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p11.png 김 노(金 魯) 1498(연산군4)∼1548(명종3).--(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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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고공 소개

2. 주요 사진자료

3. 묘갈명

4. 이가서법 입수기

5. 필적 자료 종합

1) 심순문묘갈

2) 이함신도비

3) 김공예묘갈

4) 안윤덕신도비

5) 이양중묘갈

6) 이순언묘갈

7) 인종묘지

8) 김번묘갈

9) 송호지묘갈

     

6. 각종 문헌 자료

본문

p11.png 5. 동고공(휘 노) 필적 종합

4) 안윤덕(安潤德) 신도비  (2005. 1. 2. 발용(군) 제공)

소 재 지 : 경기도 광주군 중대동(德谷)

건립연대 : 1548年(명종 3)

    찬     : 정사룡(鄭士龍)

    서     : 김  노(金  魯)

    전     : 김  노(金  魯)

 

비규모(碑規模): 총고 271cm, 비고 158cm, 폭 85cm, 후 20cm

서자경(書字徑): 전자(篆字) 8.0cm, 음기(陰記)2.2cm

비재질(碑材質): 이수(螭首) :  대리석,  비신(碑身) :  대리석, 대석(臺石) 화강암

 

1548년에 건립된 이 비는 비좌이수(碑座螭首)의 형태를 갖추고 있으며, 이수 앞면에는 가운데의 여의주를 용 두 마리가 마주보며 농주하고 있고, 뒷면도 동일하며, 측면에는 용꼬리와 운문이 있다. 대석에는 복연(覆蓮)과 안상문(眼象紋)이 2단으로 장방형 판석 위에 세워져 있다.

 

비의 마멸이 진행되고 있어 일부 판독이 난해한 곳이 있으며, 묘소에는 정부인 금성나씨(錦城羅氏)와 쌍분. 상석·향로석·족석·혼유석·계체석·장명등·문인석·망주석이 있다. 그리고 1535년(중종 30)에 건립한 비좌하엽의 묘표가 있다.

 

안윤덕(1457~1535)은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광주(廣州).자는 선경(善卿).안동판관(安東判官) 팽로(彭老)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복천군(福川君) 권개(權愷)의 딸이다.

 

1483년(성종 14)에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부정자로 등용되었다. 1487년에 종부시주부, 1488년에 정언을 거쳐 지평이 되고, 이어서 병조좌랑이 되었다.

 

1495년(연산군 1)에 형조정랑이 되고, 1497년에 문과중시에 병과로 급제하여 사인·지제교 겸사관(知製敎兼史官)이 되었다. 1498년에 사간이 되고, 이어 상례(相禮)·직제학을 거쳐 1500년에 동부승지가 되었다. 이해에 도승지가 되었다가 경상도·경기도의 관찰사를 역임하였다. 형조참판을 거쳐 1503년에 예조참판이 되었으며, 그해 성절사(聖節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해에 일어난 갑자사화(甲子士禍)에 연루되어 김제에 유배되었다.

 

1506년(중종 1) 중종반정 후 형조참판에 등용되고, 이어서 병조참판을 거쳐 한성부좌윤이 되었다. 1510년에 삼포왜란(三浦倭亂)이 일어나자 지중추부사에 오르면서 경상도도순찰사 겸 부원수가 되어 왜란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웠다. 그 뒤 한성부윤·형조판서를 역임하고,1515년에 평안도관찰사로 나가서 단군(檀君)과 기자(箕子)의 사당을 수축하여 경조정신(敬祖精神)과 유풍(儒風)을 크게 떨치게 하였다. 한때 병으로 사직하였다가, 1519년에 공조판서로 복직, 세자책립을 위한 원접사(遠接使)가 되었다. 1526년 기로소에 들고 1527년에 좌참찬에 이르렀다.

 

시호는 익헌(翼憲)이다.

 

翼憲公神道碑명

 

有明朝鮮國 資憲大夫 戶曹判書 兼同知成均館事贈諡翼憲公安公神道碑銘幷序

資憲大夫刑曹判書兼知 經筵春秋館事弘文館提學鄭士龍 撰,

折 忠 將 軍 僉 知 中 樞 府 事 金 魯 書幷篆額.

 

익헌공신도비명

 

유명조선국자헌대부호조판서겸동지성균관사증시익헌공안공신도비명병서

자헌대부형조판서겸지경연춘추관사홍문관제학 정사룡은 글을 짓고,

절충장군첨지중추부사 김노가 전액과 글씨를 쓰다.

 

<출전 : 광주금석문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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