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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연려실 기술에서 (2003. 11. 19. 윤만(문) 제공)
▣ 연려실기술 제23권 인조조 고사본말(仁祖朝故事本末) 계해년의 죄적(罪籍) ▣
반정하던 날(☞인조반정) 한찬남(韓纘男)ㆍ이위경(李偉卿)ㆍ정몽필(鄭夢弼)ㆍ백대연(白大衍) 등 4명이 먼저 체포되었다. 이귀가 명을 받아 종루(鐘樓) 동쪽 저자에서 목을 베니, 성중 사람이 쏟아져 나와 보았는데 환호하는 소리가 우레 같았으며, 심지어는 칼로 그 배를 갈라 창자를 내어 난도질하는 자도 있었다. 《연평일기》
정형(正刑 역적을 백관이 둘러서서 보는 가운데 거리에서 육시하는 형벌)된 사람들 《정사록(靖社錄)》《명륜록》 합록(合錄) 부원군 이이첨(李爾瞻)3월 15일 체포되어 19일 정형(正刑)하였다. ㆍ전 영의정 정인홍(鄭仁弘)3월 15일 옥당의 차자로 잡아 국문하여 4월 3일에 처형하였다.(후략)
복주(伏誅 국가에 죄가 있어 당연히 받을 죽음을 받는 것이다)된 사람들 우찬참 이현(李覮) 여러번 대사헌이 되어 폐론(廢論)에 극력 힘을 썼다.ㆍ이조 참판 유희발(柳希發)희분(希奮)의 아우·(중략) 영의정 박승종(朴承宗)자살하였다ㆍ부원군 유희분(柳希奮)방자하고 탐욕스러움이 박승종과 같았다ㆍ(중략)ㆍ김상궁(金尙宮)죄악이 가장 드러났으므로 능지 처참하였다ㆍ(후략) 위리안치(圍籬安置)된 사람들 68명ㆍ모두 기록하지 못한다.
(생략)
멀리 도망가 숨은 사람들 116명ㆍ모두 기록하지 못한다. (전략) 이조 참의 김치(金緻)역적 괴수의 심복으로 오래 이조에 있으면서 흉한 당파를 벌려놓았다. 대사간이 되어서는 팔을 걷어붙이고 대군 죽일 것과 정온(鄭蘊)을 공격할 것을 주장하였다ㆍ(후략)
중도부처(中道付處)된 사람들 80명 (생략) 관작을 삭탈당하고 내쫓긴 사람들 23명 (생략) 추후로 관작을 삭탈당한 사람들 14명
영의정 한효순(韓孝純)ㆍ우의정 민몽룡(閔夢龍)모든 벼슬아치들을 거느리고 앞장서서 방자하게 대비 폐론을 주장하여 죄악이 많았으나 이미 죽었으므로 죽은 시체에 형벌을 줄 수 없어 관작을 추후에 삭탈하였다.(후략)
관작(官爵)을 삭탈(削奪)당한 사람들 (생략) 사판(仕版)에서 삭제된 사람들 (생략) 파직(罷職)된 사람들 (생략) ☞ 공은 인정반정 후 한때 대북으로 몰려 유배되었으나 뒤에 풀려나와 동래부사를 거쳐 1625(인조 3) 경상도 관찰사가 되었다. 천문에도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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