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김씨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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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안동김씨(安東金氏)에 대한 개괄적 소개

2. 주요 역사적 인물 간략 소개

3. 작위, 군호, 시호를 취득한 선조

4. 공신, 상신, 청백리, 삼도수군통제사 명단

5. 문과, 무과, 생원시, 진사시 합격자 명단

6. 중요 묘, 사, 영당, 서원, 정려 위치

7. 분관성씨 소개

8. 각종 통계표

9. 상락사 연표

 

본문

p02.png 분관성씨 소개


 안동김씨 분적성씨 1-수성최씨-

안동김씨에서 분관되었다고 하는 성씨에 대하여 해당 문중별 족보를 통하여 그 분들의 입장에서 그 분들의 유래와 시조 또는 관조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살펴보았습니다.

수성최씨세보 간행사에 의하면 隋城崔氏(수성최씨)범 신라김씨로 시조이신 永奎(영규)공은 敬順王(경순왕)11세손이 되신다.

시조께서는 忠烈王(충렬왕) 28(1302)水州(수주, 지금의 수원)를 다스린 공이 높다하여 최씨로 賜姓(사성)되시고, 隋城伯(수성백)의 봉작을 받으시고, 文惠(문혜)라는 시호를 받으시니 수성최씨가 이로부터 비롯되었다. 그리고 문혜공은 경순왕의 11세손이시다.

따라서 우리 수성최씨는 경순왕을 비조로 하여 다음 표와 같이 계통이 이어져 내려왔다. 1(경순왕 부)-2(은열)-3(숙승)-4(일긍)-5(이청)-6(의화)-7(민성)-8(효인)-9(현경)-10()-11(영규)

출전 : 수성최씨세보 pp1, 1516/1997

 

이상과 같이 안동김씨는 수성최씨가 우리 안동김씨에서 분적된 것으로 보고 있으나 수성최씨는 비조를 경순왕으로, 시조를 문혜공 영규로 보고 있을 뿐 안동김씨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안동김씨 분적성씨 2-수안김씨-

-(전략)-

, 김씨라는 성은 신라 대보공 알지께서 금궤에서 탄생하셨기에 사성 되었으며 그 후 왕성씨(王姓氏)로 계승되어 왔으며, 28세손이신 경순왕의 제4자 대안군은열(殷說)8세손 상락공방경(方慶)의 장자()시조님이 수안군(遂安君)에 봉해지신 이후로 수안으로 위관(爲貫)되었다.

-중략-

현재 보전된 보책 중 제1차 발간분이 계유보(서기 1873)이고, 2차분이 갑진보(서기 1904)이며, 3차분이 임술보(서기 1922)고 가장 가깝게 발간된 것이 30수년 전인 갑오보(서기 1954)인 바 계유보 이전 보책은 임진병화 등으로 소진되어 상계를 상고함에 다소의 소루함이 있어 휘 위()자를 중시조로 뫼셔 1세로 하여 편찬하였으나 갑오보 시에 휘 선()자의 장자이신 휘 자()자를 각종 문헌에 의해 찾았으나 중시조이신 휘 위()자가 휘 자()자와의 관계가 불분명하여 그 전보와 같이 편집하였으나 금보에는 구보와 달리 수안군이신 휘 선자를 시조로 뫼셔 1세 휘 자()자를 2세 전보에 중시조로 등재되신 휘 위()자를 3세로 뫼셔 보계를 명백히 하였음은 세와 세간의 년수차를 계산한 결과 직계로 계승되었음이 명백함에 기인하였음을 부연(敷衍)하여 둔다.

-(후략)-

출전 : 수안김씨대동보(병인보) 서문 일부. pp26/1986

이상과 같이 수안김씨는 우리 안동김씨에서 분적한 것으로 강진에 단소로 모시고 있는 판서공 김선(金愃) 할아버님을 시조로 하고 있습니다.

