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호(金淵浩) 효자문과 廣州李氏 열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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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발용 작성일15-03-12 21:27 조회1,689회 댓글0건본문
김연호(金淵浩) 효자문과 廣州李氏 열녀문
소재지 :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독정리
이 정려는 1827년(순조27)에 동몽교관 조봉대부를 증직 받고 명정 받은 효자 김연호(1759-1800, 군사공 16세손)와 그의 처 광주이씨의 효열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이 효자정문은 순조 27년(1827) 정표(旌表)의 명을 받아 현 위치에 창건하였다. 그 후 1919년 기미만세운동 때 왜인(倭人)들의 방화로 건물은 소실되고 현판만 구출하여 피난하였다가 화성시 장안면 수촌리 용두산(龍頭山) 열녀이씨의 묘후(墓後)에 중건하였으나 세월이 오래됨에 퇴락하여 1989년 현 위치로 이건하였다. 그러나 두 분의 행적은 기록의 소화(消火)로 상고할 수 없어 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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