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p11.png 김자점(金自點)1588(선조21)∼1651(효종2)--(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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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낙서공 소개

 2. 출생 추정지 답사

 3. 교서 소개

4. 자점보 소개

 5. 귀양추정지

 6. 낙서공 구제 차자

 7. 낙서공 정치담론

8. 각종설화소개

 9. 연구문헌

10. 창덕궁 재건기록

11. 낙서공의 옥사

 

12.각종 문헌 기록 내용 종합

1) 연려실 기술

2) 대동기문

3) 비변사등록

4) 만사

 

본문

p11.png 3. 낙서공에게 내린 교서

          (2005. 3. 21. 태서(익) 제공)

택당선생집(澤堂先生集) 제7권. 교서(敎書)

정사공신의 봉작을 받는 어떤 사람에게 내린 교서[敎靖社功臣或人書]

 

왕은 이르노라. 내가 살펴보건대, 종국(宗國)이 전복될 위기에 처하면 척번(戚藩)이 그 기업(基業)을 안정시켜 주기도 하였고, 초매(草昧)에 국가 대사를 경륜(經綸)할 때에는 뛰어난 인재들이 있는 지혜를 모두 다 발휘하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풍운(風雲)이 감흥함에 혹 조축(釣築)의 유일(遺逸)을 거두어들이기도 하였으며, 대려(帶礪)의 맹약을 행할 때에는 모토(茅土)의 은수(恩數)를 넘치게 베풀어 주기도 하였던 것이다. 이에 옛 전고(典故)를 상고하여 수훈(殊勳)에 보답하는 바이다.

 

경은 기우(器宇)가 괴위(魁偉)하고 신정(神情) 또한 탁월하기만 한데, 충렬(忠烈)스러운 가문의 전통을 이어받아 명리(名利)에 대한 생각에 얽혀든 적이 있지 않았으며, 사자상승(師資相承)의 학업을 닦으면서 장옥(場屋 과거시험을 말함) 때문에 자신의 행적을 굽힌 적이 없었다. 그리하여 청하(靑霞)와 같은 삽상한 기운을 몸에 지니고 황석(黃石)의 심오한 도략(韜略)을 간직한 채 용칩확굴(龍蟄?屈)하는 상태로 있으면서 호명효조(狐鳴梟?)하는 날을 맞게 되었던 것이었다. 천상(天常 강상(綱常) 윤리(倫理))이 이미 끊어짐에 동양(董養)은 마루에 올라가 탄식을 발하였고, 왕실의 권세가 장차 옮겨지려 함에 원안(袁安)은 자리에 앉아 눈물을 흘리곤 하였다.

당세(當世)에 저명한 걸출한 인재가 아니고서는 난세(亂世)를 구제할 수가 없고, 자신의 한 몸을 잊어버리는 의리가 없으면 험난한 지경에 뛰어들 수가 없는 법이다. 경이 계책을 제시하면 내가 진정으로 믿고 따랐나니, 의연금으로 장비를 구입하고 병장기를 대대적으로 비축하는 한편, 속마음을 다 털어 내놓고 비밀리에 영걸들을 규합하였다.

 

경은 그야말로 두여회(杜如晦)처럼 물 흐르듯 결단을 잘 내리고, 진유자(陳孺子)처럼 남이 모르는 많은 기책(奇策)을 쏟아 내었다. 그리하여 원신(元臣 중신(重臣) 및 노신(老臣))과 숙장(宿將 역전의 장수)들이 모두 좌우에서 수고를 아끼지 않은 결과 교활하고 흉측하기 그지없는 무리들이 결박 당해 끌려오는 일을 피할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창끝으로 쌀을 일어 밥을 짓는 긴박한 상황에서 몇 번이나 위기에 봉착했던가. 그러나 산비탈 위에서 공을 굴리듯 더욱 더 완전한 승리를 기할 수가 있었다. 바람과 천둥도 어떻게 그 신속함을 따를 수 있었으리요. 천신(天神)과 인귀(人鬼)들도 그 깊은 계책을 엿볼 수가 없었다.

