지낸 金憲(김헌)이 南漢山城(남한산성)을 築城(축성)할 때 禍(화)를 입고 海州(해주)로 流配(유배)되었는데, 그의 後孫(후손) 金孟(김맹)이 平安道(평안도)로 移住(이주)하며 祖上(조상)의 前世居地(전 세거지)인 海州(해주)를 本貫(본관)으로 삼았다.

▣ 人物 

[金士廉系(김사렴 계)]

金文東(김문동)의 아들 金右漢(김우한)이 1504年(燕山君10) 科擧(과거)에 올라 牧使(목사)를 지냈고, 曾孫(증손) 金鼎(김정)은 中宗(중종)때 文科(문과)에 及第(급제)하여 校理(교리),吏曹參判(이조참판)을 거쳐 吏曹判書(이조판서)에 올랐으며, 金鼎(김정)의 孫子(손자) 金大胤(김대윤)이 通禮(통례)를 지냈다.

 

[金孟 (김맹 계]

金孟(김맹)의 아들 金膺(김응)이 承義副尉(승의부위,正8品 武官의 品階)를 지냈으며, 孫子(손자) 金世侊(김세광)은 宣務廊(선무랑)을 歷任(역임)했고, 後孫(후손)金萬兼(김만겸)은 上護軍(상호군)을,金啓凞(김계희)는 通政大夫[통정대부,正3品(정3품) 堂上官(당상관)의 品階(품계)]를 역임하였다.

 

▣ 科擧及第者(朝鮮時代)

 金佑漢(김우한) : 文科 燕山君10年(1504) 別試 三等
金鼎(김정) : 文科 中宗19年(1524) 別試 丙科
金伯(김백) (1614 甲寅生) : 武科 仁祖15年(1637) 別試 丙科
金聲遠(김성원) (1640 庚辰生) : 武科 肅宗1年(1675) 增廣試 丙科
金鉉(김현) (1657 丁酉生) : 武科 肅宗12年(1686) 別試 丙科
金香男(김향남) (1603 癸卯生) : 武科) 仁祖15年(1637) 別試 丙科
金得男(김득남) (1607 丁未生) : 武科 仁祖15年(1637) 別試 丙科
김천립(金天立) (1612 壬子生) : 武科 仁祖15年(1637) 別試 丙科
김시흘(金時) (1654 甲午生) : 武科 肅宗10年(1684) 別試 丙科
김준달(金俊達) (1657 丁酉生) : 武科 肅宗10年(1684) 別試 丙科
等 모두 61名의 科擧 及第者가 있다.
(文科2名,武科9名,司馬試 8名,譯科 6名,醫科21名,陰陽科9名,律科1名,籌學 5名)
 

 

▣ 本貫 沿革

 本貫所在地 : 黃海道 海州

 海州(해주)는 黃海道(황해도)南海岸(남해안)에 位置(위치)한 道廳所在地(도청소재지)이다. 高朝鮮時代(고조선시대)에 帶方郡(대방군)에 屬(속)하여 孤竹(고죽)으로 불리었다.高句麗(고구려)때에는 內米忽(내미홀)또는 池城(지성)·長池(장지)等(등)으로 불리우다가,748年(新羅景德王7)에 瀑池郡(폭지군)으로 바뀌었다. 936年(高麗太祖19)에 太祖(태조)가 南(남)쪽이 바다와 接(접)하고 있다고 하여 海州(해주)를 賜名(사명)했으며 成宗(성종)때 와서는 別號(별호)로 大寧(대령)· 西海(서해)等(등)으로 불리기도 하였다.983年(成宗2)에 海州牧(해주목)으로 昇格(승격)된데이어 1018年(顯宗9)에 安西都護府(안서도호부)로改編(개편)되었고,1247年(高宗34)에는 다시 海州牧(해주목)으로 還元(환원)되었다.

1616年(光海君8)縣()으로 降等(강등)되었다가 1623年(仁祖1)에 다시 牧(목)으로 復舊(복구)되었다. 1895年(高宗32)地方制度(지방제도)改正(개정)으로 海州府(해주부)가 設置(설치)되었고, 1896年 道制(도제)實施(실시)로 黃海道(황해도)의 道廳所在地(도청소재지)가 되었다.1945年海州市(해주시)로 改編(개편)되었다.1954年 北韓(북한)의 官制(관제)整備(정비)로 黃海南道(황해남도)에 編入(편입)되었다.

 

▣ 人口數

 

 統計廳(통계청)의 人口調査(인구조사)에 依(의)하면 海州金氏(해주김씨)는
1985年에는 摠 1,449家口 6,278名,
2000年에는 摠 1,823家口 5,864名이 있는 것으로 調査(조사)되었다.

    2011.  6.  8. 伍民 轉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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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시조 :  김문동[金文東],  김헌[金헌]

 2> 본관 및 시조의 유래

     해주(海州)는 황해도 남해안에 위치한 도청소재지로 일찌기 고조선 이후 대방군에 속하여
     
고죽(孤竹)으로 불리웠고 고구려 때에는 내미홀 또는 지성,·장지 등으로 불리웠다.
     통일신라시대에
폭지군으로 고쳤고, 고려 태조가 남쪽이 대해에 임하고 있다고 하여

     해주로  사명했으며 성종때 와서는 대령(大寧)·서해(西海) 등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해주김씨(海州金氏)는 동성동본이면서도 시조를 달리하는 두 계통이 있다.
     
첫째 계통은 신라 경순왕의 후손으로 고려말에 안렴사를 지내고 고려가 망하자 불사이군의
     충절을 지켜 벼슬에서 물러나 두문동에 은거했던
김사렴(金士廉)을 원조로 하고, 조선조

     에서 전라 도사를 지낸  김문동(金文東)을 중시조로 하는 계통이다.

     다른 한 계통은 조선 인조조에 김헌(金獻)이 병조판서로 남한산성을 축조할 때 직간을

     하다가 해주로 유배되어 그곳에 살았는데  그의 7세손 맹(孟)이 평안도로 이거하여 조상

     의    세거지인 해주를 관향으로 삼게 되었다.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문동(文東)의  아들 우한(佑漢)이 연산군때 대동찰방을 지냈고,  
     그의 손자
정(鼎)은  이조참판을 거쳐 이조판서에 올라 가문을 중흥시켰으며,  
     
정두(鼎斗)는 현감을 역임하여  동지중추부사 양호(良浩)와 함께 이름을 떨쳤다.

     맹(孟)의 후손에서는 승의부위에 오른 응(膺)의 아들 세광(世光)이 선무랑에 올라
     상호군
만겸(萬兼), 도정(都正) 계정(啓晶)과 함께 가문을 대표했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해주 김씨(海州金氏)는 남한에 총 1,449가구,
     6,278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3> 집성촌

     평남 영원군 일원

평북 태천군 강서면 용봉동

     평남 안주군 대니면 남상계리

평북 선천군 군산면 진석동

     평북 영변군 봉산면 일원

평북 정주군 안흥면 안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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