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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겸(金好謙:1824~18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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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영 작성일13-12-13 13:16 조회3,19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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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겸(金好謙:1824~1890) 향년 67歲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익재(益哉), 호는 졸헌(拙軒)으로 목천(木川)에서 김난수(金蘭秀)의 아들로 태어났다. 고려말의 충신 김사렴(金士廉)의 후손이다.
1873년(高宗10) 예조(禮曹), 성균관(成均館)에서 식년(式年) 진사(進士) 3등으로 급제(及第)하여 여덟 지방(地方)의 수령(守令)을 지내고 통정대부 공조참의(工曹參議)에 올랐다. 거사비(去思碑)와 안동김씨 사적(事蹟), 일문사충(一門四忠)에 글이 전한다.  

1877년(고종 14년) 7월 1일(갑인) 군자감 봉사( 軍資監奉事)
1878년(고종 15년) 9월 21일(정묘) 직산현감(稷山縣監)
1880년(고종 17년) 11월 14일(무인) 보은군수(報恩郡守)
1882년(고종 19년) 10월 27일(경진) 원주판관(原州判官) - 거사비(去思碑)
1886년(고종 23년) 7월 18일(무신) 진산군수(珍山郡守) - 거사비(去思碑)
1888년(고종 25년) 1월 10일(계축) 선산부사(善山府使) - 불망비(不忘碑)
1890년(고종 27년) 6월 14일(임자) 황주목사(黃州牧使)
1890년(고종 27년) 9월 1일(무진) 통정대부 공조참의(工曹參議)에 가자 

 

부사 김후 호겸 영세불망비(府使 金侯 好謙 永世不忘碑)
선산도호부사(善山都護府使) 김호겸(金好謙 1824~1890)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으로,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동부리에 있다. 1889년 춘궁기에 굶주린 주민 5,000여 가구를 진휼하여 주민들이 선정비를 세웠다.
김호겸의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익재(益哉)이다. 1888년 1월 진산군수에서 선산도호부사(선산부사)로 이임하여 2년 6개월 동안 재직하고, 1890년 6월 15일 황해도 황주목사로 승진되어 이임하였다.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동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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