 

조궁(趙宮)의 한가한 틈을 타서 경감(耿?)의 의논을 독자적으로 개진하였고, 당(唐) 나라 후원(後苑)에서 별을 가리키며 즉각 유구(幽求)의 계책을 결행하였다. 그리하여 회조(會朝)의 청명함이 있게 하는 동시에 장추(長秋)를 다시 효성스럽게 봉양할 수 있도록 하였으니, 이는 그야말로 종묘사직의 경사로서 생민(生民)들과 함께 그 복을 나눠 가질 일이라 할 것이다.  따라서 불차(不次 차서(次序)를 무시하고 발탁하여 등용하는 것)의 특은(特恩)을 적용하여 비상(非常)한 공적에 보답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에 정사공신(靖社功臣) 1등(等) 운운(云云)에 책훈(策勳)하는 한편, 초상화를 그려 걸어두는 의례(儀禮)를 행하고, 공신의 비단 증서를 내려 주는 바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오대(烏臺 법관들을 가리킴)로부터 봉지(鳳池 학사(學士), 혹은 재상을 가리키는 말임)에 이르기까지 여론(輿論)이 흡족하게 여기게끔 되었는데, 위포(韋布)의 신분에서 금자(金紫)의 지위로 껑충 뛰어오른 것은 아직까지 있지 않았던 일이다.

옛날 태조(太祖)께서 개국(開國)하실 때 실로 그대의 선조가 좌명(佐命)을 하였는데, 중흥(中興)의 대업(大業)을 이룰 때 원보(元輔 재상을 말함)의 잉손(仍孫 8세손을 가리킴)으로부터 다시금 도움을 받게 될 줄 어찌 생각이나 했겠는가. 세 번째의 일등공신으로 상락(上洛)의 옛 봉호(封號)에 부합되게 하고, 뒤에 백금(伯禽)에게도 내렸던 것처럼 그대의 부자(父子) 모두에게 후작(侯爵)을 하사하는 바이다. 이는 국가와 함께 집안이 경사를 나누어 갖게 됨을 알게끔 하는 일인 동시에 반드시 공(公)과 후(侯)로 보답 받게 된다는 것을 징험케 하는 일인 것이다.

아, 수성(守成)하는 일은 창업(創業)보다도 어렵고, 존귀한 자리에 있는 일은 궁박한 처지에 있을 때와는 다른 법이다. 임금과 신하 모두 바른 도를 지켜 나가야 할 것이니, 어찌 감히 끝없이 돌보는 일을 망각할 수가 있겠는가. 자손 대대로 복록을 길이 보전하며 세상에 보기 드문 이 공업(功業)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교서를 내리는 바이니, 잘 알아 들었으리라 믿는다.

 

종국(宗國) : 동성(同姓)의 제후국(諸侯國)을 말한다.

척번(戚藩) : 근친(近親)의 번왕(藩王)들을 말한다.

초매(草昧) : 혼란 상태에서 일을 다시 시작하는 초창기를 말한다.

풍운(風雲)이 감응함 : 《주역(周易)》 건괘(乾卦)의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호랑이를 따른다.[雲從龍 風從虎]”에서 나온 말로, 뜻이 맞는 임금과 신하가 만나는 것을 말한다.

조축(釣築)의 유일(遺逸) : 반계(磻溪)에서 낚시질하다 주(周) 나라 문왕(文王)에게 발탁된 여상(呂尙)과 토목 공사장에서 일하다가 은(殷) 나라 고종(高宗)에게 중용된 부열(傅說)을 말한다.

대려(帶礪)의 맹약 : 공적이 있는 신하들에게 봉작(封爵)을 나누어 주면서 “황하수가 허리띠처럼 가늘어지고 태산이 숫돌처럼 닳아 없어질 때까지[使黃河如帶 泰山若礪] 복록을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을 말한다. 《史記 高祖功臣侯者年表》

모토(茅土)의 은수(恩數) : 옛날에 천자가 제후를 봉(封)할 때, 그 지방이 속한 방향의 색과 같은 흙을 흰 띠풀[白茅]에 싸서 내려 준 것을 말한다.

청하(靑霞)와 …… 기운 : 벼슬을 하지 않고 수도(修道) 생활을 하려는 고원(高遠)한 뜻을 말한다.

황석(黃石)의 …… 도략(韜略) : 신기할 정도로 뛰어난 병법(兵法)을 말한다. 황석(黃石)은 황석공(黃石公)이 장량(張良)에게 주었다는 병서(兵書) 《황석공삼략(黃石公三略)》을 가리킨다.

용칩확굴(龍蟄?屈) : 자취를 감춰 몸을 보존하며 때를 기다리는 것을 말한다.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 하(下)에 “자벌레가 몸을 굽히는 것은 장차 몸을 펴기 위함이요, 용과 뱀이 칩거하는 것은 몸을 보존하기 위함이다.[尺?之屈 以求信也 龍蛇之蟄 以存身也]”라고 하였다.

