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p11.png 김자점(金自點)1588(선조21)∼1651(효종2)--(익)

(목록 제목을 선택하시면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1. 낙서공 소개

 2. 출생 추정지 답사

 3. 교서 소개

4. 자점보 소개

 5. 귀양추정지

 6. 낙서공 구제 차자

 7. 낙서공 정치담론

8. 각종설화소개

 9. 연구문헌

10. 창덕궁 재건기록

11. 낙서공의 옥사

 

12.각종 문헌 기록 내용 종합

1) 연려실 기술

2) 대동기문

3) 비변사등록

4) 만사

 

본문

p11.png 10. 창덕궁 재건 총책임자로 참여한 낙서공

         (2003. 11. 11. 태서(익 제공)

출전 : 서울육백년사

서울특별시 종로구 와룡동에 위치   

창덕궁은 조선 왕조의 이궁으로 태종 때 창건됐다. 1405년에 이궁으로 지어졌으나, 임진왜란 때 경복궁이 소실되어 조선 말기에 복구될 때까지 약 300년간 본궁의 구실을 하였다.

 

궁역은 크게 3부분으로 나뉘는데 정전과 정문 등으로 이루어지는 외전, 정침 및 주변 전각들로 구성된 내전, 그리고 후원이 있다.

건물 배치는 정궁이었던 경복궁의 질서정연한 대칭적 구성과는 달리 지형조건에 맞추어 자유로운 구성을 하였다.

외전으로는 정문인 돈화문, 정전인 인정전과 그 주변의 인정문·숙장문·진선문, 편전인 선정전 등이 있고 내전으로는 정침인 대조전과 나중에 편전으로 쓰인 희정당, 그 밖에 징광루·집상전·보경당·옥화당비·소덕당 등이 있다.

 

현존 건물의 건립연대를 보면 가장 오래된 건물은 돈화문인데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과 함께 그 건축사적 가치가 높다.

인정문·인정전은 돈화문·선정전에 이어 비교적 오래된 건물이며 선정전은 조선 중기 건축양식을 잘 보여준다.

후원은 금원(禁苑) 또는 비원이라고 하였는데 조선시대 궁궐의 조경 수법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시된다. 이곳은 현재도 옛 모습을 거의 잃지 않고 있으며, 100여 종이 넘는 수종에 300년이 넘는 거목들이 있고 계류(溪流)·연못·정자들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옛 궁궐의 조원수법(造苑手法)을 보여준다.

 

창덕궁의 역사는 그 조성이 태종연간에 시작되어 1412년(태종 12)에 정문인 돈화문이 세워지면서 궁궐로서의 여러 시설을 갖추다게 되었다.

세조가 즉위하면서 궁내 각 전각들의 명칭을 고쳤는데, 이때 고쳐진 명칭이 대체로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성종이후에는 왕이 창덕궁에 머무르면서 정사를 보는 일이 많아졌으며, 특히 연산군은 재위 중 주로 이 궁에서 정사를 보았다.

임진왜란으로 경복궁·창경궁·창덕궁이 모조리 불에 탔으나 그 중 창덕궁이 가장 먼저 복구되어 1609년(광해군 1) 중건 되었고 창경궁도 곧 복구되었으나 정궁인 경복궁이 1867년(고종 4)에 비로소 중건 되었으므로, 창덕궁은 조선 후기 정궁 구실을 하게 되었다.

인조반정 때는 반정군의 실수로 불이 나서 많은 부분이 잿더미가 되었다가 25년 후인 1647년(인조 25) 옛모습대로 복구되었다.

효종·현종·영조가 이 궁에서 즉위식을 가졌고, 장헌세자가 뒤주에서 죽은 사건도 이곳에서 일어났다.

1833년(순조 33)과 1917년에 내전에서 큰 화재가 일어나 대조전을 비롯한 주변 전각을 모두 태웠으나 곧 복구되었다.

80년부터 그 동안 훼손되었던 궁내 시설을 정비하고 궁의 관람을 제한하여 보존에 힘쓰고 있다.

현재 창덕궁 안에는 많은 종류의 문화재가 있다.

돈화문·인정전은 국보로, 인정문·선정전·희정당·대조전·구선원전은 보물로, 수령 700년의 향나무 1그루와 수령 600년의 다래나무 1그루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창덕궁은 태종 5년인 1405년에 정궁인 경복궁의 이궁으로 지어진궁궐로 1459년 세조때에는 그 규모가 15만평에 이르렀다고 한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궁궐 대부분이 불에 타 소실되었다가 선조에 의해 복구가 시작되어 광해군때 완료되었으나 인조반정에 의해 또다시 소실되는 등 여러차례에 걸친 화재가 일어나기도 했다.

창덕궁은 광해군 이후 고종때까지 13대에 걸쳐 270년간이나 왕이 정사를 보았던 곳으로 정궁인 경복궁보다도 오랫동안 왕이 거처하던 궁이다. 한편, 창덕궁 후원은 한국 전통 조경의 특성이 잘 보존된 대표적 궁궐정원으로 현재 28동의 정자와 누각이 남아있다.

1997년 12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창덕궁은 이제는 국제적으로  보호되어야할 인류 공통의 문화재로 인정받고 있다.

 

<광해군과 인조 때의 창덕궁 중수>

인조 25년의 창덕궁 재건을 위하여 그 해 6월 15일에는 창덕궁수리도감이 설치되고 도제조(都提調)에 영의정 김자점(金自點), 제조(提調)에 해숭위(海嵩尉) 윤신지(尹新之)와 공조 · 병조 · 호조의 판서가 임명되었다

출전;서울육백년사

 

 

 

 

 

b00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