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제학공파 비안공문중회의 오랜 숙원사업이었던 영상공(휘 錫) 이하 3위 선조님들의 묘비건립 및 제막식 행사가 문중인 전체가 하나 되어 성황리에 마치게 되었기에 삼가 다음과 같이 그 전말을 간략하게 남기며 아울러 본 행사에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께 머리 숙여 깊은 감사의 말씀 전해 올립니다.
1. 일시 : 2005. 4. 23(묘비 및 각종 석물 건립), 4. 24(제막식 거행) 2. 장소 : 충북괴산군 괴산읍 능촌리 개향산, 괴산읍 수진리 수진산 3. 내용 : 4위 묘소의 묘비 및 석물 건립, 제막식
가. 4위 묘소의 선조님 : 1)領相公(휘 錫) -- 2)五子 比安公(휘 仁甲) -- 3)二子 陽德公(휘 時說:충익공 휘 時讓의 兄) -- 4)二子 安州公(휘 繁:감사공 휘 素의 아우)
나. 석물 내용 1)영상공 : 묘비 보수(거북좌대와 용머리 추가 건립), 3년 전 부러진 망주석 보수 2)비안공 : 신묘비 건립, 양마석과 장명등 설치 3)양덕공 : 묘비 건립, 문관석 설치 4)안주공 : 묘비 건립, 사초 4. 주관처 : 안동김씨 제학공파 비안공문중회 5. 후원 : 안동김씨 제학공파 영상공 이하 후손 일동, 제학공파 괴산종중
6. 참가자 가. 4. 23. 건립시(13명) : 태섭, 두응, 상환(내외), 상천, 상석, 상운, 구응, 태복(내외), 상석, 복응, 성수 나. 4. 24. 제막식시 (약 70여 명) : *약호 : 구-구암공파(충갑), 참-참봉공파(우갑), 문-문숙공파(제갑), 비-비안공파(인갑), 통-통덕랑공파 *( )는 제학공파 내 소파명의 약칭과 추가 소개 내용임 상환(비),상운(비),상천(비),상기(통,병천종약소장),재만(비,거창),상석(비),두응(비안공종회장), 남응(구,병천, 학암문중회장),유응(구,병천),학응(구,능촌종약소장),천응(구,병천),만응(참),찬응(비,서울), 달응(참),준응(비,서울),좌응(비,서울),복응(참),택응(참,참봉공파 종손),옥회(비,대구),경회(비,거창), 성회(비,거창),발용(군사공파.안사연),태섭(비,양덕공 종손),태옥(구),태준(구,서울),태석(구),태정(참,청주), 태수(참,서울),태영(구,원주),창규(구,병천),규영(구,원주),규문(구,능촌),규동(비,청주),규성(비,청주), 규태(구,서울),규복(구,증평),영수(문),성수(문),철수(문),항용(비,비안공종회총무),효식(구,충무공 종손), 장용(구),태진(비-植항렬),정중(도평의공파),대식(구, 구암공종손),명식(구),용달(비,비안공종손), 명렬(구,광주-會항),
7. 후기 작성자 : 글-김상석, 김항용, 사진-김발용, 김항용
2005년 4월 22일(금) 行槐山 날씨 맑음--괴산 도착과 행사 준비 2005년 4월 22일(금) 오후 5시, 四位의 묘비를 보수 및 건립(안주공 묘역은 사초 포함)하기 위해 이날 양덕공(휘 時說)의 직손이신 항용(恒鏞:안동김씨 홈페이지 관리자) 비안공문중회 총무님과 함께 주과포를 포함한 각종 제수물과 행사장 안내판, 행사 현수막, 忠翼公(하담공 諱 시양:양덕공의 아우님)의 신도비 해설판, 고유제문 및 분방기, 의식절차를 적은 행사 간략 홀기, 제막식 행사에 필요한 각종의 행사 도구들을 점검하고 한 대의 차에 짐을 가득 싣고 서울을 출발하였습니다.
