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p11.png 김 휘(金 徽)1607(선조40)∼1677(숙종3)--(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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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휴제공 및 연보 소개

2. 묘소 사진

3. 친필 서찰 및 시문 소개

4. 문인화 소개

5. 낙관 소개

6. 졸재집의 사휴제공 관련 자료 소개

7. 묘비 건립기

8. 묘비문 소개

9. 각종 문헌 내의 기록 종합

 

 

 

본문

p11.png 3. 친필 서찰 및 시문 소개

 1) 친필 서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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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필1> (<簡牘>2002. 2. 26. 발견. 규장각 소장. 항용(제) 제공)

 

 1) 발견일 : 2002. 1. 26     

 2) 발견자 : 金恒鏞 (제)  

 3) 소장처 : 규장각(서울대)   

 4) 해독 및 번역인 : 金益洙  

 5) 編輯, 潤文人 : 金恒鏞

 6) 한문 원문

天崩之慟品切痛炎 卽承情帖. 至沃何極. 弟親床危重數月在憂泣中. 幸而小蘇頃纔入城而旋卽鎖意. 日間又爲發冗尙未趨 候於大    監前兼與兄. 敍阻遠以別恨 先絶之問忽辱益切感恨. 餘容一遲伏惟. 行人然得附上狀.   己丑七月秋節 弟徽拜

 

 7) 번역문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에 품위가 떨어지고 아픔이 컸지만 정다운 소식 받았습니다. 귀하신 몸 얼마나 괴로웠습니까. 제(弟)는 어버이(어머님)의 병상이 몹시 위중하여 몇 달을 걱정으로 눈물을 흘리는 가운데 있었습니다. 다행히 조금 회복되었기에 요즈음 겨우 성에 들어왔으나 곧 돌아가야 한다니 답답한 마음입니다. 일간 또 출발해야 하는 데도 미처 아직 못 뵙고 있습니다. 대감님과 형께 문안드립니다. 격조하여 멀리 떨어져 있는 이별의 한을 풀어야 하는데 먼저 문안이 끊겨 홀연히 욕이 되고 더욱 한이 됩니다. 크게 늦어진 것을 널리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삼가 길가는 사람에게 부쳐 올립니다.   

      기축(1649. 공 43세) 7월. 가을절기에. 제(弟) 휘(徽) 올림

 

* 주1-하늘이 무너지는 아픔(天崩之慟-천붕지통) : 인조의 죽음(1649. 5.)에 대한 비통함.

* 주2-형 : 수신자이나 구체적으로 누구인지 미상임.

* 주3-1649년 7월은 효종이 즉위한 지 2개월 후. 공은 43세로 부수찬(副修撰)에 기용되어 이조 좌랑(吏曹佐郞) 등을 역임하던 때임.

 

  2) 친필 서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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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필 서찰2>                              

 

1) 발견일 : 2002. 1. 26.    

2) 발견자 : 金恒鏞     

3) 소장처 : 규장각(서울대)     

4) 해독 및 번역인 : 金益洙      

5) 편집·윤문인 : 金恒鏞

6) 한문 원문

 

意表伏承 情書親患 居況卽相慰佇十分 弟若若之餘百病來侯万者從臨中愁心 示事推盡倒治下 本面無荷南 卽荷同而緊到 幼死  有男四人 皆屬良役有文信文卷然後千得拾尋荷男之母名後假書監各仰 餘萬不登 伏惟 兄上謹拜  上謝狀  

丁酉七月二十二日      弟 싸인

 

7) 번역문

삼가 고마우신 편지를 받아 감사의 뜻을 표하나이다.

어버이께서 병중에 계신데, 이에 하물며 오래도록 기거하며 머물러 서로 위로해 주심에야.

제(弟)는 여러 가지 일들이 길게 늦어진 나머지 문안 오는 많은 사람들을 따라다니는 가운데 걱정스러운 마음이었습니다  

보여주신 일은 힘써 다해 보았습니다만 도리어 아래와 같이 다스렸습니다. 본 면(面)에는 하남(荷男)이란 자가 없습니다. 그리하여 곧 하남의 무리들을 서둘러 도착시켰는데, 어린것은 죽고 남자들 네 명이 있었는데 모두 양역(良役)에 속하여 문신(文信) 문권(文卷)에 들어 있었습니다. 그런 다음에 천득(千得)이란 하남(荷男)어미의 이름을 찾아 낸 뒤 가서(假書)를 살펴보았는데 각각믿을 만하여 나머지는 모두 기재하지 않았습니다.    삼가 형님께 근배하며 감사의 글월을 올리나이다.