 

안동김씨 분적성씨 3-정산김씨-

! 정산김씨는 신라 마지막 임금인 대보공 28세손 경순왕의 4자 대안군 휘 은열공의 3자 공부시랑 평장사 휘 숙승공이 안동에 정주하면서 시봉 안동하시고 경순왕 8대손이며 휘 숙승공의 6대손인 충렬공 휘 방경장군을 중시조로 모시고 연면히 계승하여 오다가 려조 말 충렬공의 4대손 공조전서 휘 성목공의 손자로 태종조에 이조정랑 휘 익렴공의 차자로 단종조에 성균관 직강 휘 한공의 차자로 태어난 충렬공의 8대손 휘 복수(광유)공이 출세소시 등과하여 정산현감(지금의 충남 청양군 정산면)으로 재임 중 연산조 때 두 차례에 걸친 무오 갑자 양사화시 화를 입어 고향인 전의(조부, 증조부가 사시던 운주산 학당골)로 피신하였다가 기후 전의도 안거(安居)지지가 못되어 독자 휘 지공과 손자 휘 영필공을 데리고 북쪽 변방인 평안도 영변 연산지방으로 피신 정착하여 휘 복수를 휘 광유로 개명하시고 본관 안동을 정산으로 개관하였으니 이때가 서기 1504(갑자)을 전후한 시기이며 정산김씨의 시초이며 시조가 되시었다.

출전:정산김씨족보 pp3943/2000

 

이상과 같이 정산김씨는 우리 안동김씨에서 분적한 것으로 전서공 김성목(金成牧) 선조님의 현손 김복수(金福壽)를 광유(光酉)로 개명하여 시조로 하고 있습니다.

 

출처 :

 

안동김씨 분적성씨 4-청주김씨-

우리 안동김씨에서 분관한 청주김씨의 시조에 대한 기록은 족보의 김씨분관록, 족보의 내용, 인터넷 자료 등이 서로 상이합니다.

1. 족보의 김씨분관록에 청주김씨는 충렬공 김방경(金方慶)의 증손 김지언(金之彦)을 시조로 하고 있습니다. 김지언(金之彦)은 충렬공의 손자 김승우(金承祐의 아들이고, 좌윤공 김지연(金之衍)이다.

2. 우리 족보에 청주김씨는 충렬공 김방경(金方慶)의 증손 김지연(金之衍)의 아들 김윤(金潤)을 시조로 하고 있습니다. 김선(金愃)의 넷째아들 김승우(金承祐)는 두 아들(지연, 지서)을 두었고 큰 아들 좌윤 지연(之衍)이 현감 윤()을 낳았는데 윤이 청주김씨로 분적하였고, 둘째아들 천우위대장군 지서(之瑞)는 대호군 유()를 낳았는데 바로 대호군공파조입니다.

3. 인터넷 검색자료에 청주김씨는 충렬공 김방경(金方慶)의 증손 김천(金薦)의 아들 김사의(金士儀)의 후손 김하통(金夏通)을 시조로 하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상의 경우를 살펴보면 김방경의 증손 김지언과 김천의 아들 김사의는 우리 족보상 없는 인물입니다. 따라서 청주김씨는 충렬공 김방경의 증손 김지연의 아들 김윤(金潤)을 시조로 보고 있습니다.

 

안동김씨 분적성씨 5-사천김씨-

우리 사천김씨의 시조는 정의공(貞義公) 휘 부()이시다. 경순왕 13세손 삼중광평장사상락군 휘 묘()의 아들은 지제교판도판서 제안(齊顔)이고 공은 손자이시다. 부이신 휘 제안공은 고려 공민왕조 때 병부낭중으로 있으면서 형이신 직제학 대사헌(:대사성의 오기) 휘 구용(제영, :제민의 오기)과 같이 밀직사 전녹생(田祿生), 포은 정몽주(鄭夢周), 박상충(朴尙衷), 이숭인(李崇仁), 이존오(李存吾) 등과 같이 道義講磨(도의강마)하시다.