빠른길을 잡아 괴산으로 향하면서 신중을 기하며 귀하게 택일(擇日)한 내일(토요일-丁丑日:벼슬하신 조상님이 많기에 이를 잘 섬겨야 하는데, 그에 합당한 吉日이라 하며 스승님이 잡아줌)의 일기를 점치며 동석한 둘은 고속도로를 달립니다. 사백여 년이 흐르는 동안 이루지 못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던 지난날의 불효로부터 묘비와 여러 석물등을 건립함으로써 비로소 격식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는 벅찬 감격의 숨소리는 말없는 가운데 서로의 가슴으로 오고 갑니다. 특히 이 시대에 태어나 만나게 된 찬자(撰者-항용:양덕공 14代孫), 서자(書者- 태국:정의공파, 傍孫), 양덕공 묘비 건립자(태섭:양덕공 13代 종손), 안주공 묘비 건립자(상석:양덕공 11代孫)가 어울어져 이루게 되는 이번 사업은 영상공 후손은 물론 여러 문중의 성원이 복합된 보람과 긍지가 아닐 수 없습니다.
밤이 이슥해서야 종가(여기서는 世德祠가 있는 양덕공 종가를 말함)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십여 년을 넘게 다니며 느끼는 고요하고 청량한 종가의 밤풍경 속의 그 아늑함 속으로 빠져 듭니다. 언제나 정성과 부지런함이 습관 되신 양덕공의 종부(항용총무의 母親)님이 손수 차려 주신 저녁상을 대하니 갑자기 옛날의 내 어머니(1985년 52세의 일기로 작고)가 오버랩(overlap) 되며 뜨거운 눈물이 잠시 고입니다.
저녁상을 물리고 종손(泰燮), 한용(항용총무의 형님), 항용총무와 행사 전체에 대한 점검을 다시 한 번 점검해 보면서 내일 있을 능촌리 개향산의 산신제와 3위 고유제, 양덕공 묘소가 있는 수진리의 산신제와 고유제 제물들을 각각 따로이 담아서 준비합니다. 진설, 철상의 담당자까지 정하여 이틀간에 걸친 행사의 혼잡함을 미연에 방지하는 한편, 모든 행사가 질서정연하게 치뤄질 수 있도록 정리, 분담한 뒤 들뜬 마음으로 잠을 청합니다.
2005년 4월 23일(토) 날씨 맑음--산신제와 묘비 건립 전 고유제, 4개소 묘비 건립과 각종 석물 설치, 안주공 묘역 사초(莎草)
여명에, 세덕사 처마 끝의 풍경(風磬)이 바람을 타고 울리며 잠을 깨웁니다. 마침 보름(음력15일로 길일)이라 종손께서는 일찍이 사당에서 보름차례(망다례望茶禮)를 올리십니다. 또한 종가에서 안주공 묘역의 사초 후에 식수할 주목 두 그루도 캐어 주십니다. 후손이 직접 기른 나무이니 무어라 형언 할 수 없는 감동이 가슴을 파고듭니다. 그리고 분주하게 쌀쌀한 아침 공기를 맞으며 준비합니다.
07:00시, 시공 석물사에 도착하여 각종 장비를 양 편으로 나누어, 하나는 영상공 묘역으로, 또 하나는 안주공묘역으로 보냅니다. 포크레인이 석물을 실은 짐차를 뒤에 세우고 능촌 개향산의 영상공 묘역으로 길을 내며 올라옵니다. 그 사이 종손이신 태섭님과 항용, 상석은 영상공의 어머니이신 의성김씨할머니(소래산 소재의 참판공 諱 彦默의 배위) 묘소 위 언덕으로 올라가 산신제를 지내고, 이어 영상공(휘 錫:충,효,우,제,인갑, 세칭 五甲의 父로 괴산의 제학공파 입향조) 묘소에서 고유제를 지낸 다음, 그 아래 선영 하에 있는 비안공(휘 仁甲 : 좌랑공 諱 時訓, 양덕공 諱 時說, 충익공 諱 時讓의 父) 묘소로 내려 와 고유제를 지냅니다. 그러는 동안 비안공문중회장님이신 두응(斗應, 충익공 孫), 상천(相天, 충익공 孫) 형님이 도착하시고, 어느새 포크레인은 나무숲을 뚫고 올라와 묘비 세울 준비를 합니다. 이어서 산줄기 조금 아래 쪽에 떨어져 있는 안주공(휘 繁 : 방어사공 諱 義萬의 父, 相錫의 10代祖)의 묘소로 내려가 고유제를 지냅니다.