          정유(丁酉. 효종8년. 1657) 7월 22일     제(弟)   싸인

 

* 주1-이 서찰은 1657년(효종 8. 공 51세) 공이 1653년 민정(閔鼎)과 함께 올린 상소사건의 소용돌이에 있다가 의주부윤으로 가 있을 때 작성한 것으로 보임.

* 주2-내용은 하남이란 자의 조사 요청에 대한 답신으로 보이나 수신자는 미상임.

 

 3) 친필 시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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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필 시>

 

<偶讀宋潛溪靜寶詩次韻>

1)발견일 : 2002. 1. 26.     

2)발견자 : 金恒鏞      

3)소장처 : 규장각(서울대)      

4)해독 및 번역인 : 金益洙      

5)편집,윤문인 : 金恒鏞

6)한문 원문 및 번역문

偶讀宋潛溪靜寶詩次韻--示雋及閔生庭棋二前(우연히 잠계(潛溪) 송정보(宋靜寶) 시의 운에 따라-- 준과 민정기 두 분께 보입니다.)

 

    林扉面山開     숲 속 사립문은 산을 마주하여 열려있고

    揷籬村溪隔     울타리 둘러 처진 마을은 계곡 사이에 있는데

    一室靜圍書     방안에서 고요히 책을 읽다가

    千巖閑杖屐     바위산에 한가히 막대 짚고 나서네.

 

    雨餘署氣淸     비 온 뒤 더웠던 기운은 시원해지고

    溪邊人事寂     시내 가엔 인적이 적막한데

    時時挾冊來     때때로 책을 끼고 이곳에 나오니

    汝背留行跡     그대들 머물렀던 행적만 있구려.

 

    幽庭草積翠     그윽한 정원엔 풀빛이 파릇파릇하고

    曲渚沙鋪明     굽이진 모래톱엔 맑은 모래 펼쳐져 있는데

    風驅酷暑去     바람은 무더위 몰아가 시원하고

    鳥呼殘夢驚     지저귀는 새 소리는 남은 꿈을 깨우네.

 

    靜居流何修     고요한 삶 얼마나 많이 흘렀는가

    年光倏遞更     세월은 잠깐 사이에 바뀌어 간다는데

    小壯勉究業     젊은이들은 열심히 공부하고 있으니

    庶以慰世情     모두가 이 세상을 정겹게 위로하네.

 

  庚戌 夏(1670년. 현종 11. 공 64세. 여름. 공께서 병조참판 시절)

 

  4) 친필 서찰 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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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곡보첩>(판서공의 서찰이 실려있는 서책 표지)

 

<판서공 친필>

 

 1) 발견 일시 : 2003. 7.     2) 발견자 : 김주회(안).      3) 발견장소 : 국립중앙도서관 고전문헌실

 4) 촬영 및 제공 : 항용(제)             5) 해독 및 번역 : 익수(보명 태익. 제학공파. 제주도 문화재 위원)

 6) 해독 및 번역

    가)서찰 3 (상기 사진 좌)

     (1)작성 일시 : 미상. 본문 내용의 상복으로 보아 부친(휘 시양) 몰년인 1643년(인조 21. 작자 37세 ) 또는 모친(경주이씨) 몰년인 1653(효종 4년. 작자 47세)으로 추정.

 

     (2)해독 원문

         再昨 蒙枉殮感 伏惟夜來起居 病未委謝罪 歎令之疏草 幸投不見 謹完上 不具式.              

         服人  徽

 

     (3)역문

그저께 염(殮)할 때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삼가 밤에 와 계시다가 병으로 쓰러지지는 않으셨는지 사죄를 드립니다. 영감의 상소문 초안(疏草)에 감탄하였습니다. 행여 (원고를) 보내도 보지 못했는데 삼가 완결되면 올리겠습니다. 예절을 갖추지 못합니다.   

상복을 입은   휘(徽)   

 

    나)서찰 4 (상기 사진 우)

     (1)작성 일시 : 미상, 본문의 내용으로 보아 작자가 이조판서 시절인 1675년(숙종 1. 작자 68세) 경으로 추정.