공민왕 때에 요승 신돈이가 들어와 정사를 맡기니 나라는 점점 더 쇠퇴하여 백성들의 원성이 극도에 이르니 부 휘 제안은 밀직사 김정(:수안김씨로 분관) 유사의 등 교우 7인이 요승 신돈(辛旽)을 모주(謨誅:베어 죽일 계획)하려다가 사세되어 장유당하시다 화를 당하게 되자 공도 그 영향으로 사천으로 유배되시다.

정사년에 이르러 왜군이 창란하니 공이 수군장군이 되어 의병을 일으켜 왜병을 패하게 하고 정벌하는데 크게 공을 세운 바 신돈이가 시중으로 불렀으나 사양하다 공양조(恭讓朝)에 이르러 사성대원군(泗城大院君)의 봉작을 받고 정의공이란 시호를 받았다. 그러므로 사천김씨 관적의 시조가 되었다.

출전 : 사천김씨족보 pp8788/정의공 휘 부() 사적/1991

 

이상과 같이 사천김씨는 우리 안동김씨에서 분적한 것으로 문온공 척약재 김구용(金九容) 할아버님의 동생 김제안(金齊顔)의 아들 김부(金阜)를 시조로 하고 있습니다.

 

안동김씨 분적성씨 6-영해김씨-

한편 고려에 들어와서는 고려 태조 왕건의 딸 낙랑공주와의 사이에서 태어나신 은열공의 아들 공부시랑 숙승공께서 안동김씨로 분관되었으니 즉 안동김씨의 시조이시다. 또한 숙승공의 7세손이자 안동김씨 중흥조인 충렬공(휘 방경)은 고려의 도원수로서 명상이시자 명장이시다.

-중략-

고려 말 정의대부(4)인 중랑장공(고려 무관직 정5) 휘 철()은 조선 태조 7년 무인(1398) 태조의 어가를 함흥까지 김성부, 심지백 등과 같이 호종하고 태종원년 신사(1401) 태조의 환도하는 어가전에서 배사(拜辭)하고 단천으로 입북하여 영대봉하에 복거(卜居)하니 공이 오문(吾門)의 입북조(정의공파조)이시다.

공은 3자를 두셨으니 장()은 휘 성경(成景)으로 자손은 안동김씨이고, ()은 휘 성호(成浩), ()는 휘 성함(成咸)으로 자손은 역시 안동김씨이며 중 휘 성호공께서 아들 한분을 두셨으니 이분의 휘가 억민(億敏)이시니 곧 영해김씨의 시조이시다.

출전:영해김씨족보 pp6365 영해김씨의 연원 및 내관유래/2001

 

이상과 같이 영해김씨는 우리 안동김씨에서 분적된 것으로 정의공 김철(金哲)선조님의 손자 영해부사 김억민(金億敏)을 시조로 하고 있습니다.

 

안동김씨 분적성씨 7-대구김씨-

이번에 우리 혈족인 대구김씨의 족보를 발간하게 된 것을 충심으로 기쁘게 생각하는 바이다.

무릇 족보라 함은 승선계세지도(承先系世之道)라 윗대 조상으로부터 후손 만대에 이르기까지 계승할 한 집안의 역사이므로 가장 중요한 가보이다. 사람이 족보가 없으면 어느 시대 어느 할아버지의 자손인지 알 수가 없으며 자기 집안 내력을 전혀 알 수가 없게 되니 생각하면 한심하고 개탄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물은 원천이 있어 천파만지로 흐르고 나무는 뿌리가 있어 천지만엽으로 번창하고 사람은 한 조상으로부터 천자만손으로 번영하니 그 이치가 마치 수()와 목()과 같다.

