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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2∼1933 괴산군 소수면 壽里에서 출생하였으며 高宗朝 義禁府都事를 역임하였다. 1910년 庚戌 국권침탈 때 亡國의 울분을 참지못하며 현직을 버리고 일가족을 이끌고 경상북도 상주군 화북면 용화리 늘티 장바위로 낙향하였다.
당시 이곳 일대는 抗日 義兵 養兵의 본거지였는데 공은 총책을 맡은 韓鳳洙 의병대장과 손잡고 슬하에 長男 世應, 次男 漢應, 三男 貞應, 四男 聲應, 五男 洛應 등 5형제와 함께 온 가족이 피복제조, 세탁, 무기 제작수리 등의 활동을 하였다. 그리고 고향인 壽里에 추수해 놓은 수백석의 糧穀을 陸砧로 운반하여 軍糧으로 補給하였다. 밤에는 독립운동, 낮에는 왜병들로부터의 拉奪 등 갖은 고초를 당하기도 했고 또한 수백석의 재산을 바치며 독립운동에 혼신을 다하였다. 1945년 8월 15일 해방후 사남 성응이 독립유공자의 유족이며 독립 유공자라 하여 충청북도 초대 내무부장에 취임한 바 있었으며 6.25동란 때 이로 인하여 납치되어 피살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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