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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5. 12. 윤식(문) 제공) 일시 : 2007년 5월 6일(일요일) 10:30~13:00 장소 :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방축리 경모재 참석 : (무순, 경칭 생략) 군사공파 광탄문중 후손 약 15명 안사연(재구, 발용, 태영, 항용, 영식, 윤식)
이번 시제에는 2007년 2월 ‘통제사공(휘 영수)의 경상지역 유적 답사’에 이은 행사로 참예하게 되었습니다. 잘못된 내용은 바로잡아 주시기 바라며, 후속작업을 위해 경어체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혜량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랫동안 통제사공(휘 永綬)의 유적지를 답사하면서 각종 자료를 집대성해 오고 있는 태영 종친이 전화를 주셨다. 이번 일요일이 통제사공과 형님이신 생원공(휘 永紹) 이하 4위 시제일이라고 한다. 쉬는 날이라 행사가 여럿이다. 5월 6일 09:00시 정각, 서울 잠실운동장에 발용, 태영, 항용, 영식 종친이 모여 태영 종친 차량편으로 파주시 광탄으로 출발했다. 한가한 일요일 이른 아침, 질러가기 위해 산길을 타고 넘었더니 약속시간보다 50분 정도 일찍 도착했다. 통제사공 묘소로 올라가 절을 올리고, 골목길을 기웃거리며 동네 구경을 했다. 묘소 바로 앞에 있는 집에 ‘會’자가 붙은 문패가 걸려 있다. 군사공파 광탄문중 세거지라 일가분들 자택이 여러 집 되는 듯했다.
09:25분 서울에서 출발한 일행이 도착하고, 발용 종친은 곧바로 사진촬영 준비를 한다. 문산에서 출발한 재구(군사공파 칠정문중 사무국장) 종친도 마을 입구에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곧이어 준회 군사공파 총무이사를 비롯해 수인 군사공파 회장 등 생원공과 통제사공 후손들이 속속 도착한다. 인사를 나누다 보니 가장 먼저 도착해 마을회관 인근에서 서성이던 분이 통제사공 종손인 성회 종친이었다. 준회 총무의 안내로 우리 일행은 묘소 뒤쪽에 있는 경모재(敬慕齋)로 향했다. 참예자가 근 20여 명이었다.
▲ 경모재 현판
생원공과 통제사공 계대와 헌관은 다음과 같다. ■ 군사공(휘 七陽) → 2子 직제학공(휘 塡) → 子 토산현감공(휘 三老) → 2子 주부공(휘 堣) → 1子 처사공(휘 允剛) → 1子 효력부위공(効力副尉公 휘 夏詳) → 子 중추부사공(휘 壤) → 1子 사헌부 지평공(휘 鼎一) → 1子 청풍군수공(휘 坰) → 풍덕도호부사겸 장단진동관병마첨절제사공(휘 寅亮) → 2子 절충장군첨지중추부사공(휘 址) → 1子 사간원헌납겸 춘추관기주관공(휘 斗南) → 1子 직장공(휘 弘錫) → 1子 학생공(휘 永緝), 2子 성균생원공(휘 弘紹), 3子 삼도수군통제사겸 경상우도수군절도사공(휘 永綬)
■ 성균생원공(휘 弘紹) → 子 구성도호부사겸 구성진병마첨절제사공(휘 樂海) → 子 중화도호부사겸 중화진병마첨절제사공(휘 喆勳) → 학생공(휘 在仁)
<헌관> ■ 생원공(휘 永紹) 이하 4위(位) ▲ 생원공(휘 永紹), 배위 의인 파평윤씨, 의인 전주이씨 ▲ 구성도호부사겸 구성진병마첨절제사공(휘 樂海), 배위 숙부인 음성박씨 ▲ 중화도호부사겸 중화진병마첨절제사공(휘 喆勳), 배위 숙부인 전주최씨 ▲ 학생공(휘 在仁), 배위 유인 한양조씨 초헌 : 수인(군사공파 회장) 아헌 : 수근 종헌 : 수학 집례 및 독축 : 찬회 집사 : 준회, 승남