안동김씨와 대구김씨는 한 할아버지의 자손이다. 그 원류를 캐보면 서기 65년 계림 시조대왕 대보공 김알지께서 신라 경주 계림 금궤 속에서 탄생하신 후 서기 935년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에 이르기까지 870년 동안을 연면하게 왕실을 누려오다가 경순왕의 제4자인 대안군 공부시랑 평장사 은열공의 제3자이신 공부시랑 평장사 숙승공께서 비로서 안동김씨로 수적(受籍)하니 이분이 곧 안동김씨의 시조이고 숙승공의 6대손인 고려국추충정란정원공신 벽상삼한삼중대광 도첨의중찬 판전리사사 세자사 도원수 상락군개국공 충렬공 휘 방경이 안동김씨의 중시조이시고 충렬공의 현손 병사공 휘 ()이 곧 대구김씨의 시조이시니 안동김씨와 대구김씨는 동원분파의 가장 가까운 혈족지간이다.

병사공 휘은 충렬공 방경할아버지의 막내 손자이시니 따지고 보면 안동김씨는 큰집이요 대구김씨는 작은집이다. 기지간(其之間) 병사공 휘 께서 대구김씨로 분관한 사실만 기록되고 기후손이 서북지방에서 번성하고 있다고 전하여 졌을 뿐 종회 간에 피차 교류가 두절되어 답답하든 차에 이번에 확고한 사적고증으로 명실상부하게 완벽한 족보로 수보(修譜)하게 되니 만시지감은 있으나 기쁘기 한이 없다.

충렬공 방경할아버지의 후손에서 분관된 김씨를 열거하면 수안김씨, 사천김씨, 청주김씨, 영해김씨, 정산김씨, 대구김씨 등 6파이고 충렬공 방경의 셋째 아우되시는 충순공 현경의 손자 수성백 영규는 수성최씨의 시조가 된다. 이와같이 한 할아버지의 자손으로서 일곱 갈래로 분관되었다. 또 충렬공 현손대에서 안동김씨는 21파로 분파되었는데 그중에서 오직 끝파만이 대구김씨로 분관되어 나가고 20파가 존재하여 오던 중 그 후 무후한 파와 다시 분관된 파를 제외하고 안동김씨는 현재 15개파가 존재하고 있으며 그 숫자는 50여만 명에 달하고 있다. 안동김씨와 대구김씨는 촌수를 따저도 그다지 멀지 않은 사이다.

다만 본관만 달리하였을 뿐 한 혈족 한 집안이다. 평소에 타성과 같이 소원한 감이 불무(不無)하였으나 이번의 족보를 발간하게 되므로서 혈족지간의 정의와 친밀감이 더욱 두터워지게 되었다.

여기에 한가지 명기할 것은 안동김씨는 구안동김씨와 신안동김씨의 두가지 안동김씨가 있으나 이 두 사이는 글자만 같을 뿐 그 시조가 전연 다르며 완전한 타성이라는 사실이다.

서두에서 말한바와 같이 우리 구안동김씨는 신라 대보대왕 김알지27대손 경순왕의 손자인 공부시랑 평장사 숙승공을 시조로 하고 그 6대손인 충렬공 방경을 중시조로 하고 있으나 신안동김씨는 고려초 태사공 김선평을 시조로 하고 이조 중엽 광해군 때 도정을 지낸 김극효를 중시조로 하고 있다. 본관 이름은 다같이 안동이지만 서로 시조를 달리하고 있으므로 전연 관계가 없다. 그러나 대구김씨와 구안동김씨는 본관은 서로 다르다 할지라도 다같이 충렬공 방경할아버지의 후손이므로 한 혈족지간이다. 따라서 대구김씨와 신안동김씨와는 전연 관계가 없으니 혼동없기를 바란다.

끝으로 대구김씨 문중의 무궁한 발전과 번영을 기원하면서 서문에 가름한다.

1987(무오) 8월 일

안동김씨대종회회장. 정치학박사. 국회의원 김명회(金明會) 근지(謹識)

출전:대구김씨무오보 서문. pp46/1978

 

이상과 같이 대구김씨는 우리 안동김씨에서 분적한 것으로 충렬공 4자 김론(金惀) 선조님의 증손 병사 김달(金達)을 시조로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