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공파(칠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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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판서공 휘 선(判書公 諱 愃)

  2) 대제학공 휘 승용(大提學公 諱 承用)

  3) 상락군공 휘 후(上洛君公 諱 厚)

  4) 군사공 휘 칠양(郡事公 諱 七陽)

  5) 김 진(金 塡)

  6) 김 돈(金 墩)

  7) 김삼노(金三老)

  8) 김 곤(金 坤)

  9) 김석정(金石精)

10) 김윤정(金允精)

11) 김 지(金言止)

12) 김언정(金彦禎)

13) 김 진(金 珍)

14) 김계선(金繼先)

15) 김 양(金 壤)

16) 김정일(金鼎一)

17) 김 경(金 坰)

18) 김인량(金寅亮)

19) 김익량(金翼亮)

20) 김두남(金斗南)

21) 김 감(金 堪)

22) 김영수(金永綬)

23) 김광국(金光國)

24) 김회빈(金晦彬)

25) 김인호(金寅浩)

26) 김계로(府使公 金季老)

27) 김 질(忠順衛公 諱 石質)

 

본문

p02.png 1) 판서공 휘 선 (判書公 諱 愃)

 

  판서공(휘 선), 대제학공(휘 승용), 상락군공(휘 후), 군사공(휘 칠양) 묘소                 (2002. 10. 30. 2003. 4. 17. 발용(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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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로부터 판서공(휘 선), 대제학공(휘 승용), 평리공(휘 후), 군사공(휘 칠양)

 

 

                                                                    전법판서김공제단비 군부인순창설씨합향(典法判書金公祭壇碑 郡夫人淳昌薛氏合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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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서공 휘 선 단묘 및 단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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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서공 재실 - 영모재

 

 

 판서공 휘 선 단비명(判書公諱?壇碑銘)  - (譯文)  (2002. 9. 7. 발용(군) 제공)

 

공(公)의 휘(諱)는 선()이니 신라경순왕(新羅敬順王)의 후예(後裔)로서 태수공(太守公) 휘 이청(諱利請)이 관적(貫籍)을 안동(安東)으로 받았으니 즉(卽) 공의 오대조(五代祖)이시다.

 

고조(高祖)의 휘(諱)는 의화(義和)이니 예부시랑(禮部恃郞)이요 증조(曾祖)의 휘(諱)는 민성(敏成)이니 한림(翰林) 직사관(直史館)이며 조부(祖父)의 휘(諱) 효인(孝印)은 한림학사(翰林 學士) 병부상서(兵部尙書)이며 황고(皇考)의 휘(諱)는 방경(方慶)으로 고려(高麗) 충열왕시(忠烈王時)에 재차(再次)나 일본(日本)을 정벌(征伐)하고 상락군개국공(上洛郡開國公)에 봉(封)하였고 충열공(忠烈公)의 시호(諡號)를 받으셨으며 비(妣) 냉평국대부인(冷平國大夫人) 죽주박씨(竹州朴氏)는 문화성기거랑(門下省起居郞) 지제고(知制誥)) 휘익정(諱益旌)의 따님이라 성질이 조용하고 곧으시며 덕(德)이 있어 효행(孝行)으로 구고(舅姑)를 섬기고 예의(禮義)로서 친척(親戚)을 대접하였다.

 

공께서 충선왕(忠宣王)때 봉익대부(奉翊大夫) 밀직사사(密直司事) 전법판서(典法判書) 상장군(上將軍)을 지내셨으니 그 영화(榮華)로 어버이를 섬기고 도의(道義)로 임금을 섬기어서 풍성(?盛)한 공적(功績)과 위대(偉大)한 충성(忠誠)은 국사(國史)에 실려있다. 장남(長男) 자(資)는 도첨의사사(都僉議使司)로 후사(後嗣)가 없고 이남(二男) 승용(承用)은 보문각(寶文閣) 대제학(大提學)이며 시(諡)가 충숙(忠肅)이요 삼남(三男) 승택(承澤)은 정승(政丞)으로서 영창군(永昌君)에 봉(封)하고 시(諡)가 양간(良簡)이며 사남(四男) 승우(承祐)는 상서(尙書)이고 따님은 나주(羅州) 라윤(羅允)에게 출가(出嫁) 하였는데 관(官)이 동경유수(東京留守)였다. 충숙공(忠肅公)이 이남(二男)이 있었으니 장남 후(厚)는 상락군(上洛君)이요 다음에 구(玖)는감찰사(監察司) 장령(掌令)이며 양간공(良簡公)에 이남이 있었으니 장남의 묘(昴)는 평장사 (平章事) 상락군(上洛君)이며 다음에 사고(師古)는 안렴사(按廉使)이며 상서공(尙書公)의 일남(一男) 지연(之衍)은 좌윤(佐尹)이며 그 밑으로 유복지친(有服之親)이 차례로 벼슬에 올랐으나 가히 모두 기록(記錄)하지 못한다.

 

아! 냉평국 대부인 박씨(冷平國大夫人 朴氏)와 공(公)의 묘소(墓所)가 실전(失傳)된지 오래되여 향화(香火)를 받들지 못함이 몇백년(百年)인지 알 수가 없어 자손의 슬픈 한(恨)이 과연 어떠하였으리요 오직 냉평국대부인(冷平國大夫人)은 곧 五十年 전에 안동회곡동(安東檜谷洞)에 설단(設壇)을 하여 이를 행사(行祀)하고 비(碑)를 세웠는데 슬프게도 공은 아직 설단(設壇)을 마련하지 못하여 매년(每年) 서리가 내릴때면 슬프고 황공한마음 뿐이더니 부안(扶安)에 살고있는 후손(後孫) 봉묵(鳳?)이 선조(先祖)를 추모(追募)하는 마음이 독실(篤實)하여 각파종중(各派宗中)에 통고(通告)를 하고 정성을 다한 자금(資金)을 모아서 지난해 봄 청명때 강진(康津) 충숙공묘(忠肅公墓) 상위(上位)에 설단(設壇)을 하고 금년 가을에 마침 비(碑)를 세워 행사(行祀) 조상(祖上)을 숭존(崇尊)하는 지극한 정성과 근본(根本)에 보답(報答)하는 예도(禮道)가 지극하여 천리길을 멀다하고 와서 불초(不肖) 중회(重會)에게 비문(碑文)을 청하니 불초 선조(先祖)의 사업이라 감격(感激)을 이기지 못하여 외람함도 잊고 감히 이와같이 기록하노라.

    

    孔子誕降後 四十二週(西紀 一九六七年) 丁未 八月 下旬에

                                                          二十四世孫 重會 謹撰

                                                                    裔孫 正會 謹書

                                                                           總務 敬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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