相錫(筆者)만 남고 일행은 묘비건립을 지켜 보기 위해 다시 영상공 묘소로 이동하는 사이 안주공께서 안주판관을 제수받았으나, 부임치 않자 귀양지가 되었고 이로 인해 세거(世居)하게 된 충북 제천의 상환(相煥, 안주공 孫)형님과 형수님, 상운(相云, 상환의 아우),구응(九應,안주공 종손), 태복(相行, 在항, 이천거주)형님과 형수님이 도착합니다. 새벽부터 사초를 하고 있던 포크레인도 시동을 잠시 끄고 이 분들은 재배를 합니다.
다행히 포크레인 기사님은 필자와 코드가 같아(수염이 한 자--지관), 100여 평의 묘역을 사초하는 동안 이런저런 잔소리(잘 모시기 위해 요구사항이 많았음)를 다 들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참석한 안주공 孫들이 사초를 하루종일 함께 해 주어 작업이 마무리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묘소 가장자리에 석축들이 설치되어 있어 설립 당시의 묘역이 상당히 컸음을 알 수 있었고 때마침 묘역 주위는 벌목 공사를 하여 사초하기엔 안성마춤이었습니다. 원래의 묘소 크기대로 복원하다보니 얼마나 묘역이 커졌던지 지관(포크레인기사)께은 12평의 떼를 더 요구합니다. 당시의 문관석, 상석, 촛대석등의 석물들은 다른 선조님들보다 온전히 보전되어 있었고, 다만 주위의우거진 숲과 마사 흙의유실 원인으로 일부 봉분만이 흘러 내린 상태였기에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녁 일곱시가 되어야 사초 공사의 끝이 보일 것 같습니다.
그러는 사이 영상공, 비안공, 양덕공의 묘비건립을 지켜 보며 3개 지역 묘역을 분주히 오갑니다. 영상공 묘비는 1967년, 5자(5尺-흔히 대자비라함)비로 갓머리만 씌워져 세워져 있던 것을 이번에 품계에 맞춰 이수(흔히 용머리라 함)와 구대(龜臺, 흔히 거북좌대라 함)를 갖추어 세우고, 바로 아래의 비안공 묘비는 1627년, 충익공 諱 시양의 撰으로 세워져 있던 것인데, 그 후 충익공의 청백리 녹선으로 비안공께서 좌찬성으로 재추증된 것에 맞추어 이 또한 이수와 구대를 갖추고 양마석과 장명등을 비안공문중회의 기금으로 세웠습니다. 삼백 삼십여 년 만의 대사업이 진행 되는 과정에서 83세의 양덕공 종손께서 흐뭇해 하시는 표정을 봅니다. 모두가 같은 마음이리라 생각해 봅니다. 아마도 최초 건립 당시에 좌랑공, 양덕공, 충익공께서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시고 새로 묘비를 세우시지 않았던 것은 지금의 우리 후손들에게 숙제로 남겨 주신게 아닌가 하고 감히 생각해 봅니다.
점심 식사를 읍내에서 일가분들과 함께 들고 양덕공 묘소로 이동하여 고유제를 지냅니다. 그 사이 포크레인이 험한 길을 내며 묘소로 올라 옵니다. 양덕공 묘소 바로 위에는 능촌으로 천장을 하기 전 의성김씨 할머니가 모셔져 있던 곳입니다. 그 자리에서 성심으로 먼저 산신제를 올립니다.
