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2004. 3. 22. 발용(문), 윤식(문) 제공) 1. 탐방 일시 : 2004. 3. 21. 2. 탐방자 : 안사연 8명 일동 3. 장소 : 충북 진천군 백곡면
백곡저수지 식파정 탐방 후기(16:45∼17:50) (윤식(문) 제공) 백곡저수지를 끼고 완만하게 경사진 도로를 달립니다. 멀리서는 작아 보였는데 가까이 다가가자 꽤 큰 저수지였습니다. 백곡저수지 인근은 우리 문중 안렴사공파와 양성이씨의 세거지이기도 합니다. 백곡저수지 안쪽에 <일송정>이라는 음식점이 있는데, 주인이 우리 일가분이시라고 합니다. 일송정 식당이 면해 있는 쪽 산들이 모두 안렴사공파 내의 소파 종산이라고 합니다. 식파정 가는 길은 백곡저수지를 끼고 산길을 달리다가 왼쪽에 <식파정>이라 쓴 표지석을 찾으시면 됩니다. 이곳은 차를 가지고 들어갈 수 없으므로 50∼100m쯤 더 가서 도로 왼쪽에 <사정마을>이라고 쓴 큰 표지석을 보고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소로로 들어서면 저수지 가장자리에 <백곡가든>이 있는데, 왼쪽으로 산길이 나 있습니다.(눈에 잘 띄지 않아 지나치기 쉽습니다.) 산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차량 한두 대 정도 주차할 수 있는 곳이 있기는 합니다만......운전이 서툴거나 비가 온 경우에는 <백곡가든> 인근에 주차하시는 게 좋습니다. 낯선 길이라 길 찾기가 조금 어렵습니다. 처음 가 본 곳인 데에다 우리 일행도 길을 잃어 설명드리기가 난감합니다. 혜량해 주시기 바랍니다. 산길 중에서 큰 길을 따라 한참 가시다가 왼쪽으로 꺾어지시면 양성이씨 묘소가 드문드문 나타납니다. 그 산길을 따라 저수지 쪽으로 내려가시면 식파정에 다다릅니다. <식파정>은 효종 4년(1653년) 양성인 이득곤이 지은 것으로 그의 호를 따서 식파정이라 하였답니다. 이분은 우리 문중의 백곡(휘 득신) 할아버지와 친분이 깊어 백곡 할아버지께서 <식파정기>를 짓기도 하였습니다. 이와 관련된 글은 영환 종친을 비롯해 윤만, 주회, 태서 종친께서 올리신 글들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식파정은 본래 양성이씨 집성촌인 두건리 앞 냇가에 있었는데, 백곡저수지가 생기면서 현재는 이곳에 자리잡게 되었다고 합니다. 백곡 할아버지의 <식파정기>를 보면, <식파정>이 있던 곳은 그야말로 무릉도원 같은 절경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10여m 저수지 쪽으로 쑥 내밀어 정취가 보통이 아닙니다. 한여름 텐트 치고 며칠 머물렀다 가고픈 곳입니다. 정자 내부에는 백곡 할아버지께서 지으신 <식파정기>를 중심으로 빙 둘러 송시열, 최명길 등 유명인과 양성이씨 후손들이 지은 시가 걸려 있습니다. 물론 <식파정기> 외에 백곡 할아버지께서 지으신 시도 한 수 걸려 있습니다. 하지만 새로 지은 <식파정>은 비례가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딘가 모르게 허술해 보이고, 집 지은 이의 정성도 빠진 듯해 그 옛날 백곡 할아버지께서 찬미했던 그 모습이 아니어서 씁쓸하기만 합니다. <식파정>에는 우리 일행보다 먼저 정취를 즐기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진중 종친과 안면이 있는 시인이신가 봅니다. 두 사람이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걸 보니 사람의 인연을 되돌아보게 만듭니다. 그런데 잠시 후 그 사람의 핸드폰을 통해 우리 차를 이동해 달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인적 드문 산길이어서 설마 했는데, 그 산길을 타고 올라간 차가 있었나 봅니다.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던 발용 종친께서 산길을 되짚어 달립니다. 미안한 마음에 숨을 몰아쉬며 도착해 차량을 빼주었더니 상대방이 더 미안해하더랍니다.
