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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문헌 설화>(맹원재, 건국대학교 출판부. 1998.) 내의 설화 소개 (2003. 8. 29. 항용(제) 제공) 원전 : <梅翁閒錄 下> <제1화> 김득신 설화 (PP54-555) 김득신의 옛날 종이 지방에서 큰 부자로 살고 있었다. 김득신이 늙은 후 자식들이 그 종의 열네 살 된 아들을 속량(贖良:돈을 받고 종에서 제명해 양반으로 하는 제도)해 주기로 했다. 그래서 종이 여러 마리의 말에 비단 수백 필을 싣고 문에 이르렀다. 김득신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이야기를 듣고는, 아들을 불러 부친에게 알리지 않았음을 꾸짖고, 다시 종에게 말하기를, "우리 집이 가난하고 네가 부자이니 좀 부담이 되더라도 재물을 바치겠느냐?"고 물었다. 종이 그렇게 하겠다고 하니까 김득신은 종 아들의 나이 열네 살이니 한 단에 비단 한 필 씩 계산하여 도합 열네 필만 바치게 하고, 나머지 비단은 모두 싣고 돌아가게 했다.
<제2화> 김득신 설화 (pp268-269) 김득신은 허적(許積)과 먼 친척간이다. 허적이 사형을 당하기 전 어느 날 김득신이 그 집에 들르니, 마침 그 아들이 병이 들어 이불을 뒤집어쓰고 그의 옆에 누워 있었다. 김득신이 누구냐고 물으니 서자라고 대답하기에 이불을 열어 보았다. 김득신이 한 번 보고는 급히 도로 덮으면서 "이것은 역적이다. 허씨 집안은 이 아이 때문에 망할 것이다." 라고 말하고는 곧 일어나 가버렸다.
이 이야기는 허적이 그의 서자 김견(金堅)의 역모사건으로 인하여 죽게 된 사실을 가지고 설화화 했는데, 김견이 역적이 될 것을 김득신이 미리 알아보았다는 흥미 있는 이야기이다. 또한 이 이야기는 <매옹한록>의 저자 박양한(朴亮漢)이 김득신을 내세우려는 의도로 내재되어 있다. 즉 이 설화 끝에, 김득신과 박양한의 조부가 친분이 두터웠고, 박양한의 조부가 죽은 날이 김득신의 생일이었는데, 친우의 죽음을 미리 알고 생일 음식도 먹지 않고 울었다는 이야기가 첨가되어 있다. 그리고 김득신의 부친 김치(金緻)가 염라대왕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거기에 김득신과 관련된 이야기도 있어서, 김득신의 가문이 설화 분위기 속에 있음을 또한 이 설화와 무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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