양덕공의 묘비는 이번에 종손이신 태섭님께서 단독성금으로 건립하셨는데 양덕공께서 몰하신 지 삼백 육십 년이 지나서야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문관석과 망주석을 더하여 의물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같은 후손으로서 죄스런 맘 지울 수 없습니다. 애쓰신 종손께 감사의 말씀 송구스럽게 글로써나마 다시 한번 전합니다.
양덕공의 묘비에 제막을 치고 안주공 묘역의 사초 현장으로 모두가 달려 갑니다. 궁벽한 괴산의 개향산 언덕에 사양빛이 감돌 무렵, 안주공묘비가 세워지고 제막 천을 설치할 무렵에서야 사초도 병행하여 끝이나자 일행 모두는 내일 제막식을 기약하며 헤어집니다. 마치 조상님들의 슬하에서 잠시 빠져 나와 내일 또 찾아 뵈러 올 영리한 아이들처럼------------
영상공(휘錫),비안공(휘仁甲),양덕공(휘時說),안주공(휘繁)묘비 제막식 보고 2
일 시:2005년 4월 24일(일요일) 날씨 맑음 장 소:괴산 능촌리,수진리 양덕공 묘소 참석자: 약 70여명 *약호 : 구-구암공파(충갑), 참-참봉공파(우갑), 문-문숙공파(제갑), 비-비안공파(인갑), 통-통덕랑공파 *( )는 제학공파 내 소파명의 약칭과 추가 소개 내용임 상환(비),상운(비),상천(비),상기(통,병천종약소장),재만(비,거창),상석(비),두응(비안공종회장), 남응(구,병천, 학암문중회장),유응(구,병천),학응(구,능촌종약소장),천응(구,병천),만응(참),찬응(비,서울), 달응(참),준응(비,서울),좌응(비,서울),복응(참),택응(참,참봉공파 종손),옥회(비,대구),경회(비,거창), 성회(비,거창),발용(군사공파.안사연),태섭(비,양덕공 종손),태옥(구),태준(구,서울),태석(구),태정(참,청주), 태수(참,서울),태영(구,원주),창규(구,병천),규영(구,원주),규문(구,능촌),규동(비,청주),규성(비,청주), 규태(구,서울),규복(구,증평),영수(문),성수(문),철수(문),항용(비,비안공종회총무),효식(구,충무공 종손), 장용(구),태진(비-植항렬),정중(도평의공파),대식(구, 구암공종손),명식(구),용달(비,비안공종손), 명렬(구,광주-會항),
09:00시경, 행사를 알리는 여러 곳의 이정표를 확인하며 능촌리 마을회관 옆에 설치해 두었던 플랜카드 아래를 지나니 종친들께서 하나 둘 차를 몰아 영상공의 선영 하 충익공신도비 쪽으로 집결하고 있습니다. 간단하게 행사장 입구를 만들어 방명록과 펜을 올려놓고 행사 안내문과 묘비문, 기념타올을 나누어 드립니다. 행사전 항용 총무로부터 금일 전 행사일정의 소개와 제례 순서 및 주의사항이 발표됩니다. 선글라스를 제외한 시력상 사용하는 안경은 착용토록 했으며 제복은 헌관 및 집사들만 착용할 양을 준비했고, 휴대폰은 모두 끄거나 진동으로 할 것과 모든 제례 진행은 집사자 1인에 의해서만 진행되며, 제례 도중에는 절대로 제례절차와 관련한 이의제기를 금한다는 당부와, 만일 급한 이의 제기사항이 있을 경우는 집사자에게 귓속말로 전할 것 등도 당부합니다.