     (2)해독 원문

 嶺伯則首擬 而不得湖 則可望 而爲之 其得其失 莫非數也. 所謂天難감(食+감)者是也. 今而後 庶至失侶無倚之懷 而亦不得驕 至委則悼亡之心 一倍難堪也. 熢燧狀二度奉呈耳. 前伯書寫之役 宿憂令之辭 朝知去不遠 而守鎖不能就拜 尤切  

忠不備式. 卽之欠各式

 

     (3)역문

영도백(嶺道伯-경상도 관찰사)이면 먼저 논의를 해야 하고 호도안무사(湖道按撫使)이면 망(望:왕에게 추천하는 三望)에 더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을 얻느냐, 못 얻느냐하는 것은 헤아려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소위 하늘이 굶주리게 하기는 어렵다는 것은 옳다고 하겠습니다. 지금 이후로 거의 짝을 잃게되어 마음속에 의지할 데가 없습니다. 또한 교만할 수도 없고 쓰러지게라도 되면 죽음을 애도하는 마음은 갑절이나 감당하기가 어렵습니다. 봉수장(熢燧狀: 봉수책임자의 임명장)은 두 번을 드렸습니다. 전의 도백의 편지에 걱정을 했는데 아침에 떠나도 멀리 가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지만, 방비를 단단히 해야 하므로 나아가 인사를 하지 못하여 더욱 간절하고 섭섭합니다. 정성으로 예의를 갖추지 못하였습니다.  곧장 쓰다보니 각각 격식에 모자랍니다.

 

  5) 친필 서찰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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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견 일시 : 2003. 9. 18           * 발견자 : 金恒鏞(제).(金榮煥(문), 金勃鏞(군) 1차 발견 )      * 발견장소 : 아트서울 서화 전문 매장

  * 해독 및 번역 : 金益洙(보명-泰益. 제학공파. 제주도 문화재 위원)      * 윤문 및 편집 : 金恒鏞

  * 작성 일시 : 1653(효종 4. 필자 47세) 2. 11                 *매입소장자 : 金斗應 2003. 10. 1. 55만원 매입 소장

  * 수신자 : 미상(필자의 근친 어른(時亮-紳의 父, 또는 근친)께 올린 것으로 추정)

  * <서울 아트서울 전문 매장 소개 내용>   

   번호: kh-101.   성 명:사휴정 김휘(四休亭 金徽 1607-1677).    품 명:간찰(簡札).   년 도 : 癸巳 二月十一日 (1653년).

크 기: 62x23cm.      가 격: 550,000 원

 

 (1) 해독 원문

 

奉謝

歲改以後 音墨尙阻 居常 耿 始承問 書 而稍慰積 之懷 經後且有日 依舊是落落 卽惟殷春 隸履珍率  庸徵稅 戒末一是病  已極自  而承接紳音 則如經滄桑 世界此何厄會年 運是矣 惟承輔德 侄兒無警耳  示事 豈可忘諸懷 而然無好 道理 奈何 第俟之語 不認以例談也 何餘 然

    不備 謝式         癸巳二月十一日                    戒末 徽 頓

 

(2) 번역문

감사히 받았습니다. 해가 바뀐 후 편지를 아직까지 못하여 항상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비로소 문안편지 받고 쌓였던 생각에 다소 위로가 되었습니다. 지나고 난 후 또 며칠이 되니 예전대로 고독해졌습니다. 곧 풍성한 봄철인데 관청의 일 잘 보시고 징세하는 일에 바쁘시겠습니다.

계말(戒末)은 한번 병들고 나니 고단함이 이미 극에 달해 스스로 두렵습니다. 그리고 신(紳)의 소식을 접하고 보니 상전이 벽해가 된 듯 세상에 年運이 이처럼 무슨 액(厄)을 만났단 말입니까? 삼가 도와주신 덕을 입었으니 조카가 깨닫지 못하겠습니까

부탁하신 일은 어찌 그 생각을 잊었겠습니까. 그러나 좋은 도리가 없으니 어떻게 합니까

 다만 기다리시라는 말을 일러두는 말로 인정하지 마십시요. 언제까지나 그렇게 남겨 두겠습니까.

 갖추지 못합니다. 감사합니다.        癸巳년(1653. 효종 4. 필자 47세. 司諫 시절로 추정) 2월 11일

   계말(戒末) 휘 돈수

 

* 주 : 김 신(金 紳) 1592(만력 임진. 선조 25년)--1665(현종 6년)

자는 子肅 1616년 생원. 壽 74세. 묘는 괴산 문광면 전법 後麓이다. 祖는 세칭 5甲의 셋째인 友甲(참봉공)이며, 父는 장자인 판관공 휘 시량(時亮)으로 公은 판관공의 제 5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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