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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4(숙종20)∼1767(영조43) 자는 경실(景實). 호는 혁임재(赫臨齋). 충북 괴산 출생. 승지 구만(龜萬)의 손자. 어려서부터 재지(才智)가 출중하여 칭찬을 많이 받았다. 1723년(경종 3)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로 급제하여 예문관대교(藝文館待敎)에 임명되었다. 그 뒤 병조정랑 ·용강현감(龍岡縣監)을 지내고 1765년(영조 41) 공조참의에 올랐다. 관직에서 물러난 뒤 향리에 돌아와서 후진들의 교육과 경전을 외며 자기수양에 진력했다.
용강현감으로 있을 때 권력을 쥐고 있던 윤모(尹某) 재상의 청탁을 물리친 일화가 《목민심서》에 전한다. 죽은 뒤 1796년(정조 20) 호군(護軍) 채홍(蔡弘)의 천거로 청백리(淸白吏)에 천거되기도 하였다.
묘는 충남 당진군 장항(長項) 묘좌(卯坐)이다. 참의 윤규범(尹奎範)이 지은 묘갈이 있고 목재(木齋) 여주인(驪州人) 이삼환(李森煥)이 지은 행장이 있다. 공은 문장과 학행을 고루 갖추어 조야에 이름이 높았으며, 울진과 평남 용강에는 거사비(去思碑)가 있으며 세칭 호서육군자(湖西 六君子)의 한 분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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