10:00시, 영상공의 묘소에서 묘비 제막을 한 후 고유제를 지냅니다. 초헌관:대식(구암공종손), 아헌관:택응(참봉공종손), 종헌관:영수(문숙공종손), 축관:항용(비안공총무) 좌집사:규문(구암공손) 집사:달응(참봉공손) 사준:규성(비안공손) 집례:남응(구암공손)
▲ 마을 회관 옆의 행사 현수막
▲개향산 아래 입구에 있는 충익공(하담, 김시양)의 신도비와 아래 행사장 안내판
▲제막 전의 영상공 비안공 묘소
▲행사장 입구의 접수대
▲영상공 어머니이신 의성김씨 묘
▲ 할머니 묘라 할미꽃이 많은지....
▲의성김씨 할머니 옆에서 병천에서 오신 일행이---
▲행사 전 준비 모습
▲항용 총무의 행사전 안내와 주의사항 전달로 행사는 시작되고--
▲영사공 묘비 제막(헌관 3분과 능촌중약소장)
▲제막 후의 모습
▲초헌관(영상공 종손-대식)의 강신과 헌작
▲항용 총무의 독축 장면
▲아헌관(참봉공 휘 우갑 종손, 택응)의 헌작 재배
▲헌관 3분(좌로부터 구암공 종손-대식, 참봉공 종손 택응, 문숙공-영수)
▲분축장면
▲항용 총무의 경과보고 발표
제를 모시고 나서 행사를 주관 한 비안공문중회의 회장님(두응)께서 인사말씀과 함께 항용 총무로부터 그간의 경과 보고에이어 능촌종회장님(학응)의 축사가 끝나고 비안공묘소로 이동합니다.
▲능촌종약소장인 학응소장의 인사말씀
11:00시에 비안공의 고유제를 봉행하기 전에 영상공 묘비 제막때와 같이 후손 모두가 사회자(항용)의 선창에 따라"하나!,두울!,세엣!,"합니다.구대와 이수를 제대로 갖춘 묘비가 나타나자 모두가 놀라는 표정들이십니다. 그리고 미리 진설된 상석 아래에 모여 고유제를 지냅니다. 초헌관:두응(비안공문중회장), 아헌관:용달(비안공종손), 종헌관:태섭(고문), 축관:항용 좌집사:성회 우집사:좌응 사준:규동 집례:남응
▲제막장면
▲제막 후의 모습
▲초헌관(비안공문중회장-두응)의 강신, 헌작, 재배
▲항용 총무의 독축
▲아헌관(비안공문중회 고문-태섭)의 헌작
▲집례(구암공파, 병천 학암문중회장-남응)의 <간략홀기>에 의한 독홀장면(중앙이 남응종친)
▲고유제 후의 영상공 비안공 묘역
▲먼 데서 오신 귀한 손님인 정중님(도평의공파)과 비안공문중회장의 인사
▲고유제 후 전 종친이 한 자리에서 기념촬영을---
고유제를 지낸 후 병천에서 구십 노구를 이끌고 참석하신 창규종친님의 축사에 이어 비안공문중회장님으로 부터 묘비문 국역과 더불어 찬(撰)을 해 주신 항용총무님과 비안공,양덕공,안주공등 3位 비문의 서자(書者)이신 벽초 태국님께 공로패 수여가 있었습니다.(태국님은 일산의 서예관련 행사로 불참하시어 차후 전달하기로 함)
12:00시가 조금 안 되어 비안공의 선영 하인 안주공 묘소에서도 제막에 이어 고유제를 지냅니다. 초헌관:상석(안주공손), 아헌관: 상환(안주공손), 종헌관:준응(충익공손,장성예편), 축관:항용 좌집사:찬응 우집사:태수(참봉공손) 사준:대식(구암공종손) 집례:남응
▲제막 장면
▲초헌관(상석-안주공 묘비 건립 및 사초 전 비용 성금자) 헌작
▲항용 종친의 독축 장면
▲아헌관(상환) 헌작 재배 장면
▲안주공 고유제를 마치고 전 종친의 기념촬영
▲행사 후 묘역 전경
▲고유제 후 초헌관 상석
사회자로부터 간략한 안주공의 소개에 이어 초헌관인 상석은 참석해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널찍한 묘역에 칠십여 명이 제를 올리려니 입추의 여지가 없습니다.그저 흐뭇하고 감개무량할 뿐입니다.