호명효조(狐鳴梟?) : 소인들이 득세하여 떠들어대는 것으로, 한유(韓愈)의 ‘영정행(永貞行)’에 나오는 말이다.

천상(天常)이 …… 발하였고 : 진(晉) 나라 태시(泰始 265~274) 초에 양후(楊后)가 폐위(廢位)되자 동양(董養)이 태학(太學)에서 노닐다가 그 마루에 올라가 탄식을 하고는 ‘무화론(無化論)’을 지어 이를 비난하였다. 《晉書 卷94》

왕실의 …… 하였다 : 후한(後漢)의 원안(袁安)이 천자는 유약(幼弱)하고 외척(外戚)이 권세를 독점하는 것을 보고는 조회(朝會) 때나 공경(公卿)들과 국가 대사를 의논할 때마다 눈물을 흘려 감동시켰던 고사가 있다. 《後漢書 卷75》

두여회(杜如晦) : 당 현종(唐玄宗) 때의 명재상으로 방현령(房玄齡)과 함께 정사를 총괄하였는데, 여회는 결단을 잘 내리고 현령은 계책을 잘 꾀했으므로, 양상(良相)을 칭할 때에는 반드시 방두(房杜)를 일컬었다고 한다. 《新唐書 卷96》

진유자(陳孺子) : 한 고조(漢高祖)의 지낭(智囊)으로 기책(奇策)을 내어 통일 사업을 도운 진평(陳平)을 말한다. 진평이 일찍이 고향에서 제사를 주관하며 고기를 공평하게 나누어 주자, 부로(父老)들이 “진유자가 일을 주관하며 멋지게 처리한다.[善陳孺子之爲宰]”고 칭찬한 말이 있다. 《史記 陳丞相世家》

조궁(趙宮)의 …… 개진하였고 : 광해군(光海君)을 몰아내고 새로 왕위에 오를 것을 건의하였다는 말이다. 경감(耿?)은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의 중흥 사업을 도와 동마(銅馬)ㆍ적미(赤眉) 등의 제적(諸賊)을 격파한 명장으로, 광무가 조(趙) 나라 수도 한단(邯鄲)의 궁궐에서 쉬고 있을 때, 경시(更始)의 실정(失政)을 논박하며 제위(帝位)에 오를 것을 건의하였다. 《後漢書 卷49》

당(唐) 나라 …… 결행하였다 : 군사작전을 곧장 행하여 인조반정을 성공시켰다는 말이다. 당 나라 예종(睿宗) 때 위서인(韋庶人)이 찬탈하려는 역모를 꾸미자 임치왕(臨淄王 뒤의 현종(玄宗)임)이 들어 와 복주(伏誅)시켰는데, 이때 유유구(劉幽求)가 밤하늘의 별들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는 이 시기를 놓칠 수 없다며 군사작전을 결행토록 한 고사가 있다. 《新唐書 卷121》 《舊唐書 卷97》

회조(會朝)의 청명함 : 아침이 되기 전에 천하를 다시 맑게 하였다는 말이다. 《시경(詩經)》 대아(大雅) 대명(大明)의 “肆伐大商 會朝淸明”이라는 말에서 연유한 것이다.

장추(長秋) : 한(漢) 나라 장락궁(長樂宮)의 전각 이름으로 태후(太后)가 거하였으므로 국모(國母)의 대명사로 쓰이게 되었다.

좌명(佐命) : 제왕이 새로 천명(天命)을 받아 창업(創業)을 할 때 보좌하여 이루는 것을 말한다.

상락(上洛)의 옛 봉호(封號) : 이 교서는 아마도 김자점(金自點)에게 내린 것으로 여겨지는 바, 그의 선조 가운데 태조 때에 개국 정사공신(開國定社功臣) 1등으로 상락부원군(上洛府院君)에 봉해진 김사형(金士衡)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뒤에 …… 바이다 : 아들에게도 함께 봉호(封號)를 내려 준다는 말이다. 백금(伯禽)은 주공(周公)의 아들 이름이다. 무왕(武王)이 천하 통일을 한 뒤 노공(魯公)에 봉해진 주공이 봉지(封地)에 가지 못하고 무왕 옆에서 정사를 돕자 다시 백금에게 노공을 봉하여 노 나라를 다스리게 하였다. 《史記 魯周公世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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