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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시비 소개
<허난설헌 시비>
<詩碑 내용 소개> (2002. 4. 10. 영환(문) 제공)
1) 전면의 시 <아들딸 여의고서 > 지난해 귀여운 딸애 여의고 올해는 사랑스런 아들 잃다니 서러워라 서러워라 광릉땅이여 두 무덤 나란히 앞에 있구나 사시나무 가지엔 쓸쓸한 바람 도깨비불 무덤에 어리비치네 소지올려 너희들 넋을 부르며 무덤에 냉수를 부어놓으니 알고 말고 너희 넋이야 밤마다 서로서로 얼려놀테지 아무리 아해를 가졌다한들 이 또한 잘자라길 바라겠는가 부질없이 황대사 읊조리면서 애끊는 피눈물에 목이 메인다
許米子 번역하고 鄭良婉 쓰다 1985年 11月 24日
2) 뒷면의 시 꿈에 광상산에 오르다 푸른 바다가 요지에 잠겨들고 파란 난새는 아롱진 난새에 어울렸어요. 스물이라 일곱송이 부용꽃은 붉은 빛 다 가신 채 서리 찬 달 아래에...
辛鎬烈 譯 金東旭 書
* <용인의 양천허씨 묘역과 허난설헌(許蘭雪軒) 시비(詩碑) (2005. 5. 14. 발용(군) 제공) 경기도 용인읍 원삼면 검지산의 양천허씨(陽川許氏) 묘역은 초당(草堂) 허엽(許曄, 1517~1580)과 아들인 허성(許筬, 1548~1612)ㆍ허봉(許篈, 1551~1588)의 묘가 있고, 최초의 한글소설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許筠, 1569~1618)의 묘와 여류시인으로 당대를 풍미했던 허난설헌(許蘭雪軒)의 시비가 있다.
▲ 양천허씨 묘역
▲ 허엽 묘표 탁본
▲ 허엽 신도비
▲ 교산 허균의 묘
허 난설헌(許蘭雪軒)의 시비(詩碑)
양천 허씨 묘역의 신도비 뒷쪽에는 화강암으로 된 비가 서 있는데, 이것이 바로 여류 시인 허난설헌의 시비(詩碑)이다. 앞면에는 ‘蘭雪軒許楚姬詩碑’라고 쓰여 있고, 그 좌측 위쪽에는 친필을 네모지게 테두리를 두르고 음각하였는데, 글씨가 아담하고 여성스러우면서도 획의 뻗침과 붓의 놀림이 시원하고 조화로와 많은 사람들이 탁본을 하여 집에 걸어 놓는다 한다. 그 내용은 ‘한견고인서(閒見古人書)’, 곧 ‘한가하면 옛 사람의 책을 보라’는 뜻으로 난설헌이 얼마나 책을 좋아하고 여러 사람의 문장을 섭렵하였는지를 여실히 들어내는 글귀이다. 시비(詩碑) 뒷면에는 생전에 지은 시를 1969년 시를 추모하는 문인들에 의하여 각(刻)을 하여 놓았다.
▲ 허난설헌 시비 전면
▲ 허난설헌 시비 후면
하늘 하늘 창가의 난초잎들은 (盈盈窓下蘭) 어쩌면 저렇게도 향기가 나는가 (枝葉何芬芳) 서풍 한 번 잎새에 스치고 나면 (西風一披拂) 그만 찬서리에 시들어지는데 (零落悲秋霜) 뛰어난 그 모습은 초췌해져도 (秀色縱凋悴) 맑은 향기는 더욱 짙구나 (淸香終不死) 이 모든 것은 내 마음을 슬프게 해 (感物傷我心) 자꾸만 옷깃에 눈물 적시네 (涕淚沾衣袂)
이 시는 난설헌이 지은 ‘감우(感優)’라는 연시(聯詩)의 첫째 연인데, 창가의 난을 보고 자기 신세를 한탄한 노래로, 시상(詩想)과 문장력이 뛰어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싯귀에서 느끼는 바와 같이 그녀는 27세에 요절할 운명을 타고난 듯 슬픔이 가득하다.
<일부 내용은 『고제희의 묘지기행』에서 인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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