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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친필 서찰 1
<복사 자료>
<사진 자료>
<친필 서찰>(<槿墨>. 성균관대학교. 1981. 636P. 2002. 7. 19. 항용(제) 발견 제공) 가. 발견일 : 2002. 7. 19 나. 발견자 : 金恒鏞 다. 소장처 : <槿墨>(성균관대박물관. 1981. 636P. 성균관대 박물관 소장) 라. 원문 해독 및 번역인 : 金益洙(제) 마. 윤문 편집 : 항용(제) 바. 한문 해독 원문 頃承下札 未遇順便 不卽修謝 今罪恨 卽仍 季方兄憑審至寒 靜況萬安 欣慰欣慰. 弟 四朔馬上不死幸矣. 他不足000000多 十餘邑行色太忙 又不得奉敍勢奈也何. 玆留一書以謝前失 又候起居
餘伏惟兄照耳 謹謝狀上 戊至二十四日 服弟 龜萬 拜
사. 번역문 지난번 내려보내 주신 편지는 받았습니다만, 그곳으로 가는 인편을 만나지 못해 즉시 감사의 말씀을 올리지 못하고 지금에 이르니 죄스럽고 한스럽습니다. 즉시 이어 계방(季方)형이 찾아줄 것을 믿고 있다가 겨울에 이르렀습니다. 고요하고 하물며 모든 것이 편안하다 하니 크게 기쁘고 위안이 됩니다. 제(弟)는 넉 달 동안을 말 위에서 죽지 않은 게 다행입니다. 달리 000000을 말할 것이 못되며 000이 많았으며, 10여 읍(邑)의 행색은 너무나 바빠 또한 형편을 서술할 수가 없으니 어찌하면 좋습니까. 이에 한 통의 편지를 남겨 전의 잘못을 사과 드리며 아울러 안부를 올립니다. 나머지는 삼가 형께서 살펴주소서. 삼가 사과말씀 드리는 글월을 올립니다. 무(신)년(1668년) 동지 24일 복(服)을 입은 동생 구만(龜萬) 배
주1-戊0年(무0년)은 戊申年(1668년. 현종 9)으로 봄. 복을 입고 있다 하였는데 부친(감사공 휘 素)께서는 1666년(丙午年)에 몰하였므로 戊는 2년 뒤인 무신년(戊申年-1668년)으로 추정됨. 당시 공은 37세로 진사에 급제(1666년)하고 나서 강서현령에 제수되기 전 상태임. 주2-季方兄(계방형)은 남의 사내 동생을 존대하여 부르는 호칭인데 여기서는 수신자의 동생을 일컫고 있는 것 같으나 구체적으로 누구를 가리키는지 알 수 없음. 주3- 000 은 원문이 훼손된 부분임 주4-수신자는 공의 형쯤 되는 사람으로 보이나 정확한 수신자는 알 수 없음.
2) 친필 서찰 2
가. 발견일 및 입수과정 : 2002. 12. 23. 아트서울 경매 출품 내용 발견(발용(군) 정보 제공)-- 2002. 12. 24. 항용 매입(420,000원) 나. 경매 공고 내용
번 호 kkm-101 성 명 원서구만(元瑞 金龜萬 1632- 1699) 품 명 간찰(簡札) 년 도 1673 (癸元→癸丑? ) 크 기 36.5x32cm 가 격 420,000원 <판매예약
다. 원문 해독 및 번역인 : 김익수(제. 제주문화재 위원) . 라. 윤문 및 편집 : 항용(제)
(1) 원문 下察 謹謝賀狀 癸元禮上 龜萬 頓 新元祝賀 固當先奏於法奉之下 而聞遲里험兒之故 有意未果 此承先白至威且愧 生之今番所遭 非但其言相辱也 亦非焉 其人之可畏也 深報不足數之人 而問其職卽惡使也 所謂惡使者物言於隣邑門 吾不對面云 而畢竟迂路作行宿於絡原則其行果顧言矣 上官旣不欲對面則相下官何者敢我無所失而自安也 亦何敢謂無可畏而不動也 若使此身帶意職 而使彼兒輩千百作群而효효(시끄러울 효) 固不當動一毫矣 令則旣是外官且是下官 其之外更無他策 而聞金吾郞四散云此時守土之官不可容易離職 次是可復也 餘萬 00000 孫 晉士 下史
(2) 역문 살펴주소서. 축하의 글에 감사드립니다. 계년(癸年) 새해 아침에 예를 올립니다. 구만(龜萬) 돈수 새해 초하루를 축하함은 예법으로 아래에서 받들어 먼저 아뢰어야 마땅했습니다만, 마을의 불량배 때문에 늦어졌고, 뜻은 있어도 실행하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받고 보니 먼저 지극히 두렵고 또한 부끄러움을 아뢰나이다.
소생이 이번에 봉변을 당한 것은 다만 그 말에 욕을 당한 것만이 아니라, 또한 잘못에 그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깊이 보복하려고 하는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은, 그 직책을 물어보면 악사(惡使)들입니다. 소위 악사(惡使)라는 자들은 이웃 마을의 문간에서 물의를 일으켜 놓고도 내가 대면을 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끝내는 굽은 길에서 하던 짓들은 원칙에 묶여 그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의 행위는 결국 언행을 돌아보게 될 것입니다. 상관(上官)이 이미 대면하고 싶지 않다면, 서로 하관(下官)된 자가 어찌 감히 내가 잘못함이 없는 바에야 스스로 편안하겠으며, 또한 어찌 감히 두려워함이 없이 꿈적도 못하겠습니까. 만약 이 몸으로 하여금 관직에 뜻을 두게 하고, 저들 무리로 하여금 수백의 무리가 떼를 지어 시끄럽게 하더라도, 정말로 털끝만큼도 요동하지 않을 것입니다.
(임금의) 명령이 있으면, 나중에 외관(外官)이라도 좋고 또는 하관(下官)이라도 좋은데, 밖에 이른다 해도 다시 다른 대책은 없습니다. 그런데 듣건대, 금오랑(金吾郞. 주: 금부도사)이 사방에 흩어져 있다고 하는데, 이런 때에 국토를 지키는 관원이 쉽게 직책을 떠날 수는 없으니 차차 옳게 회복되겠지요. 나머지 모든...(이하 원문 파손 5자) 손(孫) 진사(晉士) 하사(下史)
주--계원(癸元) : '계(癸)'가 들어 가는 해의 정월을 의미함. 따라서 작성 연대는 연대는 게축(1673. 진사급제 후. 42세), 1683(계해. 正言, 掌令시절. 52세), 1693(계유. 부호군 시절. 63세) 등으로 추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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