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p11.png 김성립(金誠立)1562(명종17)∼1592(선조25)--(서). 허난설헌

(목록 제목을 선택하시면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1. 서당공 소개

2. 주요 사진 자료 소개

3. 각종 문헌 내의 기록 내용

 

4. 배위-허난설헌 소개

 1) 허난설헌

 2) 생애

 3) 친정 가계

 4) 일간지 기고내용

 5) 서울 거주지 자료

 6) 영정

 7) 친필 서화

 8) 묘소

 9) 시비소개

10) 생가 탐방

11) 규원가 소개

12) 신간도서소개

13) 오페라 소개

14) 일화(서당공과 난설헌) 소개

15) 허난설헌집 위작설 모음

16) 허난설헌작품 모음집

17) 허난설헌집 종합 소개

18) 연극 공연 관람기(안사연)

19) 고문헌(백옥루산량문) 경매 입수기

20) 허난설헌 창작소설 소개

21) 각종 문헌 내의 기록 내용

22) 허난설헌의 삶을 통한 여성들의 삶

 

본문

p11.png 4. 허난설헌 소개

10) 허난설헌 생가 탐방

(1) 1차 탐방기 (2002. 5. 23. 항용(제) 현지 탐방 촬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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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                                                             <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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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                                                     <안채 앞 화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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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채>                                                            <안채 뒤 화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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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을 대문>                                                    <대문 앞 적송 숲>

 

*<허난설헌 생가>관련 문화재청 해설 자료 소개 (2002. 4. 10. 주회(안) 제공)

 

종 목 : 문화재자료 59호      명 칭 : 강릉이광노가옥 (江陵李光魯家屋)   분 류 : 고가   수 량 : 1동    지정일 : 1985.01.17    소재지 : 강원 강릉시 초당동 475-3 .  소유자 : 이광노   관리자 : 이광노

조선 선조 때 문신인 허엽(1517∼1580)이 살던 집으로 지은 시기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이곳은 허엽의 딸이며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시인이었던 허난설헌(1563∼1589)이 태어난 곳으로 전한다.

 

행랑채의 솟을대문을 지나 사랑마당을 거치면 ㅁ자형의 본채가 있다. 본채는 사랑채와 안채로 구분하고 그 사이에는 광을 배치하였다. 안채는 앞면 5칸·옆면 2칸 규모의 건물로 부엌과 방, 마루로 되어 있는데 건물 앞·뒤로도 칸을 구분한 겹집 형태이다.

 

사랑채와 안채 사이에는 솟을대문과 협문을 두고 공간을 구획하여 독립성을 확보하였다. 후원과 사랑마당은 한국 전통의 정원 형태를 엿볼 수 있는 곳으로 갖가지 화초와 나무들로 잘 정돈되어 있다.

 

문화재명 강릉이광노가옥(江陵李光魯家屋)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여류 시인 허난설헌(1563-1589)이 태어난 곳으로 전해지며, 건립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맞배지붕의 솟을 대문을 중심으로, 우측에는 3칸의 광이 있고, 좌측으로는 행랑방과 마구간이 있는 대문간채를 지나면 잘 다듬어진 정원과 함께 사랑채가 나타난다. 팔작기와지붕으로 전면에 툇마루가 있고, 대청 2칸을 우측에 두고 있다.

사랑채의 좌측 끝은 상 노인방으로 안채 출입문간에서도 출입이 가능하게 하였고, 협문과 공간을 구분하는 담을 전면에 가지고 있다.

사랑 대청은 창호로 둘러싸여 있으며 천장은 연등천정으로 하고 상부의 판대공과 대들보는 툇간만큼 전면으로 돌출되면서 노출 되어 있어 구조적인 미를 풍기고 있다.

 

안채는 팔작기와지붕으로 정면 5칸, 측면 2칸의 겹집으로 되어 있다. 부엌, 방 마루로 되어 있으며 부엌의 출입구는 사각으로 연결되어 미닫이문을 내고 있으나 근래에 수리를 한 듯하다.