<편액 풀이> 번역 : 김익수(제. 益洙, 보명-泰益. 제주도 문화재위원 및 심사위원) 윤문 : 김항용(제)
卜築幽居靜散中 터 잡아 집 짓고 그윽한 산속에 은거하니 人疑千古夏黃公 남들은 옛날의 하황공(夏黃公)으로 여기네 今觀斗建風光美 이제 두건(斗建)을 살피니 풍광이 아름다워라 正興桃源趣味同 진정 무릉도원과 같은 감흥이 일어나누나. *七言絶句 上平聲 東韻
주: 夏黃公...漢鄞人. 商山四皓의 한 사람. 이름은 崔廣. 夏里에 은거하여 夏黃公이라 함. 斗建...옛날 절기를 잴 때 북두칠성의 자루가 가리키는 辰을 두건이라 했음. 두건밑에 12辰을 두었다. 여기서는 계절의 뜻. <백곡 선조께서 쓰신 <식파정기>를 식파정에 편액으로 걸어 놓은 것>
작성자 :김주회 작성일 : 2002/07/06 출전 : 金得臣의 문학과 생애 30. <충청북도 樓亭記文과 題詠, 1999, 전국문화원연합회 충청북도지회>
息波亭 序---김득신 (104-144 백곡집 문집 책5) --- 息波亭 : 在縣西10리 甲子村(斗建里) 양성 李得坤 李君은 흐린 세상의 아름다운 君子이다. 그 성품이 본디 산수의 승경을 좋아하고 그 마음이 또한 名利를 다투지 않아, 아름다운 곳에 거처를 헤아려 정하고 일생을 마치려는 것이 평생의 뜻이다. 어느해 어느달 어느날에 이군이 斗建村에 와서 천천히 따져보고 두루 살펴 보았다. 거듭된 언덕과 겹쳐진 고갯마루가 우뚝 솟아올라 둘러싸 사방이 막혔는데, 그 가운데는 평야가 넓게 펼쳐지고 큰 내가 깊은데 흰 모래가 평평히 펼쳐지고 푸른 절벽이 병풍처럼 벌려져 있었다.
이군이 그것을 기이하게 여겨 말했다. "아름답구나! 이 경치는. 이와 같은 승경이 있는 줄 미쳐 몰랐지만 이제야 알았다." 길일을 잡아 층이 어긋난 것을 깎아내고, 잡초는 베고, 쓸모없는 나무는 뽑아 새 정자를 짓고는 그 이름을 息波亭이라고 편액에 적었다. 斯文 鄭爀(정혁)이 記를 짓고 政堂 崔遲川(최지천=최명길)이 시를 지었다. 지난번에 이군이 李秀才(이수재)가 오는 편에 편지를 부쳐 나에게 서문을 지어 달라고 했다. 내가 이수재에게 물었다. "식파정의 勝景으로 木의(?) 伏龜鄭(복귀정)과 비교하면 어느 것이 나은가?" 이수재가 말했다. "복귀정이 어찌 감히 저것(식파정)과 같겠는가?"
그 말을 듣고 날아오르는 흥을 누르지 못해 이해 7월 초순에 말에 걸터앉아 고삐를 드날리며 갔다. 그 정자에 올라 난간에 기대어서 보니, 문을 마주한 산과 산굴을 나오는 구름과 무성히 자라? 아름다운 나무와 푸른 빛으로 빽빽이 늘어선 아름다운 대나무가 눈에 들어왔고, 모래밭 물새의 소리와 솔바람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난간 너머 긴 내는 빙둘러 펼쳐졌는데, 맑아서 거울을 잘 연마한 것 같고 고요해서 비단을 펼쳐놓은 것 같았다. 그것을 보고 있자니 흐르지 않는 듯 그 빛이 움직이지 않아 '물결의 쉼'을 알 수 있었고, 그것을 듣고 있자니 소리가 없어 물결이 일지 않으니 또한 '물결의 쉼'을 알 수 있었다. 달밝은 밤이 되어 창을 열고 그것을 감사하하니 밝은 달이 빛깔을 드날려 달과 물결이 한 빛이니 '물결이 쉬어 가지 않음'을 또한 알 수 있었다.
생각건대 이 물결이 괴어 쏟아지지 않고 찬찬하여 급하지 않은 것은 그 지세가 평평하여 비뚤어지지 않은 까닭이다. 이군이 반드시 이것으로 정자에 이름한 까닭을 알게 되었다. 어떻게 하면 스스로 명리를 탐내는 마음을 없애고 이 '파도의 쉼'에서 깨달아 그 즐거움을 홀로 즐길까. 그래서 정자의 이름을 삼았으니 그 뜻이 아름다워할 만하다. 아! 세상의 名利를 구하는 사람들은 그 다툼을 쉬지 않아 마침내 禍의 機微(기미)에 빠져들지만 이군은 여기에서 본 것이 있었던 까닭에 화살 피하듯이 화를 피하고 내의 경치에 흥을 맡겨 정자의 이름으로 몸을 보전하는 경계를 삼은지 스무해가 넘었다. 그러나 息波의 뜻이 어찌 아름답지 않은가. 君子로다. 이 사람은! 정말 내가 '흐린 세상의 아름다운 군자'라고 이른 바가 아니겠는가?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한다' 하셨는데, 군자가 아니라면 누가 이 말에 해당되겠는가. 내가 仙聖의 말씀을 가지고 이군에게 주니 이군은 내 말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