▲능촌리 제각의 참배
바로 아래의 구암공 제각에서 모두 참배하고 바로 옆 재실에 모입니다. 방안 가득하게 둘러 앉아 식사를 하면서 서로 인사를 나눕니다.식사가 끝나고 세덕사 위 양덕공묘소로 차량을 이용해 이동합니다.일요일에다 모내기,결혼식등의 행사가 겹치거나 원거리에서 오신 분들은 먼저 떠나십니다.
▲비안공 종손(용달)이 소장품인 <호적단자>와 좌랑공(휘 시훈)의 <준마계회도>를 소개하는 항용 종친
14:00시가 되어 양덕공의 묘비제막을 하고서 이어 고유제를 올립니다.
초헌관:태섭(종손), 아헌관:재만(양덕공손), 종헌관:규태(구, 원로), 축관:항용 좌집사:상석(양덕공손) 우집사:태수(참봉공손) 사준:규성(충익공손) 집례:상천(충익공손)
양덕공의 종손이시고 이번 행사를 주관한 비안공문중회의 전회장님이신 태섭고문님께서 인사말씀을 하시고 묘역에 둘러 앉아 음복주를 나누면서 그동안 행사를 진행하며 수고한 모든 종친들의 노고에 고마움을 표하고 멀리 대구에서 오신 정중(도), 행사 내내 강진시향에 불참하게 되어 아쉬워 하며 카메라를 들고 뛰어 주신 발용(군)님께 박수를 보냅니다. 안사연 멤버들의 종파를 초월한 모습에 어른들께서는 찬사를 보내 줍니다.
▲제막 장면
▲초헌관 헌작
▲독축장면
▲아헌관(재만) 헌작, 재배
▲종헌관(규태,구암공 후손, 서울) 헌작
▲고유제를 마치고 일동 기념촬영
▲행사를 마치고(좌로부터-항용,옥회,상석)
▲제막 고유제를 마친 묘역 전경
▲ <양덕공 묘소에서 바라 본 수진리- 좌측 앞에 기와집 세덕사가 보인다>
▲양덕공 묘소에 핀 할미꽃-양덕공 내외분의 혼백이려나-----
전 행사 일정이 끝나자 헤어지기 아쉬운 일가 분들이 세덕사에 다시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잔디빝위에서 작년에 비안공문중회에서 마련한 차일대 아래에 앉아 정담과 함께 내년에 세울 충익공(휘 시양)이하 3위의 묘비 건립을 위한 계획을 세웁니다. 한 일을 끝내며 또 다음 계획을 세워 나갑니다.
▲세덕사 입구의 대문
▲세덕사 잔디밭 위에서 다과회 정담은 끝이 없고---
▲세덕사 현판 (한석봉 서체 집자)
▲세덕사 내부
▲양덕공 13대 종부이시며 세덕사 재실(숭모재)를 지키시는 항용 종친의 모친
▲길 떠나는 일행에게 덕담을 주시는 태섭 고문님(양덕공 13대 종손, 비안공 문중회 고문)
▲세덕사 입구의 대문
저녁 6시가 넘어서야 일행은 서울로 올라옵니다. 차안에서는 정답고 열띤 대화가 끝없이 계속됩니다. 모두 만족한 행사를 마친 기쁨에 젖어 있습니다. 운전을 하며 곤지암 부근에 이르자 그제서야 참았던 비가 잠시 흩뿌립니다. 감사합니다!.하늘이 도와 주십니다.
서울 가까이에 이르니 벌써 강진 군사공파 시제에 갔던 일행이 서울 교대역 근처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함께 만나려 했으나 아무래도 우리가 늦습니다. 겨우 하남시에 도착해서야 강진 일행중의 한 분인 영윤대부님을 만나 서로의 오늘 행사를 마무리 합니다. 아--, 이렇게 가슴 부듯한 보람과 큰 기쁨을 주신 하늘이시여, 감사합니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