안채 방은 두짝 세살문과 용자창호의 이중문으로 구성되고, 마루는 네짝 분합문으로 짜여 있다. 집 주위에 담이 둘러싸여 있으며, 사랑채의 출입은 솟을대문을 통하여 남자들이 주로하며,측면의 협문은 여자들이 안채에 출입할 때 사용하였다. 이때의 시선 차단을 위하여 출입 통로를 따라 담을 쌓았으며 이러한 것은 공간의 분할을 가져와 전체적으로 폐쇄적인 느낌을 줄 수도 있으나, 후원과 정면의 마당을 넓게 자리잡아 정원을 아주 잘 꾸미고 있어 차라리 개방감을 주면서 한국의 아름다운 정원 풍경을 볼 수 있다

 

(2) 2차 탐방기 (2005. 8. 18. 항용(제) 제공)

 

지난 8월 11일 어머님을 모시고 우리집 가족 일행 7명은 강릉과 속초를 거쳐 설악산 지역으로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제일 먼저 찾은 곳은 강릉 경포대 옆의 초당이다. 이곳은 허난설헌이 태어난 생가이다. 지난 3년 전(2002년)에도 다녀갔던 적이 있다. 초당 주변은 아직 3년 전 그대로이나 초당으로 가는 길목은 많이 변했다. 주로 음식점이 많이 생겼다. 현대식으로 개발되는 것이 싫어진다. 아마 나도 적잖은 나이를 먹었는가 보다.

 

초당 동네에 들어서자 난설헌 생가로 들어가는 길옆 여기 저기에 적당한 간격으로 詩碑가 서 있다. 詩香이 물씬 풍기며 이내 분위기가 그윽해 진다. 생가 가옥 옆의 작은 쪽문으로 들어가니 바로 안채가 나온다. 전에는 관리인이 살림집으로 사용하고 있어 좀 개운치 않았는데 지금은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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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의 해설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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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옥 남쪽의 쪽문>

 

몇 몇 다른 관람객들과 함께 안방을 살핀다. 사방 2m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오늘날의 우리가 쓰는 방에 비하면 너무나 좁다. 그 옛날 선조님들은 얼마나 검소했는가? 슬그머니 미안한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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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의 안방, 방안에는 난설헌의 시를 진열하고 있다>

 

앞마당에 서니 작게 꾸며진 화단에는 온갖 꽃나무가 심겨 있다. 500년 전, 그 옛날 이곳을 오갔을 어여쁜 한 아가씨를 떠올려 본다. 그때도 이 꽃나무가 있었다면 이것이 그에게 어떤 시심으로 자리 잡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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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 앞의 화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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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채 앞의 배롱나무>

 

꼬리를 무는 생각을 길게 늘이며 중문을 나와 사랑채로 돌아 나온다. 대문쪽에서 사랑채를 바라보니 허성, 허봉, 허난설헌, 허균 등이 당대의 명 문인인 이달선생에게 글 배우는 모습과 청아한 글 읽는 소리가 눈과 귀에 보이고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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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마당 화단옆에는 시멘트로 만든 긴 의자 하나가 놓여 있다. 아마도 옛날에도 이곳에 나무의자가 있었고 난설헌이 앉아 오라버님들과 담소했으리라. 온 식구가 나의 설명에 홀려 돌아가며 사진을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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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을대문을 나오니 너른 마당이 나오고 그 한쪽으로는 차일을 친 곳에 한 어르신이 앉아 계신다. 가슴에는 <자원봉사대>란 명찰을 붙이고 있다. 인사를 하고 몇 가지를 여쭈니 친절하게도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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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을대문>

 

전직 교장 출신으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는 선생님의 말씀은 자세하고도 흥미로웠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현 허난설헌 생가는 최초부터 이런 모습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곳이 폐허상태로 전해오다가 약 150년 전에 김모씨(?)가 여러 고증을 들어 복원을 했다.

2. 그 후 정길환씨(현 50세, 인근에 거주)가 이 집을 경매로 샀다가 이광로교수에게 팔았다.  

