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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10. 17. 은회(익), 항용(제) 제공)
유형문화재 제33호. 관련 사이트 ://www.daegustory.com/dae-mun/mun-u/033.jpg 소재지:경북 달성군 가창면 대일리51 용계(龍溪) 서변(1605∼1656) 선생이 49세 때에 어전 희우시회에 나가 1등상을 받았다는 기록과 그 광경을 그린 한 폭의 그림으로 가로 63cm,세로 57.4cm의 크기이다. 이 그림의 내용은 1653년(孝宗 4)에 가뭄이 오래 계속됨에 따라 효종이 친히 기우제를 지내고, 이로 인하여 단비가 내려 13명의 홍문관 옥서신을 불러 희우시를 짓게 하여 하사품을 내리는 장면이다. 그 때 서변은 장원하여 말안장 1부, 호피 1령 , 호초 5근을 받았다고 한다 이 그림을 그린사람은 당시 이름난 화공이 아니면 홍문관 관리들 중에서 문인 화가로 잘알려진 김휘가 아닌가 학계에서는 추측하고 있다.
채색화로서 인물과 문방구 등을 섬세한 기교로 묘사하고 화풍은 격이 높아 조선 중기의 인물화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참고로 1652년(효종 3) 3월 17일 <조선왕조실록>의 사휴제공 휘 김휘 선조님에 관한 기록에 의하면, <가뭄끝에 비가 왔다. 임금이 희우(喜雨)라는 제목으로 입직중인 관원에게 오언, 칠언 율시를 짓게 하였다. 운자는 '豊, 民'이었다. 김 휘는 수찬으로서 수석을 차지하여 표피(豹皮)와 호초(胡椒:후추)를 상으로 받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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