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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1. 3일 오랜만에 아침 늦잠을 자다가 8:30에야 일어났다. 며칠 전 발용님(군)께 약속을 드렸던 돈자 할아버지의 최종직을 확인하기 위한 조선왕조실록 번역본 CD를 정리하고 있었다. 09:20분, 발용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오늘이 밀직사사공(휘 七佑) 할아버지의 시제일이란다. 급히 연락을 받아 전한다는 다급한 목소리다. 느긋한 일요일의 아침 여유가 갑자기 5분대기조의 비상 훈련으로 바뀌었다. 전방 소대장으로 숙달된 움직임은 23년이 지났건만 아직 재빠르다. 09:45분 집을 나선다. 택시를 타고 상일역으로 나갔다. 10:05분 발용 님은 미리 기다리고 계셨다. 발용님 차를 타고 쏜살같이 포천군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 시행착오로 올림픽 도로를 되도는 부분 일주를 하 기도 했다. 그러나 마음은 이내 기쁘다. 새로운 분들을 만난다는 기쁨과 전령사처럼 달려가는 신선함에 나도 모를 힘이 솟는다. 그러나 예상했던 것과 같이 포천의 일동길은 우리를 쉽게 통과시켜주지 않았다. 열심히 달렸지만 11:40분쯤, 운악산 2Km 전방부터 심한 교통 체증에 꼼짝없이 갇히는 신세가 됐다. 밀직사공파 회장님(悳默)과 약속한 12:00시에 도착할 자신이 없는 우리는 전화를 걸어 현 위치를 알리고 약속한 시간 내 도착할 수 없음을 아뢰었다. 그런데 일동을 지나자 47번 도로는 갑자기 길이 뚫렸다. 6Km를 달리자 우측으로 비닐 하우스가 나타나고 <엄지 갈비> 음식점 가기 직전 <안변동산>이란 작은 푯말이 있는 곳에서 우회전하여 비닐 하우스집 사이로난 길을 따라 소로로 접어든다. 50m 쯤 들어가니 위령탑이 나타난다.
그 위령탑이 있는 언덕 직전에 좌측으로 꺾어지는 두 번 째 길로 들어가서 50m쯤 들어가니 차들이 여러 대 서 있다. 이곳이 포천군 일동면 사직2리 산 27번지이다. 1980년경 밀사공파에서 약 2만여 평의 산을 매입한 종산이라 한다. 여기 저기에 안동김씨의 묘소와 가묘들이 있었다. 뒷쪽 주산의 정기가 힘차게 내려 오고 좌우가 잘 가리워져 있었으며 전방의 안산들이 옹기종기 아름답게 벌여 있었다. 12:10분이었다. 차를 주차하고 잰걸음으로 뛰어 산으로 올라가니 벌써 제례가 시작되어 강신례가 진행되고 있었다. 약 12분 정도가 계셨 다. 간단한 인사를 올리고 유건 하나만 겨우 쓰고 시제에 참례했다. 음복례까지 경건하게 마치고 여러분들과 교례를 했다. 모두들 따뜻했 다. 예상 못했던 우리들의 출현에 충격과 놀라움의 눈빛이었다. 밀직사공 할아버지의 영단비문을 발용씨와 함께 낭독으로 읽어 내려갔다. 옆에서 젊은 듯한 어느 한 분이 글자 글자에 눈을 함께 맞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밀직사공파 종회장님(悳默)의 차자이신 재혁씨 (011-9075-9248, 02-414-6809)이시다.홈페이지에 올려있던 시제일자와는 다른 날에 시제가 올려지고 있음을 알았다. 매년 11월 첫째 일요일이 시제일이란다. 회장님이신 덕묵 종친님께서는 10여 년 전부터 회장직을 계속 수행하고 계셨다. 파종회가 구성된 것은 대종회가 형성되던 1970년 경이라고 한다.
회장님의 형님이신 종묵(悰默)종친께서는 시,서,화에 능한 분이시라 한다. 수염이 길게 자란 님의 얼굴은 80 여세의 나이이지만 예술혼이 배어 있는 것 같았다. 종회님의 아드님이신 재언(在焉,:서울시 구로구 개봉동 한마음 아파트 거주. 6471-7488, 011-301-7488)님으로부터 부친의 詩集과숙부(덕묵)의 자서전을 우송 받기로 약속했다. 남한에는 약 400여 명이 살고 있으며, 족보에는 약 1000여 명이 등재되어 있다고 한다. 북한 함경도 안변, 학포, 회양 지역에 약 300여 호 가 살고 있다고 한다. 전 단국대 교수요 법학박사인 김태륜종친께서 종사일에 큰 활동을 한 바 있다고 한다. 그리고 밀직사사공파의 종손 이요 현실적인 우리 안동김씨의 종손이신 분은 현재 북한의 함흥에 거주하고 있다고 하며 앞의 김태륜님이 그 종손의 가까운 일가분이시 라고 한다.행사를 마치고 산아래 길 옆 마을로 내려와 <진흥식당>에 다시 모였다. 점심을 먹으며 우리 홈페이지의 발생과 과정, 안사연의 구성과 연혁을 간단히 소개하고 발용씨께서 준비해 오신 우리 홈의 초기화면을 복사한 전단을 나누어 주며 열심히 우리 홈을 소개했다. 잔뜩 굳어 있던 주위 분들의 시선이 차츰 따스해져 오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의 마음을 조금씩 이해하신 여러분께서 동감과 함께 충격의 솔직한 감정 표현을 해 오신다. 그런데 어느 한 분도 아직 우리 홈을 들어와 보신 분은 없다고 한다.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는 기분이다. 재혁씨와 추후 상호 연락하기로 하고 작별했다. 서울 오는 길은 개선장군의 기쁨이다. 오는 도중 이동 막걸리 한 병도 샀다. 이 기쁨을 함께 할 분과 마실 곡차다. 오는 도중 은회(익)님께 전화했다. 양재동에서 일요일인 오늘도 활동중이시다. 5시에는 다시 일산으로 가셔야 한단다. 영윤(문)님께 전화했다. 방금 한 결혼식장에서 영환대부님과 만났다가 헤어졌단다, 4시 넘어 하남시에서 만나기로 잠정 약속했다.
4시 30분쯤 하남시 <털보횟집>에 도착하여 맛나고 싼 광어회를 앞에 놓고 가져온 막걸리 한 잔으로 목을 축이고 술 한 잔 한다. 좀 있으니 영윤씨 내외 분이 오셨다. 큰 아드님이 이번에 수능시험을 친단다. 사모님은 우선 먼저 들어가셨다. 좋은 결과를 기원했다. 이때 음식점 서쪽 창문이 서녘 일몰 풍경을 담은 한 폭의 멋들어진 그림으로 그려져 간다. 깜짝 놀란 나에게 발용님은 매일 보는 일출과 일몰의 정경이라며 속세의 우리에게 선경의 하남 삶을 소개한다. 무한정 길어질 것 같은 놀람에 서둘러 자리를 파하자고 제안했다. 월요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엔 검단산에 오르기로 했다. 우선 겨울 에는 강화도에 충렬공할아버지 유허비 하나 세우는 것 잊지 말고 말이다. 집에 오니 밤 9시이다.
아, 오늘은 보람있는 날이었다. 발용님과 영윤님께 감사드린다.
<밀직사사공 초혼묘 비석>
<밀직사사공 초혼묘> |
<밀직사사공 초혼묘 묘제 장면> |
<밀직사사공 초혼묘 묘제 장면> |
<밀직사사공 초혼묘 묘제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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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직사사공 초혼묘 묘제후 기념촬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