3. 강릉시에서는 이광로교수에게 이곳을 문화재 및 관광지로 활용할 것을 설득하였고, 연차적으로 대금을 지불하여 2005년에 이 지역 4만평을 47억원을 주고 완전히 매수하였다.  

4. 앞으로 이 지역을 잘 정비하여 강릉의 중요한 문화 관광지로 개발할 계획이며 전시관도 따로 지어 정기적인 학술발표회도 가질 예정이다. 선생님의 해설을 듣고 앞마당 밖으로 둘러쳐진 적송 숲을 보며 온 길로 되돌아 나온다. 앞으로 몇 년 후면 또 어떻게 바뀔까? 모쪼록 오래도록 귀한 기념물로 남을 수 있도록 잘 개발되었으면 한다. ‘우리 안사연 식구들과 함께 와서 멋진 학술대회라도 연다면’ 하는 상상을 하며 다음 코스인 경포대를 향하여 어머님을 부축하고 차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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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가 측면>

 

(3) 안사연의 3차 탐방기 (2006. 7. 10. 글-상석(제), 사진-윤만(문), 항용(제) 제공)

 (안사연의 강릉지역 답사 행사의 일부 내용입니다)

가. 일시 : 2006년 7월 9일(日)07:00-20:00시

나. 장소 : 강릉시 익원공파 주부공(휘 기) 묘소 및 정려각, 허난설헌 생가지

다. 참석자(존칭생략)

1) 안 사 연 : 영환,재구,상석,윤만,발용 내외분,진회,태우,태영,항용-10명

2) 문단공기념사업회:태훈(회장),영식(총무)-子형민,용주(사무총장),상용,형남-子진교-7명

3) 강릉종친회;원구(회장),재흥,철회(부회장 2인),재현,인회(총무),태견,용식-7명

 

 <앞 내용 생략>

강릉지역의 대표적인 전통명문가옥인 선교장을 지나 13:00가 되어 난설헌 할머님의 생가인 초당에 도착하였습니다.아까부터 시나브로 감아왔던 실타래가 한 다발이 되자 초당 입구의 우물이 보입니다.다른쪽 실 끝을 놓으며 난설헌 할머님이 어릴적 초희의 모습으로 안채에서 나오시며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아주십니다.음택에서 부터 감아 온 실의 처음과 끝이 우주안에서 공생하는 혼(魂)과 백(魄)의 존재일 것이라 생각하며 소담스런 화단을 지나 사랑채로 건너갑니다.

 

사랑 앞에 둘러서서 항용님께서 낭송해 주시는 "閨怨"을 가슴으로 듣습니다.또한 학계와 여성계에서 평가하는 목소리들을 이야기 합니다.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조선조 반가의 총명한 규수(허초희)가 일찍부터 학문을 통해 접한 사상과 철학을 억누르지 않고 짧은 생애에서 지혜롭고 어진 아내로,여성으로서,자식을 가슴에 묻은 어머니로서 시대상황에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시를 통해 사회에 던진 메시지의 위력이 컸다는 것을-----그리하여 구태의연한 이들의 반발과 졸장부들의 시기를 샀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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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난설헌 생가터 일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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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난설헌 생가터 안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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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 옆면과 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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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 화단과 곳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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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외담과 사랑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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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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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채 마루방과 온돌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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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채 홑처마와 원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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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채 불밝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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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을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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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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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류 등 허난설헌 생가터에 피어 있는 꽃>

 

조선조 대표적인 여류시인,저항시인으로 잘 알려진 난설헌 할머님을 뒤로하고 <강릉종친회>에서 제공하신 강릉고 앞의 초당엄마손순두부에서 늦은 점심을 합니다.식전에 안사연에서는 경진보(영인)와 강릉답사자료집,충렬공 소설<붉은바다 열전 김방경>과 기념품을,문단공 기념사업회에서는 <국역 우암 김주문집>을 <강릉종친회>에 전달하는 시간을 마련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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