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p11.png 김영수(金永綬)1716(숙종42)~1786(정조0)--(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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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통제사공 및 연보 소개

  2. 묘소 소개

  3. 교지 소개

  4. 유물 소개

  5. 제주도와 통제사공

  6. 안사연의 제주 통제사공 유적 탐방대회

  7. 여수호좌수영수성창설사적비

  8. 흥해 구제기적비

  9. 제주성지

 10. 각종 시문

 11. 포항의 유적-MBC방영 자료

 12. 권무정 소개

 13. 제승당 친필 현판

 14. 흥해군수 자료집 소개

 15. 교서

 16. 각종 문헌 자료

 17. 묘소참배기

 18. 경상도유적답사기

 19. 각종 문헌 자료 종합

 20. 시제참예보고

  21. 통제사공파 종중 구성

 

본문

p11.png 17. 통제사공묘소참배기(統制使公墓所參拜記)

             (2007. 2. 15. 태영(군) 제공)

 

踏査日時: 2006年 10月 28日

踏査者 : 李正業

位 置: 京畿道 坡州市 廣灘面 防築里 山 37番地 <옛지명: 玉洞>

案 內: 金統制使 7代孫 金俊會(67세) 廣灘面 防築里 居住

 

김 통제사의 무덤을 찾으려고 수년간 노력했으나 헛수고만 계속 되었다. 2006년 7월 1일 김통제사의 후손 金泰榮씨와 극적으로 전화통화의 만남이 이루어 지면서 비로소 김 통제사 묘소의 소재를 확인하게 되었다.

 

10월 27일 필자는 자택을 출발, 서울 서군(婿君)의 집에서 1박을 하고, 10월 28일 아침 일찍 기상하여 김 통제사 무덤에 올릴 약간의 제물준비를 하고, 미리 연락이 되어있던 金 統制使의 7代孫 金俊會씨의 안내를 받기위하여 婿君을 운전시키며 파주시 광탄면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약속 장소인 광탄우체국 앞에 도착하였다. 휴대폰으로 김준회씨를 찾았더니 바로 앞에 자신의 차를 세워놓고 기다리고 있어서 매우 고마웠다. 가벼운 인사를 하고 난 다음 김 통제사의 무덤까지는 약 10여분 거리라며 자기 차를 따르라 했다. 국도를 따라 5분 여를 달리던 차는 좁은 들길로 접어드는가 했더니 자그만 마을이 나타난다. 방축리였다. 차에서 내리자 김준회씨가 가르치는 방향을 보니, 약간 언덕진 산자락에 김 통제사의 무덤이 위치해 있고 멀리서 보기에도 무덤 주위가 몹시 초라해 보였다. 김준회씨의 언급에 의하면 김 통제사는 불행하게도 後嗣가 없어 양자를 맞아 드렸으나 생활경제가 여의치 못해 매우 궁핍한 생활을 해 왔었고 어쩐 일인지 그의 직계 손들은 지금도 궁핍한 생활을 면치 못한다고 한다.

 

묘소에 도착해 본 즉, 이럴수가 ---? 경악을 금치 못했다. 먼저 예를 올리고 무덤을 둘러 본즉, 묘역은 50평은 좋게 되었다. 봉분(封墳)의 둘레는 꽤나 넓은데 높이는 60cm가 채 안되었고, 碑碣은 이끼가 잔뜩 끼어 가까이 접근을 해야 字句의 식별이 가능했다. 김 통제사 묘갈 관리가 원만치 못함을 한눈에 볼수 있었고 비갈 역시 그 시대 서민들이 흔히 선택하던 규모였다.

 

비문은 그가 조선의 삼도수군통제사였다는 근거만 새겼고 부인과 합장을 했다라는 내용이 모두였다. 비문을 보면,

 

[朝鮮國三統道統制使安東金公永綬之墓 貞夫人咸從魚氏祔左]라고 씌었으며 그외 글자라곤 한자도 없었고 贈職도 諡號도 내려지지 않았으며 床石은 몹시 훼손되어 있었다. 필자는 그의 큰 발자취의 종착인 그의 묘비를 찾게되면 지금까지 발견치 못한 또 다른 역사내용이 비갈에 새겨져 있을것이란 기대와 그 희망은 허망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수년동안 찾아 헤매던 김 통제사의 무덤이 이 지경이라니? 그는 일생동안 뜨거운 충정을 오로지 조국에 바치고 이 나라의 번영과 영광을 기원하며 앞서갔으나 후손들은 선조의 예우를 온전하게 못하는 나약한 우리의 자화상을 보는 듯 했다. 그 뜨거웠던 충정의 영혼을 이같이 저버리고 마는 오늘의 이 나라가 국민에게 어찌 충성을 요구할수 있겠는가? 나 역시 국민의 한사람으로 죄책감의 가슴을 짚어 보지만 김 통제사의 큰공에 대하여 어떤 역할도 못하는 안타까움에 미약한 스스로를 돌아보고 있다.

 

金永綬三道水軍統制使!! 그 영전에 명복을 빌 뿐이다.

 

묘비 답사를 마치고 돌아서는 필자의 심정은 몹시도 울적했다. 흥해에 그가 남긴 공덕은 우리지역에서는 커다란 감동과 귀감으로 삼아 淸德祠 祠堂을 건립 그의 영정과 위패를 모시고 영원 불멸토록 그를 찬미하는 향사를 200星霜 동안 거르지 않고 드려 오고 있다.

 

필자는 그의 위대성은 어떠한 것이기에 우리 흥해 인들은 그를 기리는 향사를 그같이 알뜰히 모셔오는지, 의문을 풀기 위해 그가 걸어간 먼 길을 8년 동안 찾아 나섰던 결과, 과연 그는 조선의 큰 기둥이었고 유독 백성을 사랑하는 그의 자비스러움은 국왕으로부터 깊은 신임이 있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길고 긴 시간 끝에 그토록 찾아 헤메던 김통제사의 묘비를 발견하여 박주(薄酒) 한잔을 올리고 예를 드림으로서 그를 찾아 헤매던 길고 긴 8년 여정(旅程)도 끝을 낼 수 있어 다행이라 믿는다. 김 통제사가 본 지역과 기타 지역에서 남긴 역사 자료를 1998년도 부터 추적 취합해오던 모든 일을 오늘로서 끝내고 지금까지 김 통제사를 주인공으로 하여 취합된 제반 자료로서 졸책(拙冊) 발간 준비에 착수할 것이다.

 

2006년 10월 30일 필자

 

이정업(李正業) 1937年生  本貫 羽溪

강원도 동해출생

현 경북 포항 흥해읍 거주

포항문화원을 거쳐 현 흥해향교 총무부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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