■ 통제사공(휘 永綬), 배위 정부인 함종어씨, 정부인 간성최씨 초헌 : 성회 아헌 : 돈식(在항) 종헌 : 만회 집례 및 독축 : 찬회 집사 : 준회, 수근
▲ 초헌관 수인(군사공파 회장)
▲ 아헌 수근(泰 항)
▲ 종헌 수학(泰 항)
▲ 통제사공 초헌 성회(종손)
▲ 아헌 돈식
▲ 종헌 만회
통제사공 종손인 성회 종친은 그 동안 생업으로 인해 근 20년 만에 통제사공 묘소를 참배했다며 감회에 젖는다. 통제사공 묘소 바로 앞집에 거주하는 찬회 종친은 “극장 구경하고 차가 끊어져서 둘이 검정리 고개를 걸어 넘어왔잖아. 기억 나?” 하며 성회 종친 손을 꼭 잡는다. 젊은 시절을 돌아보며 웃고 있는 두 분 종친의 눈에 슬몃 이슬이 비친다. 성회 종친은 향후 통제사공 지속적인 시제 참예를 위해 아우(강회), 재종아우(만회), 아들(봉수)과 함께 참석하게 되었다고 한다.
통제사공 묘소는 현재 정비가 필요한 실정이다. 그 동안 후손들이 고향을 떠나 살고, 종손 역시 생업으로 인해 통제사공 현양사업에 치중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통제사공은 산줄기를 타고 내리다가 평야가 시작되는 지점에 나지막하지만 우뚝 솟은 묏봉우리에 모셔져 있다. 봉분이 내려앉은 상태에서도 상당히 크다. 묘비와 상석 각 1기와 망주석 1쌍이 있을 뿐, 그 외 석물은 없다. 묘비와 상석은 6.25동란 당시 총탄으로 인해 군데군데 파여 나갔다. 특히 상석은 훼손이 심해 시급히 정비해야 하는 상태이다. 봉분이 있는 상계와 제절 사이에도 계체석(階砌石)이 일자(一字)로 조성되었던 것 같은데, 정면을 바라보고 오른쪽 계체석은 모두 없어졌다.
시제 후 점심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광탄문중 종친들은 태영 종친에게서 통제사공에 관한 이야기를 경청하였다. 이 자리에서 태영 종친은 2005년 안사연의 제주지역 통제사공 유적지 답사, 2007년 포항.통영지역 통제사공 유적지 답사에 대한 진행과정, 답사 개요와 의의, 새로운 현양자료 수집 결과와 이정업 선생 등 흥해지역 유림의 노력 등을 설명하였다. 아울러 향후 통제사공의 일대기와 업적을 정리한 책자를 발간하기 위해 군사공파와 광탄문중의 지원을 당부하였다. 이에 대해 수인 회장 등 광탄문중에서는 일단 후손들과 광탄문중 차원에서 원칙을 수립해 지원을 모색하는 등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 다음, 그래도 힘이 부족할 경우에는 파종회 차원의 지원 요청을 검토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이에 따라 태영 종친은 편찬위원회 구성안 등 세부 안을 수립해 광탄문중 어르신들께 말씀드리기로 하고, 광탄문중에서는 이 안(案)을 검토해 향후 통제사공 현양사업을 추진하기로 뜻을 모았다.
▲ 통제사공의 자료집을 살펴보는 일가 분들...
▲ 경과보고
▲ 수인 군사공파 회장(가운데)
점심식사 후 광탄문중 종친들께서는 귀가하시고, 안사연 일행은 재구 종친의 안내로 칠정문중 중묵 회장을 방문하였다. 또 다른 일정이 있어 중묵 회장 방문에 참석하지 못해 죄송스럽다.
사진 발용/글 윤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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