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에서의 낙흥부원군 관련 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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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식 작성일15-02-09 09:04 조회1,571회 댓글0건본문
점낙치 전설
점낙치는 장성읍 매화동 장성여중에서 충무동으로 넘어가는 장성여중 앞 고갯길을 말하는데 김자점(金自點)이 죽은 자리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이곳에 전해오는 말로는 자점이 역모로 몰리자 몸을 피하여 고향이자 처가인 장성에 은신하려다 관군에 발각되어 점락치에서 세길 낭떠러지로 떨어져 잡혔다고 한다.
그는 8시를 당하여 죽었는데 시신을 8도에 각각 효시토록 하였다.
전라도 운반책이 어느 산골에 이르러 갈림길을 만나 망설이고 있으니 뒤에서 "이놈아, 아랫길로 가거라 " 하는 소리가 들려 아랫길로 갔다.
조금 가다가 뒤에는 아무도 없었는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뒤를 돌아보니, 윗길 바위위에 큰 호랑이가 으르렁거리고 있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아, 이 양반 유명하다더니 토막난 시신도 사람을 살리네 ."라고 감탄하여 단광리 앞산 좋은 자리를 잡아 장사지냈다고 한다.
김자점의 생년은 정확히 전하지 않고 대략 1580년(선조13) 무렵으로 보며, 관향은 안동이며 혈통은 사육신을 고변하여 유명해진 김질(金瓆)의 5대손이다. 우리 장성에 생가터라고 전하는 곳이 장성읍 안평리 장동 116-1번지(비적골)와 서삼면 한실 등 두 곳이 있는데, 승주군 낙안면 못 등을 비롯한 전국 여러 곳에 출생 전설이 있다고 한다.
김자점은 1622년(광해14)인조반정 때 1등공신이 되어 동부승지를 거쳐 도원수가 되고 영의정까지 되었다. 자검이 동부승지로 있을 때 망암 변이 중의 큰 사위가 되는데 이와 관련하여 일화가 있다. 정혼한 뒤 큰 딸이 자점이 관상을 보고는 "얼굴은 잘 보셨는데, 뒤가 반공상이옵니다."하고 말하는 것이엇다.
그러나 걱정하는 아버지에게 딸은 "이미 정혼한 터이온데, 어찌하겠습니까? 소녀에게 비책이 있사오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는 것이었다.
자점이 훗날 역적으로 몰려 죽을 때 처가도 조사를 받았는데 암하필법(手製紙粉校, 병풍처럼 접은 종이 속에 가루로 글씨를 써서 읽은 후 천을 떠들면 지워지는 서찰)을 써 근거인멸로 화를 면하였다 한다.
장성읍 안평 2리에는 대마등이 있는데 이 곳은 자점이 도원수 영의정으로 있을 때, 고향에 내려오면 수많은 배알객들의 말을 메어 놓은 자리라 하며, 서삼면 태봉산에는 그가 친구들과 말을 달리며 무예를 길렀다는 말이 전해오고 있다. (장성군청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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