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곡이 제민 제안 형제가 연이어 진사시에 합격한 것을 축하한 시에 화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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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영 작성일15-03-20 17:04 조회1,454회 댓글0건본문
우곡이 제민 제안 형제가 연이어 진사시에 합격한 것을 축하한 시에 화답하다.
〔奉和愚谷賀齊閔齊顔連擧進士〕
문장가 효인에게 현손들이 있으니 / 文章孝印有玄孫
사람들은 장래 양 장원이 되리라 했네 / 人道將來兩壯元
너희 조상 음공의 효험이 아직 그치지 않았으니 / 乃祖陰功猶未已
우리 가문에 남겨진 경사야 오히려 어찌 말할까 / 我家餘慶尙何言
숭문관의 과거 날짜가 점차 다가오니 / 試期漸近崇文館
장차 강무문에서 조칙을 받는 모습 보리라 / 受勑行看講虎門
마을 사람들은 모여 보고서 찬미할 것이니 / 閭巷聚觀應歎美
꽃 꽂고 수레 덮개 날리며 나란히 달리는 형제의 수레여 / 揷花飛蓋雁聯軒
[주D-001]효인(孝印) : 고려의 장군 김방경(金方慶)의 부친인 김효인(金孝印, ?~1253)으로, 예서(隸書)를 잘 썼으며 문장(文章)과 사업(事業)으로 당대에 명성이 있었다. 벼슬이 병부상서 한림학사 지제고(兵部尙書翰林學士知制誥)에 이르렀다.
[주D-002]현손(玄孫)들 : 원래 현손은 증손자의 아들을 말하나 여기에서는 먼 자손이라는 뜻으로 쓰다. 김효인은 김구용(金九容)과 김제안(金齊顔) 형제의 5대조이다.
[주D-003]숭문관(崇文館) : 고려 때 학문이 뛰어난 문신(文臣), 학사(學士)를 두었던 관아(官衙)이다. 국초부터 성종(成宗) 14년(995)까지 있다가 홍문관(弘文館)으로 바뀌었고, 뒤에 충렬왕(忠烈王) 24년(1298)부터 29년(1303)까지 존속하였다가 우문관(右文館)과 집현전(集賢殿)에 폐합(廢合)되었다.
[주D-004]강무문(講武門)에서 …… 보리라 : 강무문이 원문에 ‘강호문(講虎門)’으로 되어 있는 것은 고려 혜종의 휘가 무(武)이므로 휘하여 호(虎)라고 한 것이다. 여기에서는 김구용, 김제안 두 형제가 문과 시험에 급제할 것이라는 말이다.
급암시집 제2권 / 율시(律詩)
ⓒ 한국고전번역원 ┃ 유호진 (역)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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